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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행 2; 36-40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_5
2025. 5. 23. 금. 금요철야.
개요: 성령충만과 말씀충만
[행]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행]2: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우리는 요즘 성령충만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성령충만보다는 다른 것들에 의해서 충만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분노충만이나 미움충만 등의 상태의 변화를 겪기도 합니다. 또한 세속적인 욕심충만이나 유혹충만 등의 약화된 상태로 변화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인간사회에는 성령충만을 방해하는 많은 어려움들이 존재합니다. 그것을 극복하고 다시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가고자 할 때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시는 일들에 연합하고 순종하며 실천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베드로의 설교는 오순절 성령충만의 의미를 설명해주었습니다. 이 설교가 아니었다면 오순절 성령충만은 그냥 이벤트로 끝나버렸을 것입니다. 성령충만의 현상과 사건과 경험이 하나님의 역사가 되는 이유는 그것이 잘 설명되고 이해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충만을 이전에 왜 받았는지 또한 앞으로 왜 받아야 하는지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을 때 그것이 신앙의 성장과 삶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36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성령충만이 왜 일어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행]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베드로의 설교는 14절부터 시작해서 36절까지 이어졌고 36절은 그 설교의 마지막 결론이었습니다. 그 결론은 한 마디로 말하면 성령충만의 모습은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이고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예수님은 다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 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성령의 충만함은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죽으신 것이고 그의 부활하심으로 인해 예수님이 주가 되시고 그리스도가 되신 것은 매우 확실한 사실라는 것이 증거되었습니다.
어쩌면 얼마 전에 예수님을 거짓 선지자라고 음해해서 못박아 죽인 이스라엘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인간의 이해의 영역에 속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그들이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려고 했을 때 비로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성령충만은 우리에게 성령충만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성령충만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이해해야만 온전한 성령충만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동참하고 그 일에 연합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바다를 우리 삶에 끌어오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다로 나아가야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바다를 끌어오려고 한다면 단지 기분만 내고 흉내만 내겠지만 바다로 나아간다면 온전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은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은혜의 바다로 나아가고자 했습니다. 다음 구절을 보십시오.
“[행]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그들이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큰 죄를 저질렀으니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하면서 베드로에게 다시 물었을 때 그것은 은혜의 경험과 은혜를 단지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은혜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했던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 것을 몰랐고 다만 어리석은 선동과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자들이 되었음을 회개하고자 했습니다. 그럴 때 베드로는 회개를 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담대히 나아가라고 했습니다. 그 방법만이 그들이 살길이었던 것입니다.
“[행]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행]2: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고 구원을 받게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 뿐만 아니라 그들 자녀와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진정한 복음이 이제 그들에게 설명되었던 것입니다. 성령충만은 바로 복음이 증거되고 그 복음을 받아들였을 때 일어나는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것은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갈 때 일어나는 일들이었고 그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그 선물을 통해서 모든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고 신령한 일들을 계속 사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어려움과 힘든 시간을 겪을 때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서 계속 이겨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이후에 제자들은 성령충만을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의 부흥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교회의 핍박도 경험했습니다. 그럴 때 그들은 기도했고 성령의 충만을 경험하면서 더 넓은 곳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들은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았고 장소나 상황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다양한 하나님의 일들을 해 나갔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성령충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그들은 예루살렘의 재앙과 멸망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예루살렘은 주후 70년에 로마에 멸망했습니다.
“[눅]19: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눅]19: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이 말씀 그대로 예루살렘에 비참한 멸망이 임하였을 때 교회는 이미 핍박으로 인해서 피하였기 때문에 재앙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모든 일들을 그들이 어떻게 했을까요? 바로 성령충만을 통해서 이룰 수 있었습니다. 마치 구명조끼를 입었을 때 수상사고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성령충만을 통해 영혼의 구원을 이룰 수 있으니 이 은혜를 귀하게 받고 구원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충만의 은혜를 힘입어 이 시대에서 우리가 받는 하나님의 구원을 충만하게 누리는 거룩한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