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상담]] 56 딛 1; 1-4 성숙은 내게 맡기신 사명을 이루는 것이다Loading the player...
56 딛 1; 1-4 성숙은 내게 맡기신 사명을 이루는 것이다_2c
2021. 6. 6. 주. 주일오후. 온라인설교.
*개요: 상담비전, 성숙주제
[딛]1: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딛]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딛]1: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딛]1:4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6월에 우리는 성경적 상담비전으로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각각의 주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 속에서 살펴보려는 주제는 ‘성숙’입니다. 성숙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맡은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더욱 의미 있고 발전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가치가 있습니다. 각 분야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적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축구선수에게는 체력과 순발력, 그리고 기술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의 실력을 잘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은행원에게는 치밀함과 정직성, 그리고 정확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군인에게는 체력과 결단성, 그리고 용맹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성도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사도 바울은 자신의 경우를 들어서 믿음과 지식과 소망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숙의 지표이며 맡기신 사명을 이루는 모습입니다. 본문 말씀 1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딛]1: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이 세 가지의 요소가 바울이 사도라는 직분을 감당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사도직을 감당하기 위해서 그는 이 세 가지를 항상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 하나 생각해 보면 그것이 얼마나 사도직을 수행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이라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누구에게나 천직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어떤 일을 평생 할 수 있습니다. 도자기를 굽는 사람은 그것이 천직이라고 생각할 때 평생 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대를 물려서 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는 우동을 만드는 사람들도 자신의 직업을 천직이라고 생각하며 100년째 그 일을 해 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도 그것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일군으로 선택해 주셨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없거나 연약하다면 끊임없이 내가 이 일을 안했으면 다른 일을 했을 텐데라는 생각을 자꾸만 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 선택받았다는 믿음이 있습니까? 그 믿음을 늘 잃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은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입니다. 특별히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리의 지식이 경건함에 속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냥 머리에만 있는 진리의 지식이 아닙니다. 그냥 입에만 있는 진리의 지식이 아닙니다. 자신의 경건 속에 들어가 있는 진리의 지식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직분자라고 하면서 경건함에 속하지 않는다면 그가 아는 모든 지식은 그냥 지식일 뿐입니다. 법을 많이 알고 있어도 법을 지키지 않으면 그는 범법자일 뿐입니다. 많은 지식을 알고 있어도 교도소를 들락날락 하면서 인생을 스스로 망치는 사람일 뿐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의 삶 속에 나타나는 진리의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세 번째 요소는 다른 두 가지 보다도 더 의미가 있고 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영생의 소망’이었습니다. 왜 이 영생의 소망이 중요하였는가 하면 이 영생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설명하였기 때문입니다. “[딛]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딛]1: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이 영생의 소망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도로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전도가 하나님이 그에게 맡기신 소망의 내용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도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 궁극적으로는 이 영생의 소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그는 직분자가 되었고 일꾼이 되었으며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택함받은 자로서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지식에만 강조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이 전도의 소망은 우리가 살아있게 하며 우리가 일하게 하며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맡아서 잘 감당하여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것이 바로 일군의 할일이요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요나 선지자는 그런 면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일군이었습니다. 그는 니느웨 성에 대한 자신의 사명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알고 그것을 행하려고 하였습니다. 비록 맨 처음부터 그렇게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여곡절끝에 그가 니느웨에 행한 것은 전도의 사명,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요나는 그 일을 하였을 때에 가장 놀라운 사역의 보람과 생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요나가 선지자였던 이유는 딱 그 이유 뿐이었습니다. 니느웨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그가 선지자 된 이유였습니다. 그는 성전을 건축하거나 왕에게 직언하거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를 전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직 앗수르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말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요나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의 고집도 꺾어야 했습니다. 만약 그 일이 그에게 너무나 쉬운 것이었다면 그렇게 고생할 필요가 없었다면 니느웨에서의 놀라운 회심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움직였을 때에 그의 순종과 충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버리고 주님의 생각과 계획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을 원하십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전도이고 내가 원하는 일이 전도라면 아마 하나님은 다른 일을 시키셨을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전도가 아니고 내가 원하는 일이 전도가 아닐 때 내가 원하는 것을 버리고 주님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럴 때 그 일이 온전한 순종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순종의 그릇 속에 주님이 담는 것은 아름다운 영생의 약속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으며 그 구원을 얻을 때 영원토록 죽지 않으리라는 아름다운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바로 그 구원을 얻게 됩니다. 우리의 질그릇 속에 이렇게 놀라운 약속의 구원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놀라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주님의 이름으로 전도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아무나 주의 대변인으로 사지 않으십니다. 괜한 사람 세웠다가 엉뚱한 말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원하는 사람으로도 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으로도 하지 않습니다. 경건의 지식이 없는 사람도 안됩니다. 그가 전도하는 것은 오히려 전도를 방해할 뿐입니다. 전도는 선택받았다는 믿음과 경건한 삶에 근거한 진리의 지식이 있는 사람에게 자격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 중에서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이 있는 자가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숙을 이룰 수 있는 사람들입니까?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숙한 성도들이 해야 하는 일이 전도이고 성숙할 때 전도를 할 수 있습니다. 성숙은 전도를 통해서 나타나고 전도는 성숙을 이루는 방법입니다. 사도 바울도 역시 그러한 마음으로 전도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일을 할 수 있었던 그가 디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딛]1:4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 사도 바울은 디도가 바로 이러한 수준에 오르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위치를 말한 것이었고 이제 지극한 사랑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축복합니다. 그 은혜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축복이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그 은혜와 평강을 힘입어 전도를 성숙으로 이루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성숙한 삶을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이룰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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