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선택] 49엡 1; 7-12 예정과 선택을 통해서 은혜를 깨닫는다Loading the player...
49엡 1; 7-12 예정과 선택을 통해서 은혜를 깨닫는다_2
2024. 4. 28. 주. 주일오후. 온라인 설교.
*개요: 종말론>예정선택 [엡]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엡]1: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엡]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엡]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엡]1: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엡]1: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종말론에서 예정선택에 대해 다루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정선택이라는 주제가 구원론에서도 다룰 수 있지만 만약 그렇게 하면 구원에 관한 의미가 혼란스럽게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구원에 대해서 예정선택의 원리를 적용하게 되면 복음을 믿고 구원을 얻는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서 오해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예정선택 교리를 다루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오해를 줄이고 더욱 확실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종말론에서 다루게 되었습니다. 종말론에서는 구원의 끝과 심판의 완성을 다루는데 그 말은 구원의 막바지에 이르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최종적인 과정에서 예정선택은 ‘그리스도인이 구원을 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예정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다시 말해서 예정과 선택이 아니었으면 구원을 이룰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믿음을 통해서 얻은 구원은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 가운데 있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둘의 큰 차이는 확실한 구원의 근원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불확실한 구원의 여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정선택의 교리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계획을 이루심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구원이라는 말이 아니라 창세 전에 예비하신 구원이니 반드시 그 구원을 이루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의미를 오늘 말씀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엡]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엡]1: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우리가 받은 죄 사함의 의미는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서 그의 피값으로 인해서 속량을 받았다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죄 사함의 의미였습니다. 이것이 구원받게 되는 이유이고 이러한 구원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더욱 지혜와 총명을 채워 주셔서 그러한 구원의 은혜가 인간의 결정이나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 된 것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엡]1: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엡]1: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정과 선택은 구원의 뜻의 비밀을 알려주신 것이고 하나님이 그렇게 하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바로 미리 정하셔서 구원을 이루어 주셨다는 뜻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예정을 통해서 인간의 선택이 이루어져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이 있지만 예정이 없거나 선택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하신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이 일치되고 통일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예정교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성도의 구원의 확실함을 보여줍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구원을 마지막 때까지 이루실 것은 너무나 분명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가치를 우리가 이해할 때 받은 구원의 감사함을 확실하게 붙들 수 있습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자신의 장자권의 의미와 가치를 알지 못했습니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했지만 그걸 소홀히 여겼고 이것이 없는 야곱에게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렸습니다. 이에 대해서 실제 어떤 효과가 있는 장자권이 아니라서 아무 때든지 원하는 사람에게 팔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반대로 다시 그 장자권을 되산다고 한다면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미 장자권을 소홀히 여기고 팔았던 것이라서 나중에 다시 살려고 한다 하더라도 이미 장자권을 어떻게 생각했는가가 드러났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예정과 선택에 대한 교리를 통해서 자신의 선택의 중요성이 아닌 하나님의 선택의 중요성을 자각한다면 자기 중심적인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엡]1: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엡]1: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의 뜻을 결정대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서 구원을 받았고 그에 따라서 예정을 입었고 기업이 되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단지 자신의 선택으로 구원을 받은 것으로 끝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선택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업으로의 발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자신의 복음의 영접과 고백보다 더 큰 하나님 나라에서의 일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정선택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각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을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에 보답하면서 영광의 찬송이 되어집니다.
사도 바울은 회심했을 때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요 복음의 전파자로 세우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흐려지지 않아서 굳센 모습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온전히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의 마음 속에는 오래전 하나님께서 그를 불러 택하여 주셨음을 깨닫는 기억이 있었습니다. “[행]22:14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행]22: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사도 바울은 이 말을 예루살렘에서 열린 재판에서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온전히 시행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예정과 선택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부르심을 귀하고 감사하게 생각해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이루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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