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에 보면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가 나타납니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가 바로 그 일곱
교회입니다. 이 일곱 교회는 하나님이 촛대로서 다니시는 곳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친히 붙들고 계심을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이 교회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신랄하게 책망하셨고 과감하게 경고하셨습니다. 아마 생각컨대 그 일곱 교회는
계시록의 내용을 읽으면서 부끄럽기도 했겠지만 정신을 차리기도 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계시록은 단지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가
아니라 모든 교회에 보내는 편지로서 그들 자신만의 깨달음이 아닌 모든 성도들을 위한 깨달음을 주는 도구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격적인 모욕이나 일방적인 공격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 앞에서 돌이켜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오히려
약이되고 유익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이러한 대표적인 일곱 교회들이 있다면 그 교회들은 여전히 비난과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
교회들은 횡령을 했고, 세습을 했으며, 표절을 했고, 간음을 행했으며, 배임과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에 대한 내용이 계시록이
아닌 신문에 실려서 여기 저기 퍼지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에게건 믿지 않는 사람에게건 가리지 않고 말입니다. 심지어는 국내이건
해외이건 상관이 없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일들을 통해 대표적이지 않은 모든 교회에 깨닫게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맏이가
부모님에게 혼다면 밑의 자녀들은 스스로 몸을 사리게 되는 것처럼(지혜롭게도), 모든 교회에 그러지는 말아야지 라는 각성과 자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칭 한국의 일곱 교회들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다 하더라도 결국은 교회 전체의 변화와
발전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내용을 통해 '우리는 그러지 말아야지' 라는 깨달음을 가졌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좋은 의미로서 이러한 깨달음과 발전이 앞으로 더욱 구체화되기를 소망해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교회의 발전이
양적발전이라고 할 때, 앞으로는 질적발전으로서의 더 큰 목표를 이루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렇지 않아라고 거부한다든지, 하나님의 말씀은 많은 오류가 있어라고 반격한다든지,
그러거나 말거나 나와는 상관이 없어라고 외면한다든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거부와 반격과 외면 속에서 다음 세대는
동일하게 그일을 반복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에게 주셨던 경고가 현실이 되는 안타까운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이미 있었던 계시록의 상황들이 다시금 전개될 것입니다. 계시록의 일곱교회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