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갈] 5: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어리석음의 악순환이 있다면 이에 반하는 지혜의 선순환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 속에서 더 많은 지혜의 선순환을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바로 그 지혜의 선순환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놀라운 선순환의 시작은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찾고 만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십자가에서 못박히신 그리스도’의
모습이었습니다.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리스도는 육체만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그 정과 욕심까지도 모두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하나님께로부터 모두 버림을 받는 것을 견뎌내셨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모습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육체만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들이 아니라 정과 욕심까지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의 자랑이 되신 그리스도’로 나타납니다.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고난과 죄값의 상징이면서 자유케 함과
영광의 상징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십자가에서 승리할 때에
세상은 더 이상 우리에게 유혹과 핍박이 대상이 될 수 없고 심판과 정죄의 대상으로 변하게 됩니다. 우리가
승리하면 세상의 모든 악한 것들은 십자가에 못박히고 우리는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예수님의
흔적’이 있습니다.
“[갈] 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모든 상처에는 흉터가 남기 마련입니다. 상처가 심하고 깊을 수록 그 흉터는 크고 짙어집니다. 예수님의 흔적이라함은
예수님에게 생겼던 십자가 고통의 흉터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흉터를 지우지 않으셨습니다. 그 흉터는 그분의 사랑과 헌신과 순종과 영광의 표현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한 흉터가 있어야 합니다. 현재의 고난과 슬픔과 좌절은 미래에는 영광의 상처가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예수님의 은혜로 인해서 새로운 마음의 소원이
생깁니다. 그러한 소원은 ‘성령의 소욕’을 따르는 것이 됩니다.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 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성령의 원하시는 바는 육체의 욕심과 반대가 됩니다. 그래서 이 둘은 결코 함께 존재할 수 없는 상극적인 것입니다. 성령을
따르게 되면 육체의 욕심을 멀리하게 됩니다. 육체의 욕심을 멀리하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육체의 욕심을 멀리하는 이유가 됩니다. 성령은
마음과 행동의 선한 안내자가 되십니다.
또한, 그 마음의
소원은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 됩니다.
“[갈]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 혹은 하지 말아야 한다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사랑함으로 갖게 되는 믿음의 행동을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규제중심의 생활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행하게 되는 모든 헌신과 사랑과 믿음을 보이게 됩니다.
이러한 결심이 구체적인 실천을 만들어 냅니다. 바로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선한 열매를 맺어 나가는 일은 기존의 악한 열매를 맺는
일과 비교할 때 확실히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면 그 씨앗이 선하고 하나님의
은혜주심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좋은 결실을 맺게 될 수 있습니다. 결과에 연연하여 중간에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성령의
열매를 맺음’을 이루게 됩니다.
“[갈]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갈] 5: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도들이 마땅히 바라보며 나아가야 하는 완성된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이러한
열매는 완성의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 그저 보기에 괜찮은 정도가 아님을 깨닫게 합니다.
이에 더하여 골로새서 2장18절은 우리가 육체의
마음을 쫓아 하나님으로부터 떠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항상 겸손할 때에만 온전한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골] 2:18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골] 2: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그래서 우리가 행할 수 있는 지혜로운 진정한 실천은 ‘온유함으로 바로잡고 짐을 서로 지는 것’입니다.
“[갈] 6: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갈]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선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 주위의 도움을 받고 물리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함께 붙여주셨고 인도함을 받는 자이자 인도하는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각자의 성숙을 위해서 더욱 노력할 뿐 아니라 온전한 성숙에 이르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주변의 사람들을 더욱 붙들어 주려고 할 때에 귀한 열매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거두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로마서 14장 1,2절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비판하지
말고 그의 연약함을 감싸고 도와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롬] 14: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롬] 14: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선순환 가운데 행하는 것은 ‘오직 사랑으로 행함’입니다.
“[갈]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성숙을 위해 나아갈 때에 주관을 받으려는 마음이나 혹은
주관하려는 마음이나 모두 옳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서로 사랑함으로 견디고 인내하며 돕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이 없을 때에 변화와 회복과 성숙은 실현 가능한 목표가 아니라 무리한 요구사항이자 실현불가능한 환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지혜로운 선순환이 반복될 때 진정한 변화가 나타납니다. 그 변화는 ‘성령으로부터의 영생’입니다.
“[갈]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이러한 성숙과 변화의 최종적인 결실은 성령으로부터 받는
영생입니다. 그 영생 속에서 평안과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육체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시적이지 않으며 무익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영생은 영속적이며 늘 속에서부터 솟아나오는 생명샘물과 같은 것입니다. 이생과 저생을 연결하며
지속되는 충만한 기쁨이 됩니다.
이와 같은 지혜의 선순환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날마다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