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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전도일기




2001. 3. 7. 수요일 오전 8시 10분


오래 전부터 작정해왔던 전철역 전도를 시작하였다. 교회를 이사한 이후에 앞으로 매일 전도하기로 마음먹은 지, 나흘만의 일이다. 전도하기로 결심하고, 작정하고, 다짐하고, 확인한 이후에도 웬지 선뜻 거리로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전도의 열매가 너무 없어 낙심하여 노방전도를 중단한 이후,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이제는 거리에서 사람들을 대한다는 것이 어색해져서 그런 것 같았다.
사실, 오늘 새벽기도회 때만해도 정작 조금 있으면 거리로 전도지를 들고 나가게 된다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앞으로는 전도의 열매에 연연해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도, 또한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고 1시간만 해도 된다고 스스로 위로를 해도, 혹은 그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나가는 내 모습을 두려워하는 속사람을 진정시키려고 해도 기도 중에는 계속 노방전도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전부터 깨달아 왔던 한가지의 요령인 어떻게 해서든지 전도지를 가지고 전도하려는 장소에 나가 서있기만이라도 하면 성공이라는 결심을 계속 확인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끊임없이 간구하였다.   
그런데, 기도를 마치고 성경을 보면서 정신이 번쩍 드는 말씀을 발견하였다.
“8: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아, 이건 바로 내 이야기였다. 내가 느끼는 심정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성령님께서는 어쩌면 이렇게도 내 마음을 잘 알고 계실까! 내가 정말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뒤이은 말씀은 이러한 내 마음을 훤히 뚫어주는 것이었다.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그래, 아무 것도 아니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이런 부끄러움이나 어색함쯤이야 능히 견뎌낼 수 있어. 분명한 결심과 확신이 마음속에 펴졌다. 그리고 그 마음이 혹 사라질까 싶어 서둘러 전도지를 챙겨서 거리로 나섰다.

이수역 10번 출구는 예상했던 대로 출근하는 주민들이 많이 있었다. 아마 인근 아파트에서 걸어 내려오는 것이리라. 용기를 내어 첫 사람에게 전도지를 주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탄력을 받아 금방금방 쉽게 전도지를 전해 주게 되었다. 그리고도 예전의 버스 정류장에서 전도하던 기억이 되살아나 좀더 자신감과 용기를 얻게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이거 한번 읽어보시죠?” “저...이거 한번 읽어보시겠습니까?”
내가 생각해도 어리숙한 말이었지만, 이전에 사용하던 ‘교회에서 전도 나왔습니다. 예수님 믿으세요’라는 말보다는 훨씬 접근이 용이한 것 같았다. 일단 사람들은 뭔지도 모르게 받게 되니까...나중에 그것이 교회에서 만든 전도지였다는 것을 알았을 땐, 이미 많은 것을 읽고 난 다음이리라.
날이 추워 손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간혹은 그냥 지나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자이건 여자이건 순순히 받아주었다. 오히려 내가 나오기 전에 생각했던 수치스러움과 어색함은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 전도지를 받는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 무엇하는 사람인지 신경도 안 쓰는 눈치였다.
손이 얼어 전도지를 몇 번 놓치면서도 한 20분쯤 전도지를 나누어주다가, 문득 하늘을 보았다. 그 파란 하늘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서 날 보고 계시겠지...’ 금방 새롭게 힘을 얻었다. ‘그래, 열심히 하자.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시니까’
개중에는 전도지를 건네주면서 ‘저, 이거 한번 읽어....’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고개를 획 돌려버린다든지 손으로 강하게 거부의 뜻을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럴 땐, 피식 웃음이 나온다. 뭐랄까... 당황스러움을 웃음으로 치환해내는 능력인가? 여하튼 그런 일을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니까, 크게 신경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출근길이라 그런지 다들 걸음이 빠르다. 전철역으로 뛰어 들어오는 사람에게 저 멀리서부터 전도지를 건네줄 채비를 하고 딱 갖다가 밀면, 다행히 얼른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땐, 내가 무슨 바통터치하는 사람같기도 하다. 40여분만에 가지고 나온 전도지를 모두 나누어주었다. 음. 이렇게 쉬운 걸! 왜 내가 그렇게 고민했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나도 출근길에 합류했다. 이제까지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벗은 것 같아 몸과 마음이 가벼웠다.



2001년 3월 8일 오전 8시


몹시 추운 날씨였다. 어제 먹은 감기약 때문인지 새벽기도가 끝난 뒤에도 쏟아지는 졸음을 참을 수 없었다. 8시까지 비몽사몽간에 졸다가 정신이 번쩍 들어 이미 훤해진 밖으로 전도지를 들고 나갔다. 꽃샘추위는 한겨울을 연상시키는 매서운 것이었다. 다들 코나 귀, 뺨 등이 빨갛게 되가지고 출근하고 있었다. 오늘은 전철역이 아닌 동네 골목길에서 전도지를 나누어 줄 계획이다. 이 길목은 전철역을 향해 있기 때문에 전철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꼭 지나가게 되는 길이었다. 골목 어느 위치에서 전도지를 나누어줄까 이리저리 고민하다가 결국 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신 뒤, 가장 처음 지나치는 사람에게 전도지를 들이밀었다.
처음에 할 땐, 역시 어색한 법이다. 몇 번을 거절당하고 나니 머쓱해지기도 하고 의기소침해지기도 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다시 몇 사람에게 전도지를 내밀었을 때, 비로소 사람들이 전도지를 받기 시작했고, 나도 힘이 났다.
얼마를 지났을까? 출근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지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이 사람, 저 사람 주고 보니 이번엔 꽤 묵직하게 들고 나간 전도지가 반이 없어졌다. 막 몰려올 땐 정신없다. 무리를 지어 올 땐 대여섯 명 중 한 사람에게만 주게 된다. 그럴 땐 놓친 사람들이 아쉽기는 하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리라 위안을 하고, 다시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둔다.
이렇게 한 방향에서 오는 사람들을 대할 땐, 이미 지나간 사람들을 보지 않으려고 하게 된다. 그들이 전도지를 받았건 받지 않았건 지나간 사람들은 보고 싶지 않다. 전도지를 받은 사람의 경우 그 전도지를 버리는 모습을 보게 될까 두렵고, 전도지를 받지 않은 사람의 경우, 괜한 원망스러움이 생길까 두렵다. 아마 내가 전도지를 나눠준 뒤, 이 도로는 그 전도지를 버리는 사람들로 인해 꽤나 지저분해질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가장 큰 위로가 되는 것은 그나마 전도지가 한 사람의 손에 쥐어진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전에 벽이나, 집 우편함에 무차별적으로 꽂아 넣던 방법은 얼마나 어리석었던 것인가! 그렇게 배포하였던 전도지가 바람에 날려 길가에 뒹굴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느꼈던 상실감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지금의 안타까움은 아무 것도 아니다.
한 마음씨 좋게 생긴 아주머니가 지나가길래, 얼른 전도지를 드렸다. 그랬더니, 이게 뭐냐고 물으신다. 전도지라고 말하고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시라고 하니, ‘할렐루야!’하신다. 자기도 교회다닌다는 것이다. 기뻤다. 할렐루야라는 말을 듣게 되다니... 참으로 정겹고 기쁜 말이다. 할렐루야! 다시금 큰 위로가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추위가 심해져, 손이 다 얼었고 입이 얼어버렸다. 말도 제대로 안나올 정도로 추운데, 어떤 아저씨는 지나가면서 ‘아침부터 고생이 많다’고 한마디하신다. 손 시렵고, 추운 것은 아무런 고생이 아니다. 이미 이 자리에 나오기까지 이겨내야 했던 심적 부담감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산 기도를 하면서 추위에 익숙해져버린 것이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산에서 기도할 때, 추위로 손이 완전히 마비될 정도로 기도했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괜히 하나님 앞에 엄살을 떨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렇게 추운데 고생하니 저를 좀 기억해 주세요!’라고 말이다.
사람들이 지금은 이게 뭔가 하고 전도지를 받지만, 앞으로 계속 전도가 지속되면 아마 나를 알아보고 외면할 지도 모르겠다. 그때쯤 되면 나도 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유명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아니, 악명높은 사람이 되는 것이겠지....하지만 나의 유일한 관심사는 나를 알아보던 말던, 전도지를 받던 말던,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가 아닌가이다. 우리 교회에 나오지는 않더라도 나의 전도가 계기가 되어 어느 교회든지 나가게 된다면, 나는 낚시 바늘에 꽂힌 미끼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낚시바늘로 유인하는 먹이 정도는 될 테니까....그러면 하나님 나라에 꽤 쓰임받은 게 아닐까?




2001년 3월 10일 토요일 12시

지난 주에 광고한 대로 전도부를 만들어서 토요일에 첫 모임을 갖고 노방전도를 나가기로 했다. 사실 이전부터 토요일에 전도하는 것은 있었지만, 이렇게 공식적으로 함께 모여 전도를 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번 모임을 계기로 좀더 체계적이고 꾸준한 전도를 해보려는 것이 모임의 목적이었다. 전도부라고 해봐야 늘 나오시는 아버지, 어머니 뿐이지만 두 분다 전에 있던 교회에서 장로님, 권사님이셔서 그런지 우선, 전도하는 것에 대해 별 부담감이 없으셨다. 부끄러워하고 빼고 그러는 것이 없었다. 하면 하는 거지 뭐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셔서 전도하는 것은 훨씬 편했다.
함께 모여서 잠깐 기도하고 어디로 전도를 나갈 지 계획을 나눈 뒤 각자 전도지를 한움큼씩 들고 교회를 나섰다. 아버지는 집집마다 돌아 다니는 호별 전도를 계획하셨고, 어머니도 역시 교회 주변의 집들을 돌아다니신다고 하셨다. 나는 앞에 있는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가기로 했다. 정류장에는 몇 명의 학생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도지를 전해 주며 “이것 좀 읽어 보시겠습니까?”라고 말문을 열었다. 의아하게 쳐다보면, 재빨리 “교회에서 전도나왔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 다음엔 여러 가지 반응이 나온다. 교회를 다닌다. 나는 무교다, 절에 다닌다, 기타 등등... 교회를 다닌다고 할 때에는 그냥 “감사합니다”로 끝내거나, “어느 교회에 다니세요?”라고 말문을 연다거나, “신앙생활 열심히 하세요”라는 말 정도로 마치게 된다. 그 외의 사람들인 무교라든지, 절에 다닌다든지라는 반응이 있을 때에는 자못 긴장이 된다. ‘아, 이 사람이 꼭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데...’라는 안타까움보다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를 더 고민하게 된다. 오늘 전도하면서도 절에 다니는 사람과 무교, 혹은 아무 관심이 없다는 사람들을 꽤 많이 만났지만, 그리 썩 만족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대개 한 두 마디가 진전된다 싶으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제스쳐를 보인다. 그럴 때는 대화를 지속하기가 어렵다. 괜히 매달리는 것 같아 구차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러면, 그냥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세요. 꼭 전도지 한번 읽어 보세요, 예수님 믿어야 구원받고 그렇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합니다’라는 말을 재빨리 해준 뒤에 물러서게 된다.

왜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라’는 말에 대해 사람들은 전혀 귀담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것일까? 내가 말을 잘못한 것일까? 구원이라는 말이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추상적인 말인가? 예수님 믿는 우리들에게야 이 말은 늘상 쓰는 말이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 이 말은 마치 벽에다 대고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지옥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해보았다. 여전히 ‘당신 지옥갑니다’라고 상대방의 기분을 잡치게(?) 하기 전까지는 전혀 대꾸도 없고 관심도 없다. 나만 앵무새처럼 “예수님 믿어야 구원받습니다. 예수님 믿지 않으면 구원 못 받습니다. 구원 못 받으면 지옥갑니다”라고 달달 외는 것 같다. 절에 다니는 사람들이나, 아무 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 마음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러한 허탈감 속에 고민하다보니, 예수님의 복음 전파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 이 얼마나 황당한 말인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오다니.... 그 나라는 죽어서야 가는 나라인데 어떻게 이리저리 움직일 수가 있단 말인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황당스러움이 느껴지는 듯 하다. 이 말씀이 어떻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역시 구원은 머리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되며,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의 전도의 목표는 지혜나 기술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을 믿어야 천국에 가는 구원을 얻을 수 있음‘만을 전하는 것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전도 중에 만난 ‘남묘호랑개교’ 신도라는 한 아주머니는 내가 뭐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다른 사람이 내 죄를 사해 준다는 것은 자긴 믿지 않는다고 미리 선수를 친다. 사람은 노력을 해서 사는 것이고, 숙명에 따라 살 뿐이라고 말하는데, 내가 그 말에 대해 대꾸를 해주려고 머릿속으로 막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 자신이 탈 버스가 왔는지 휙 가버린다. 허무하기도 하지만, 안타깝다. 한사코 전도지도 받지 않으려는 그 아주머니는 과연 자신의 운명이 현재 지옥에 향해 있음을 아는가 모르는가...
전도를 마치고, 함께 모여 다시 한번 전도의 의의를 되새겼다. 그것은 ‘열매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뿌린 사람과 심은 사람과 거두는 사람은 다 각각 다르기 마련이다. 전도자는 오직 자신의 복음 증거함과 그 일을 쉬지 않음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때가 되면, 하나님의 또 다른 일군이 그 열매를 거두리라 위로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낙심하지 않고, 쉬지않고 전도하는 전도자가 되리라 다짐하였다. 새삼 고린도전서의 이 말씀이 가슴속에 와 닿는다.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2001년 3월 14일 수요일 오전 8시

오랜간만에 전도를 나가서 그런지, 무척 어색하고 창피스러웠다. 이런 마음 나도 잘 모르겠다. 왜 창피할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그들이 예수님 믿고 구원받으라는 그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주는데 왜 내가 창피할까? 전혀 창피할 이유는 없는데, 막상 나가려니 창피하다. 부끄럽다. 어색하다. 속마음으로는 전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럴까?

다시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 용기를 내어 전도지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나가기까지 무수히 많은 갈등이 교차하지만 일단 나가고 보면 절반은 승리다. 오늘도 나는 나가서 전도지를 돌리고, 여러 가지의 복잡한 감정과 싸워야만 한다. 이것은 어떨 때 나와의 싸움 같기도 하다. 사실 밖에 나가면 대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나와의 싸움만이 있을 뿐이다. 거슬리는 사람도 없고, 불쾌하게 하는 사람도 없다. 그저 내 속의 마음과 한바탕 실랑이를 벌일 뿐이다. 그런데, 오늘은 그 갈등이 더욱 심했다. 왜 그럴까?

문득,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는 고전 9:10의 말씀이 생각이 난다. 전도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소망은 무엇인가? 전도해도 듣지 않는 자들인데, 전도해도 교회가 부흥하는 것은 아닌데, 왜 나는 전도를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전도를 하지 않아야 할까? 아무 효과가 없기 때문에? 아무런 열매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더 이상 전도를 할 필요가 없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오늘 내가 전도를 나가는 일에 큰 갈등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전도해도 아무런 열매가 없으니 자연히 전도를 하는 내 자신에게 소망이 사라지는 것이다. 밭을 갈아도 소망을 가지고 갈아야 하는데, 하물며 곡식을 떠는 자도 그 곡식을 다 떨어낸 다음에 그 추수한 것에서 자기 몫을 받을 소망을 가지고 일을 하는데, 나에겐 아무런 소망이 없다. 여전히 교회는 미약하고, 미래는 불투명하며, 비젼은 희미해진다. 하나님의 약속도 너무나 멀게만 느껴진다. 이러다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이러한 온갖 잡념이 내 머릿속에서 그같은 갈등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금 성경을 읽어야 했다. 다시 성경을 배워야 했다. 잊고 있었던 것을 다시 한번 더 깨우쳐야만 했다. 로마서의 말씀은 내게 이렇게 말하신다.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0: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0:16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0: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10:19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10:20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
10:21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나는 이사야의 질문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탄식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그런 심정이었다. 전도지를 전해주려 해도 피하고, 흘낏 보고 나서 고개를 돌려버리고, 받았다가도 다시 되돌아와서 돌려주고 가는 저들의 외면과 무관심과 무시 때문에 복음과 그 복음을 전하는 나는 함께 모멸감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개의치 말라고 하신다. 내가 생각하는 그런 소망이 아니라 할지라도, 말씀은 내게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계획에 대해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모든 일의 계획은 하나님께서만 가지고 계신 것이니까. 나의 자세는 오직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주의 부름에 순종하는 것이리라.

전도란 무엇일까? 전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는 방법이야 무수히 많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방법 또한 무수히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잊지 말아야겠다. 전도는 투자하여 이익을 보는 사업이 아니라는 것을, 전도는 수지타산이 맞아야 하는 장사가 아니라는 것을. 만약 그렇다면, 오늘날 전도는 전혀 어리석은 일이 될 뿐이다.  오직 전도는 부름에 순종하는 것뿐이다. 하라 하시니 했고, 나머지는 주님께 맡길 뿐이다. 오직 주의 구원의 복음만이 편만히 전파될 뿐이다. 누군가 복음을 증거하는 자가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2001년 3월 15일 목요일 오전 8시

오늘은 총신대 전철역으로 나가보았다. 아침에 예인이를 데리고 와야 하는 일이 있어서 전도를 마치자 마자 서둘러 움직여야만 했다. 전도지를 들고 전철역 입구에 서보니, 사람들은 오만 곳에서 부지런히 바삐 자신들의 출근길을 서두르고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누구에게 주어야 할 지 잠시 혼란스러웠다. 이때까지 만나보지 않았으리라 짐작되는 사람들의 오는 방향을 향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오직 그 한방향만 바라보며,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전해주었다.

출근길의 사람들은 매우 분주하다. 반 이상은 종종 걸음이었고, 그 중에는 뛰는 사람도 있었다. 나 자신도 과거 학생으로서 그러한 등교길을 경험해 보았으므로, 그들의 바쁜 걸음은 충분히 이해될만 하였다. 문제는 그들에게 어떻게 전도지를 전해주는가 였다. 고민해 보았지만, 뛰는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전해주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나라도 뛰면서 전도지를 받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아무리 그 전해주는 전단지가 좋은 내용이라하더라도 말이다.
지금까지의 보잘 것 없는 전도 경험으로 볼 때에, 뛰고 있는 자들에게는 도저히 복음을 전하기란 불가능하다. 시간이 없다는데야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생명이 달린 문제라 해도, 뛰고 있는 사람에게는 소귀에 경읽기 였다.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바쁜 사람들은 절대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는 생각이다.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다. 죽음에 대해 생각할 겨를 조차 없다. 그들이 과연 죽음에의 구원이나, 생활에의 구원을 생각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하나님만이 아시리라 믿는다.

어린이와 고양이는 교통사고율이 높다. 그 이유는 주위를 살피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앞만 보고 달려 나간다. 그래서 자주 사고가 나고, 운전자에게는 위험한 존재가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앞만 보고 달려 나간다면 어디선지 찾아오는 위험을 결코 깨닫지 못할 것이다. 오늘도 수없이 많은 앞만 보고 달려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저 사람들에게 옆을 보라고 이야기 해 주고 싶다. 당신 자신의 생명과 죽음의 문제를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저들은 너무나 빠르다.....

전도지를 건네주면서, 나의 유일한 일은 이것 좀 읽어보시라고 말하는 것 이외에 한 가지가 더 있는데, 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는 일이다. 그러고 있노라면, 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이제까지의 사람들은 단지 배경으로서의 사람들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 200명이 넘는 사람들과 1초도 안되는 짧은 만남을 가졌다. 그들의 얼굴을 볼 때에 그들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었다. 그들은 살아 숨쉬는 인간들이었다. 복음으로 낚아 올려져야만 하는 대상들이었다. 교회 안에서 나는 6명의 사람만을 만날 뿐이었지만, 교회 밖에서 나는 매일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다양한 사람들을 2~300명씩 만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고민이 생긴다.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구원을 받게 할 수 있을까? 구원받지 못하면, 전부다 지옥으로 떨어질 텐데.... 복음전도자의 절대절명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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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수련회의 목표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8-08-17 9 3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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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반년을 하나님께 맡김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8-07-05 6 3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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