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계]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3: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번 성지순례의 일정은 바쁘게 진행되었습니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도로상태가 안 좋았고 지진도 있었던 터라 분위기도 어수선했습니다. 그런 점을 감안해서 이전 데린구유에서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 곳은 코니아라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성경에서 이고니온이라고 불리는 장소였습니다. 이고니온은 사도행전에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행]13: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행]13:51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행]13: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여기서 쫓겨난 곳이 비시디아 안디옥이라는 곳이었습니다. 거기서 이고니온으로 갔던 것입니다. 이번 성지순례에서 그 다음으로 간 곳이 이고니온이었고 오늘날에는 코니아로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거기서 하룻밤을 묵은 후에 비시디아 안디옥에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비시디아 안디옥은 도로교통 상황이 안 좋아서 포기하고 곧장 그 다음 목적지인 라오디게아 교회 유적지로 갔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유적지는 온천지로 유명한 곳에 있었습니다. 터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파묵칼레 라는 곳이 가깝게 있었습니다. 파묵칼레라는 온천은 히에라폴리스라는 도시 속에 있는 온천이었는데 여기도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골]4: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골로새 가 비슷한 지역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로 바울의 서신을 돌려보고 신앙을 격려했습니다. 그 중 라오디게아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면서 그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과 책망이 있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내용이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옵니다.
“[계]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계]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그곳은 히에라볼리(히에라폴리스)에서 나오는 온천물이 흘러서 도달하는 곳이었는데 그러다 보면 물이 미지근해지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렇게 미지근해서 뜨거운 것도 아니고 찬 것도 아닌 상태처럼 신앙이 무기력한 상태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에는 다음 구절에 나오는 것처럼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계]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계]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그들이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지 못하고 물질적 부요에 빠져 영적 곤핍함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각성하여 열심을 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책망하심은 사랑하는 자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근접한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골로새 세 교회 중에서 특히 라오디게아를 불러 책망하신 것은 그들의 역할과 책임이 있었고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교회의 위치와 규모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교회유적이 크지 않았지만 라오디게아 교회유적은 크고 다양했습니다. 그들의 수준에 맞게 열심을 낼 때 그들은 온전해 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도 요한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3: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님을 모셔 들이고 세상에서의 유혹을 이기고 승리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상급과 축복을 주십니다. 그 말씀에 우리도 귀를 기울이고 주님과 동행하면서 세상의 유혹을 이기면서 삶이 성전이 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되며 주님과 함께 더불어 먹고 마시는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사는 곳에 많은 갈등과 유혹과 고민이 있습니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회의 경우를 되새기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상급과 은혜가 넘칠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생활을 하면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