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17: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행]17: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행]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행]17: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행]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행]17: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신론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을 우리 자신이 잘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를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우리의 신앙을 돈독하게 하는 데에도 무척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아무런 저항이나 고민이 없다 하더라도 어려운 일이 있거나 힘든 상황이 되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한 고민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되심을 알게 되고 그 하나님을 통해서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알게 됩니다.
거울을 보면서 자신을 보는 방법은 우리가 자기 눈으로 자신을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사된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볼 때 혹은 다른 매체를 통해서 자신을 볼 때 비로소 내 자신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보면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존재는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인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이해하면 하나님을 더 잘 믿을 수 있게 되고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잘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아덴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온전히 제3자적인 시각으로 하나님을 설명하는 유일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설명하는 이 구절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존재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24, 25절을 보십시오.
“[행]17: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행]17: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천지의 주재이셔서 모든 사람과 생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설명은 창세기에 나오는 내용과 일치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전부 하나님의 창조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의 한계는 무한하셔서 단지 지구에 해당하는 것만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온 우주의 모든 것이 전부 하나님의 창조세계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하시고 영원하시며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바로 그러한 분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럴 때 우리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가 구체화되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창조자이십니다. 단순히 존재하는 신 중의 한 분이 아니라 우리를 만드셨고 존재하게 하신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그러한 하나님을 이해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찾아서 발견하는 것입니다.
“[행]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행]17: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더듬지 않아도 볼 수 있고 찾을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는 않지만 주님을 찾지 않으면 만날 수 없습니다. 모든 인류와 각 족속이 하나의 혈통인 아담과 하와에게서 낳게 하시고 온 땅에 살면서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는데 그것은 자신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럴 때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된 다음에 인생은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창조자 하나님을 통해서 다음 세상을 준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기회를 살아있을 때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에게서 멀리 계시지 않으십니다. 세상에 살면서 그러한 하나님을 발견하고자 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세대에는 그들에게 맞는 기준과 뜻이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세대에서는 그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자신에게 있는 기회를 살릴 수 있습니다.
그 기회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존재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말하였습니다.
“[행]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행]17: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고 기동하며 존재하는 것의 근본이 되십니다. 인간이 그를 힘입어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바로 인간의 근거가 되시고 존재의 기반이 되신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생에서 하나님을 깨닫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과 살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깨닫고 있습니다. 하나님 존재를 깨닫는 방법은 나 자신을 보면서 하나님을 깨닫는 것입니다. 나의 존재를 이해하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이해합니다. 나의 한계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알게 됩니다. 그럴 때 믿음이 생기고 소망이 생기며 사랑이 생깁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굳게 붙들고 하나님의 존재를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말씀을 이루며 사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을 믿는 자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사랑하시며 붙드시며 복주십니다. 이것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이해하고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깨달으며 기뻐하며 그 속에서 감사하고 영광 돌리면서 살아가는 성도님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