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간구] 41막 9; 20-27 신앙 간구를 온전하게 하는 방법Loading the player...
41막 9; 20-27 신앙 간구를 온전하게 하는 방법_2
2024. 1. 14. 주. 주일오후. 온라인 설교.
*개요: 구원론>신앙간구 [막]9: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막]9: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막]9: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막]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9: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막]9: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막]9: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막]9: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구원론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그 구원을 통해 어떻게 믿음이 성숙해지고 더욱 커져가는지를 아는 단계로 넘어갑니다. 구원을 얻는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통해서 구원 받은 자로 살아가고 그럴 때 여러 가지 구원 받은 자로 살아가는 삶을 배워 나가게 됩니다. 그 중에 하나가 신앙적인 간구를 어떻게 하는가를 배우는 것입니다. 좀더 쉽게 말하자면 기도하는 법을 배우고 간구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기도한다는 것이나 간구한다는 것은 너무 쉽고 단순한 것 같아도 만약 그런 기도와 간구를 자기 식대로 생각한다든지 타종교에서 하는 것처럼 생각하면 기독교식의 기도와 간구를 알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은 신앙간구를 하는 방법을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배워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를 하지 않고 자기 식대로 한다든지 혹은 타종교에서 하는 것처럼 한다든지 하면 이상한 기도의 모습과 방법을 실행하게 될 것입니다. 무조건 해달라고 떼를 쓰는 방식으로 기도한다든지 머리를 흔들면서 기도한다든지 중언부언하면서 주문 외우듯이 기도한다든지 하면 기독교의 기도와는 거리가 먼 자기 나름의 기도 방식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는 그런 자기 나름의 기도가 아닙니다. 구체적이고 인격적으로 하나님께 구할 것을 아뢰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예수님께 기도하는 어떤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믿음 없음을 도와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대화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대화 속에서 기도의 본질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막]9: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막]9: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만남의 시작은 아들이 귀신 들려 있어서 고통받고 있는 것을 그 아들의 아버지가 예수님께로 데리고 오면서 시작됩니다. 아이 속에 있는 귀신은 예수님을 보고 아이가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그 자신이 예수님 앞에서 두려웠기 때문에 그 귀신의 두려움이 아이를 통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 상태를 보시면서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를 물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어릴 때부터 그랬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화가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내용입니다. 현재의 문제와 그 문제의 진행된 상태를 하나님께 말씀드릴 때에 기도의 내용이 구성됩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이미 알고 계시지만 하나님께 말씀드리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하나님께 말씀 드리는 바로 그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의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다 아실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상태를 말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알고 계시지만 그 사람의 모습에서 하나님께 대한 관계가 생기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말씀드리지 않고 오히려 숨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 더욱 나아가기 위해서 하나님께 현재의 괴로움에 대해서 말씀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구체적인 부분을 도와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막]9: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막]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9: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처음에 이 아버지는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간구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능력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믿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간구하고 나타난 뜻을 따르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지 하나님의 능력과 계획을 의심하면서 간구하는 것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을 뿐입니다. 믿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이 아버지는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간구했습니다. 자신의 믿음 없음을 도와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 연약함 까지도 도움을 요청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올바른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믿음 없음도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럴 때 더욱 진실하고 간절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결코 형식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장 진실해야만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자를 긍휼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해서 예수님은 이 아버지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막]9: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막]9: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막]9: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놀라운 예수님의 능력을 통해서 아이는 귀신의 나감을 경험하면서 쓰러졌지만 예수님을 손을 잡아 일으키실 때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간구가 응답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간절하고 진실되게 하나님께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주님이 우리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시고 믿음 없음도 도와주실 것입니다. 2024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신앙간구를 통해서 기도가 발전되고 응답이 충만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귀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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