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역사] 47고후 8; 1-7 자원하는 마음으로 확장된 기독교의 역사Loading the player...
47고후 8; 1-7 자원하는 마음으로 확장된 기독교의 역사_2
2023. 8. 27. 주. 주일오후.
*개요: 교육설교-계시론 [고후]8: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고후]8: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고후]8: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고후]8: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고후]8:5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고후]8:6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 [고후]8:7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볼 때 특별히 누가 지시하거나 어느 기관에서 다스리거나 하는 것이 없이 발전되고 확장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일들은 매우 특이하게 여겨집니다. 뭔가 우월하고 지배적이며 관리하고 통제하는 기관이 있어야만 복음이 전파되고 확장되었을 텐데 그런 것이 없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사도와 제자들에 의해서 가르쳐지고 사람들에게 전파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기독교 역사가 자원하고 희생하며 헌신하는 마음으로 확장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독자적인 기관이나 단체가 많은 돈을 들여서 복음을 전파한 것이 아닙니다. 마치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이 함께 모였을 때 놀라운 하나님의 일들이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항상 우리는 하나님의 일이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더욱 집중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럴 때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나님의 일을 살펴볼 수 있는가를 알게 합니다. 1절부터 보십시오. “[고후]8: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고후]8: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마게도냐 교회들은 풍성한 연보를 넘치게 하였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로 인해서 그들에게는 가난한 중에도 넘치는 기쁨이 있었고 그래서 그들의 연보는 풍성하고 넘치는 것이 될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의 전파 속에는 성도들의 헌신이 있었는데 그 헌신은 하나님의 은혜가 바탕이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을 때 헌신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서 어려운 환경과 형편 중에서도 기뻐하며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러한 원리를 잘 기억할 때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고 그 은혜에 풍성함을 나타낼 때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며 기쁨이 넘쳐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마게도냐 교회들이 어떻게 누리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을 때 은혜가 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간절히 길을 찾고 그 길로 나아가기를 원했을 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고후]8:3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고후]8: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고후]8:5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바울이 증언한 것은 그들이 자신의 힘 대로 할 수 있는 것을 했고 또한 힘에 넘치는 대로 자원해서 하였는데 그것은 은혜를 따르는 일과 성도를 섬기는 일에 간절함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했던 것은 자기 자신을 먼저 주님께 드리는 일이었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도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물질을 드린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결과가 사도들을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있는데 그 은혜는 받은 그대로 전달된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욱 넘치게 자기 자신을 더 드림으로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동일한 물질이라고 해도 이렇게 자기 자신을 드린다는 그 헌신이 있었기에 기독교의 역사는 확장되고 발전되었으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단순하게 물질을 모아서 공급함으로 하나님의 일에 일조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에 하나님과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드림으로서 연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기독교 발전의 근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들어서 사용하신다는 것은 그 정성과 사랑을 통해서 사용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물질과 능력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관심과 사랑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나타내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기독교의 발전과 확장의 요소에 희생과 헌신과 사랑이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지금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모든 기독교의 역사 속에도 희생과 헌신과 사랑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이자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간절한 소망입니다. 그래서 희생하고 헌신하며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한 은혜의 헌물을 언급하면서 고린도 교회에 다시금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동참하게 하였습니다. “[고후]8:6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 [고후]8:7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그럴 때 고린도 교회도 그 풍성함에 연합하고 더욱 사랑과 은혜로 인해서 넘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앞으로 이루어질 모든 기독교의 역사를 바라보며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힘입어 우리 자신이 그 은혜를 나타내는 희생과 헌신과 사랑을 표현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에게 커다란 기쁨이며 그로 인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그에 대해서 놀랍게 반응하여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과 사람에게 드리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이 넘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와 기쁨이 성도님들의 삶에 풍성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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