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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마21; 14-17 어린이들의 찬미를 온전하게 하심_1
2025. 5. 4. 주. 주일오전예배. 어린이주일.
*개요: #51계획,
[마]21:14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마]21:1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마]21:16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마]21:17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많은 가정의 행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은 국가적으로 지키는 가정의 시간이고 각 가정에서도 개별적으로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간은 꼭 어린이나 어버이만을 위한 것이 아니더라도 각자 가정의 의미를 새길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1인 가구에서는 솔로로서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부부만 있을 때에는 부부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 모든 시간이 가정의 의미를 깨닫게 합니다. 특히나 5월의 화창한 날씨는 이러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기에 적절한 계절이기도 합니다.
교회적으로 우리는 5월에 어린이주일과 어버이주일, 그리고 스승의 주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정의 의미를 생각하고 또한 가정을 돕기 위해 주신 도움의 의미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가정은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가정이 사랑의 공동체임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안에 있음을 생각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때 가정이 사랑의 공동체로서의 가치를 갖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정이 사랑의 공동체가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정은 하나님 안에 있으면서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가족들의 사랑 사이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힘든 시간이 없습니다. 가정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면 천국을 이루면서 천국으로 나아가지만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무의미한 시간이 펼쳐집니다. 전혀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고 아무런 약속도 소망도 없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는 꼭 가정이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그 사랑의 공동체의 한 요소인 어린이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나아가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줍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어린이들에 대해서 하신 말씀을 통해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21:14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마]21:1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예수님은 성전청결의 일을 보여주셨고 이어서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님께 나아왔을 때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성전에서는 어린이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환호성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이상하게 여겼고 예수님에 대해서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는 어린이들을 보며 분노했습니다. 예수님이 맹인과 저는 자들을 고쳐 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어린이들이 그런 모습에 대해서 환호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분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나타난 것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 식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정치적인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예수님의 행하시는 기적과 사역으로 인해 정치적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구원이 사람들에게 좋고 유익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거부했습니다. 그 앞서 있었던 성천 청결 사건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좋은 일을 전부 거부하고 비판했는데 그 이유는 그럴 때 자신들의 입지가 약화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면 어린이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과 구원에 기뻐하며 환호했습니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를 순수한 마음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어린이들은 나타난 그대로를 봅니다. 그리고 그 일에 동참하며 찬양합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을 통해서 예수님은 찬양을 받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찬양이었습니다.
어린이들에게는 진실을 물어볼 수 있습니다. 못생겼는지 잘생겼는지를 알고 싶으면 어린이들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살이 쪘는지 말랐는지를 알고 싶다면 어린이들이 정확하게 대답해줍니다. 또한 어린이들은 궁금한 것을 정확하게 물어봅니다. 아무런 거침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들은 그들의 찬양이 거짓되고 어리석다고 화를 냈습니다. 과연 그들의 찬양은 진실한 것이었을까요? 또한 온전한 것이었을까요? 정치적인 사고와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인해 예수님의 행하심 자체를 부정하고 부인하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시편을 통해서 나타내신 예수님에 대한 예언의 성취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마]21:16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화가 나서 예수님께 항의했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이 화를 내는 이유는 어린이들이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반응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싫어하는 대상인 예수님을 찬양하고 환호하는 것에 대해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그런 모습이 어리석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린이들의 찬양은 중단되어야 했고 예수님에 대한 반응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만이 받들어져야 하고 기존의 질서는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시편 8편 2절의 말씀을 인용해서 ‘어린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의 찬미가 온전한 것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인용된 시편 8편 2절에 나오는 표현의 정확한 내용은 이것이었습니다.
“[시]8:2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주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주의 대적으로 인해서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이 진실을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진실 속에서 권능이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마태복음에서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로 해석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린이들을 통한 찬미는 거짓이 아니라 진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찬미를 진실되고 온전한 것으로 만드셨습니다. 어린이들의 찬미한 내용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였고 그 말은 예수님으로 인해 온전해졌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의 찬미는 진실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의 찬미를 하나님께서는 이루어 주십니다. 그들이 구원받았음을 감사할 때 그 찬양을 온전하게 해주십니다. 지켜주셨음을 감사할 때 그 고백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환경과 시간을 주심을 감사할 때 그 감사가 영광스럽게 해주십니다. 그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그렇게 사실 대로 말하는 어린이들을 어떻게 대할 것입니까? 바로 그들의 말을 받아들여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어린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진실을 말하는 어린이들에게 화를 냈습니다. 그것이 자신들의 유익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진실을 말하는 어린이들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진실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입에서 더 큰 진실이 나타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럴 때 어린이들의 찬미를 온전하게 하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예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말을 온전하게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녀가 부모의 모습을 본받기 때문에 거울처럼 부모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을 벗어났을 때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 됩니다. 어른이 어떻게 하는가를 잘 보고 아이는 그 사회에서 그대로 따라할 것입니다. 그럴 때 아이가 나타내는 것이 가장 신앙적이고 진실하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 될 수 있도록 부모가 온전한 모범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아이들의 찬미를 온전하게 하십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르치면서 우리는 더욱 성숙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르친 대로 행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의 믿음도 성장합니다. 그런 성장하는 모습을 나타내려고 할 때 우리의 수준이 발전하게 됩니다. 교회에서 가정에서 개인적으로 아이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할 때 우리는 더욱 신실해지고 경건해지며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서 어린이들의 고백을 온전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이들 때문에 분노하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떠나 베다니로 가셨습니다.
“[마]21:17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그곳은 예루살렘에서 3km정도 떨어져 있는 멀지 않은 마을이었습니다.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가 살던 곳이었고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값진 향유를 부었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이 일은 예루살렘 입성으로부터 시작된 성전청결 사건으로 진행된 고난주간에 있었던 일었습니다. 예수님의 행하심은 어린이들의 찬미를 온전하게 하시는 우리를 위한 온전한 여정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찬양하는 자들과 함께 하시는 진실한 삶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린이들의 찬미를 온전하게 하신 주님을 따라갈 때 우리의 삶이 어린이들에게 온전한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린이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어린이들처럼 주님을 찬양하고 환호하면서 진실한 주님을 따라가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