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4: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골]4: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골]4:14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골]4: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골]4: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지난 주에 살펴본 라오디게아 교회유적은 인근에 있는 골로새, 히에라볼리와 함께 삼각형의 위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세 지역은 성도들 사이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타나는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가 언급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골로새에 보내는 편지를 라오디게아 교회에서도 읽고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는 골로새에도 읽게 했다는 것은 서로 사이가 돈독하고 교제가 많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도보로 이동하기에 아주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런 이동시간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세 지역에서의 신앙생활의 격려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 그들이 세상 문화 속에서 자신들의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제자로서 살아가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함께 살펴보면서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어떤 것을 유의하고 따라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히에라볼리를 보십시오.
“[골]4: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골]4: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에바브라가 문안함을 전했습니다.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고 격려한다는 것을 알려주면서 사도 바울은 성도로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야 한다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많은 수고와 희생이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에바브라였습니다.
그는 골로새 사람으로서 에베소에 자주 왕래하는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골로새는 올리브, 무화과, 양모 등의 사업이 활성화되었던 곳인데 그곳 사람으로서 에베소에 가 있다는 것은 관련 사업에 종사하며 부유한 사람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에베소에서 바울사도를 만나 복음을 듣고 완전히 변해서 그 다음부터는 복음에 열정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에서 충성하는 사람이 바로 에바브라였습니다. 더우기 골로새 사람이니 골로새에 충성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연계지역이었던 히에라볼리는 온천으로 유명하고 사도 빌립 기념교회가 있고 유명한 관광명소로 이름난 곳이었습니다. 정식이름은 히에라폴리스였고 뜻은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이었습니다. B.C.3세기경 페르가몬 왕국을 세운 에우메네스2세 왕에 의해서 세워졌습니다. 그 이후 지진으로 파괴되었다가 기원후 50년에 로마 네로 황제에 의해서 재건되었습니다. 온천이 있어서 휴양과 상업의 도시로 발전했습니다. 인구가 8만명에 이르기도 하며 발전했다가 계속되는 지진과 전쟁으로 12세기 이후로 폐허가 되었다가 19세기에 발굴하면서 다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원형극장을 보았고 사도 빌립 기념교회를 보았습니다. 이후에 살펴본 아폴로 신전과 공중목욕탕, 그리고 파묵칼레(목화성)이라는 하얀 노천지대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지역들이 지금은 유적으로만 남아있지만 과거에는 얼마나 화려한 곳이었을까를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 터키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곳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더욱 유명한 곳이었을 것입니다. 많은 인구가 살면서 이곳에서 즐거움을 누리고 있을 때에 이곳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정성을 다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결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한 인내와 경건이 있었기에 교회를 세웠고 신앙인으로 남아 있었으며 그 시대의 환락과 방탕함을 이겨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교훈은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이 시대에도 많은 혼란과 유혹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 시기를 버텨야만 합니다. 성도들은 바로 그럴 때 진정한 신앙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내의 시간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돕는 자들을 주셨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골]4:14 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골]4: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골]4:16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왜 사도 바울은 문안하는 자들을 일일이 거명하고 있을까요? 왜 편지를 다른 사람들과 교회들이 읽게 하고 다른 교회와 사람에게 보낸 편지도 가져와서 읽으라고 했을까요? 바로 그 시대의 유혹을 견디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피할 길을 주십니다. 그래서 거대한 신전과 원형경기장과 쾌락의 목욕탕과 노천탕이 있었지만 그 모든 유혹을 이기면서 그들이 살고 있던 히에라폴리스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지금 함께 하는 성도들과 함께 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 나라의 예비 백성들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있는 장소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나아가고자 다짐하는 계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히에라볼리에 있던 자들을 위한 모든 노력이 헛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와 깨달음이 우리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