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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요일 2; 14-17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가정의 가치_1
2025. 5. 25. 주. 주일오전.
찬양: [249장] 주 사랑하는 자 [284장] 오랫동안 모든 죄 [219장] 주 하나님의 사랑은
개요: 5월 가정의 달, #51계획
[요일]2: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일]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5월의 마지막 주가 되었습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가정이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의 공동체라는 표현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시간을 보냈을 때 각자 뜻깊은 시간을 보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을 보내면서 의미 깊고 귀한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런 시간 속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가정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가정이 사랑의 공동체인 목적은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가정이 의미가 있습니다. 구원을 위한 사랑의 공동체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가정의 각 지체들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사도 요한이 하는 말로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잃어버립니다. 사도 요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이해할 때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가정에는 아이들이 있고 부모들이 있고 청년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다시 부모님이 되고 아이들을 만나고 청년들이 됩니다. 그것이 반복되면서 가정은 유지되고 이어지며 진행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특별한 뜻은 가정에 속한 모두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소망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먼저 14절을 보십시오.
“[요일]2: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아이들이 이 말씀을 쓰는 것은 아이들이 아버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을 위해서 하나님에 대한 말씀을 들려줄 수 있었습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을 믿고 있기 때문에 그 믿음을 지켜주기 위해서 가정은 교회에 나아갑니다. 또한 자녀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믿게 하려는 마음으로 교회에 나아갑니다. 부모가 할 수 없는 부분을 교회는 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교회에 나아갈 때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녀들 뿐만이 아닙니다. 아비들에게 부모들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 부모들이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 전부터 존재하셔서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분의 아들이 예수님입니다. 그러한 소망과 믿음이 있기 때문에 부모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모들은 천국으로 나아갑니다.
청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청년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쓰고 읽게 하고 들려줄 수 있는 이유는 그 청년들의 마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거하시며 그로 인해서 세상의 모든 흉악한 자를 이기고 극복하며 흔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녀들에게 아비들에게 청년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는 이유는 그들이 모두 하나님을 알고 믿으며 그분이 마음 속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을 잘 따르고 순종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심판으로 나아가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믿음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을 유지하려고 할 때 사랑이 꼭 필요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믿음은 단순한 종교행위로 전락해 버립니다. 신앙은 하나의 형식으로 변질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사라집니다. 고장난 자전거요 움직이지 않는 차요 뜨지 못하는 비행기일 뿐입니다. 신앙도 다시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안에서 시작되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자녀들이 부모들이 청년들이 하나님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가정이 사랑의 공동체가 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세상의 것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보다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할 때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않게 됩니다. 그 모든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때문에 오는 것이고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인데 그것에 사로잡히게 되면 가정은 더 이상 사랑의 공동체가 아니게 됩니다.
자녀들에 대해서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아니라면 다른 것이 최고의 목표가 되어서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자녀들에 대해 스트레스가 터져 나올 것입니다. 공부 안 한다, 말 안 듣는다, 놀기만 한다는 것으로 감정이 상하게 되면 사랑의 공동체가 아닌 미움의 공동체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자녀들을 공부 안 하게 말 안 듣게 마음껏 놀 수 있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감정적으로 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해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말을 들을 수 있게 놀지 않을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부모님의 간섭이나 잔소리 때문에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의 책임을 이룰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새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비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에 대해서 아내에 대해서 사랑의 공동체가 되는 것을 망가뜨리는 이유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고 다른 부부들과 비교할 때 그런 모습을 따라가기는 커녕 더욱 차이와 한계를 깨닫게 되어서 좌절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따라가려는 것만큼 세상의 유혹으로 인해 취약하게 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떨어지게 되면 사랑의 공동체나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게 됩니다. 왜냐하면 바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안타깝게도 바빠서입니다.
청년들이 강하여져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흉악한 자를 이기면서 하나님을 따라가야 하는데 세상을 따라갈 때 이전의 신앙적 모습은 사라지고 오직 생존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만 남게 됩니다. 하지만 사실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도와 주시기 때문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요일]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세상도 사라지고 정욕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고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합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때와 가장 좋은 길을 열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따라갈 때 그 사람의 인생은 가장 풍성한 삶으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요한일서를 쓴 사도 요한은 그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삶이었습니다. 모든 제자들보다도 오래 살았던 사도 요한은 다른 사도들과는 달리 94세에 평안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았던 사도 요한의 사역은 대부분 예수님의 어머니였던 마리아를 돌보는데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자신은 다른 사도들처럼 선교와 교회개척과 순교적인 삶을 살고 싶었지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모셔야 했기 때문에 제한된 사역만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삶은 더욱 예수님의 뜻을 행하는 삶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유언으로 ‘보라 네 어머니라’하는 말씀을 듣고 어머니 마리아를 모셨을 때 그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사역은 제한되었으나 그러나 그의 사역의 의미는 풍성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예수님을 따르고자 했을 때 가장 온전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우리의 가족들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시는 각각의 신령한 일을 잘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가정의 가치가 더욱 풍성하게 나타납니다. 노아의 방주를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 안에 있는 믿음의 공동체였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천국의 방주를 만들 수 있는 이유도 그리스도의 우리 믿음의 공동체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가정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지 않을 때 하나님의 뜻을 영원히 행하는 자로 영원히 거할 수 있습니다.
천국에서 만날 우리 가족을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님 안에서 엄마, 아빠, 형제, 자매가 천국에서 만날 것입니다. 또한 할아버지 할머니, 손자, 손녀가 천국에서 함께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늙어서 천국에 간 사람이나 젊었을 때 천국에 간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 안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천국에 있다면 반려동물들을 다시 만날 것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가정은 바로 그 하나님께로 함께 나아가는 응원과 사랑의 공동체가 됩니다. 앞으로도 가정의 가치를 잘 실현하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온전한 사랑의 공동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