[1주일예배] 40마12; 25-28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모습_1Loading the player...
40마12; 25-28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모습_1
2025. 6. 8. 주. 주일오전예배.
찬양: [219장] 주 하나님의 사랑은 [208장] 내 주의 나라와 [139장] 오 영원한 내 주 예수 [주기도문송]하늘에 계신 개요: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하나님 나라 [마]12:25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마]12:26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마]12:27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마]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6월 나라사랑의 달을 맞이해서 우리에게 나라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 나라의 의미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원리를 기반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마]12:25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세상 나라에 대해서 우리가 이해하고 깨닫는 것은 분열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원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어느 나라이든지 내전이 있고 분쟁이 있으면 급속도로 낙후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서 나라의 존립의 기반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든 나라는 안정되고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나라는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생각을 아시고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진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나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동네에서 계속 싸움이 일어난다면 안정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집마다 매일 다툼이 일어난다면 그 가정은 불행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발전하는 나라는 항상 일치하는 것이고 연합합니다. 동네도 합심하는 것이고 가정도 힘을 합칩니다. 그러면 성장하게 되고 더욱 좋아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안 좋은 것을 제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고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식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더 좋은 방법이 생겨나고 더 지혜가 넘쳐나며 더 풍성한 마음이 확장됩니다. 이러면서 깨닫는 것은 나라는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함께 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이 나라입니다. 동네도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단지 원리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뇌구조에는 좌뇌와 우뇌처럼 세 가지 부분의 구조가 있습니다. 바로 구피질, 고피질, 신피질이라는 것입니다. 구피질은 밑에는 시상하부라고 불리는 쾌락중추가 있어서 쾌락을 자극합니다. 고피질은 사고와 판단을 하는 부분이고 가장 멀리 있는 대뇌 피질인 신피질은 통합적 사고를 통해서 모든 생각과 사고를 완성시키는 부분입니다. 구피질적인 사고를 하면 아드레날린이 발현되서 흥분을 일으키지만 신피질적인 사고를 하면 세로토닌이 나와서 안정감을 갖게 합니다. 그리고 이 둘 중 어디로 갈 것인가를 고피질에서 결정합니다. 사고와 분별을 통해 도파민이 생기는데 그럴 때 신피질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모든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결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분열하는 것보다 연합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럴 때 모든 것을 세워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려고 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는 원리는 세상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도 사탄의 뜻대로만 하려고 한다면 그의 나라가 설 수 없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마]12:26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예수님은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사탄의 나라는 어떻게 설 수가 있겠느냐고 되물으셨습니다. 사탄도 그렇게는 하지 않습니다. 사탄도 다른 사탄에게 대적하지 않고 연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앞의 내용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셨는데 그때 바리새인들은 듣고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이유는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 말씀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귀신의 왕 바알세불’은 고대 블레셋 에그론에서 숭배되었던 파리의 신, 파리의 대왕을 의미했습니다. 그 신을 숭배하면 파리를 쫓아낼 수 있다고 해서 숭배되었습니다. 이후에는 파리의 왕이 아니라 똥의 왕으로 변형되었고 나중에는 오물의 왕으로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무척 지저분한 의미였는데 그래서 경멸적인 의미로 사탄을 지칭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사탄들의 왕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였고 여기서는 예수님을 모욕하기 위해서 이러한 단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에게 한 이런 표현에 대해서 그것은 모순된다고 하셨습니다. 사탄의 왕이 사탄을 쫓아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만약 그들이 말한 대로 예수님이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그들의 아들들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는지를 물으셨습니다. 그들도 그렇게는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마]12:27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귀신을 쫓아내는 한 그 주체는 결코 귀신과 한 편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을 바리새인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증언을 통해서 바리새인들의 말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의 말이 맞지 않음을 생각한다면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분열하고 반목해서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연합하고 일치할 때 새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과거 다윗이 수금을 탈 때 귀신이 떠나던 일은 어떻게 생길 수 있었습니까? 또한 엘리사 선지자는 어떻게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습니까? 그 모든 것이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연합할 때 그런 일들이 이루어졌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온 기적은 믿었습니다. 하지만 오직 예수님에 대해서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시는 말씀이 싫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걸 받아들일 때 그들은 예수님께 순종하고 연합해야 했지만 그들은 그런 하나님의 나라에 사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그들의 나라에 살고 있었을 뿐입니다.
신앙적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 자신의 나라에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라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 때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구원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 뜻에 연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우리 자신의 이상과 원함이 실현되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그런 나라를 기대하고 바랄 때 비로소 그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런 나라에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마]12: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그들이 본다면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에게 임하였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멀리 있지 않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순종할 때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깨달음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에게 임하였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거부하거나 부인하거나 무지해서 깨닫지 못하는 것뿐입니다. 혹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자신의 나라에 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깨달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였습니다. 그러니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깨닫고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이 됩니다. 1866년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왔던 토마스 선교사는 제너럴 셔먼호 사건에 휘말려 대동강변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때 그는 죽기 전 박춘권이라는 사람에게 자신이 가지고 왔던 한문 성경을 건네 주었습니다. 박춘권은 처음에는 받지 않았지만 모든 상황이 다 끝난 다음에 돌아가기 전 그 성경을 주워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성경을 읽고 예수님을 영접한 다음에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어서 나중에 안주교회 장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려고 했을 때 토마스 선교사는 하나님의 나라 속에 있었습니다. 비록 상황은 그가 생각했던 대로 흘러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 뜻대로 되지 않지만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 뜻을 따르고자 할 때 우리는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속에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커다란 기쁨과 감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척박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계셨고 그 일에 동참할 때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 속에 살아가는 자들이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시는 뜻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뜻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나라 속에서 살면서 나라를 더욱 사랑하면서 더욱 발전을 기대하고 소망하며 살아가는 거룩한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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