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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살전 5; 14-18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_4
2025. 5. 28. 수. 수요예배.
개요: 교회생활의 원리
[살전]5: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살전]5: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오늘도 수요예배로 함께 모이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각 사람이 각자의 형편과 상황이 전부 다르고 수요일 저녁이 분주하거나 피곤할 수 있지만 이렇게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게 된 것이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매번 참석은 아니더라도 가능한 대로 수요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할 때 우리의 마음은 더욱 풍성해지고 우리의 생각은 더욱 경건해집니다.
주님의 복음이 완성되고 전파되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흩어지지 말고 모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사역을 완성하시고 부활하신 뒤 승천하시기 전에 하신 말씀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한 기다림은 그냥 막연하게 시간만 보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간절히 하나님을 사모하면서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도는 헛되지 않아서 성령의 충만이 임했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 다음부터 성도는 항상 교회를 중심으로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다니는 교회를 정해서 그 교회를 통해서 신앙생활이 발전되고 교회 속에서 그와 그의 가족이 구원을 얻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전파되고 확장되어서 우리에게도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은 초대교회에서의 신앙발전의 모습이 다시 재현되고 있는 과정입니다.
그럴 때 교회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교회생활의 시작이 초대교회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교회생활의 본질도 역시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초대교회때의 모습에서 발견되어야 합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살전]5: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교회생활이 혼자 하는 생활이 아닙니다. 다른 성도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같이 해 나갑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모습을 이루려고 할 때 비로소 온전한 신앙의 모습이 됩니다.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진심의 마음을 담아서 권면하는데 그것은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말씀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권면을 통해서 우리 자신이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게 됩니다. 권계한다는 것은 잘 깨닫게 한다는 것입니다. 게으름을 버릴 수 있도록 좋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게으른 자들이 변화되고 발전되어서 교회에 있는 것이 큰 소망이 됩니다. 비판하고 정죄하라는 것이 아니라 경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게으름의 안 좋은 모습에 대해서 권계할 수 있을 때 그 다음도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사랑과 긍휼 때문에 하는 것이지 미움과 증오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사랑과 긍휼이 있을 때 더욱 잘 자라게 됩니다. 나무 자라는 것을 보십시오. 햇빛과 물이 필요합니다. 빛을 보아야 하고 물을 주어야 합니다. 그 물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을 때 햇빛을 통한 양분도 잘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그 신앙에 약함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나무도 비가 안 와서 물을 잘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해야 하는 것은 일부러 라도 물을 주는 것입니다. 의지적인 물 공급이 필요합니다. 그와 같이 신앙에도 더욱 노력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따르는 것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살전]5:15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
악으로 악을 갚지 않고 항상 선을 따르는 것은 무한 선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냥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 뿐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선하신 주님을 따르고자 한다는 것은 그 다음의 말씀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는 유명한 말씀입니다.
“[살전]5:16 항상 기뻐하라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주님의 길을 따라간다는 것은 항상 기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기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앞에 나온 것처럼 애초에 선을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기뻐함도 따라가려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만 보면 한시도 쉬지 않고 기도하는가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기도하지 않는 시기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기도하려고 한다면 하루에 한번씩만 기도해도 지속적인 기도가 이루어집니다. 그런 의미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애초에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사에 감사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은 주님께서 보여주셨습니다. 그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진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주님이 얼마나 하나님을 따르고 있는가를 보여주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어도 예수님은 하나님을 따랐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 예수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해서 이루어지는 모습은 때로 악으로 악을 갚지 않는 모습입니다. 사람에게 선을 나타내는 모습입니다. 또한 권계하고 격려하고 붙들어주고 오래 참는 모습입니다. 그 모든 모습이 전부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간절한 바램이 예수님을 닮게 만드는 것입니다.
나다나엘 호돈이 지은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시골에 있는 계곡에는 사람의 얼굴 모양을 닮은 바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는데 이 큰 바위 얼굴을 닮은 훌륭한 위인이 나타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곳에 살던 어니스트라는 젊은이는 그 예언을 마음 속에 담고 그 위인을 꼭 보고싶다는 열망을 가졌습니다. 시간이 흘러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는 여러 사람이 지나갔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어느덧 그는 설교자가 되었고 사람들의 부탁으로 큰 바위가 보이는 언덕에서 설교를 했는데 그때 사람들은 바로 어니스트가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본인은 그에 미치지 않고 언젠가 더 훌륭한 위인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하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큰 바위 얼굴을 기다리면서 큰 바위 얼굴을 닮아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외모를 비슷하게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하신 일을 따라 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예수님을 보게 될 때까지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그 자체를 기뻐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뜻이 교회생활을 통해서 아름답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고 신앙생활 속에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