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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왕하] 12왕하 5; 9-15 요단강에 몸을 담그는 나아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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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왕하 5; 9-15 요단강에 몸을 담그는 나아만2_4

  

 

  

2019. 10. 23. . 수요예배

  

 

  

*개요:  열왕기하 연구

  

[왕하]5: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왕하]5: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왕하]5: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왕하]5: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왕하]5: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왕하]5: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왕하]5:15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자신의 뜻을 변화시키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나아만 장군입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원래 하려고 했던 일을 바꾸어서 해야 하는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문둥병이 낫게 되었습니다. 나아만의 이야기가 변화의 예가 되는 이유는 엘리사 선지자의 방법을 거부하고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가 그 종들의 말을 듣고 마음을 바꾸어서 결국은 병이 나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이스라엘에서 한 여자아이를 포로로 잡았는데 그 아이가 나아만 아내를 수종들면서 이스라엘의 선지자에게 가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말해주었고 그 말에 따라서 아람왕의 허락을 받아 이스라엘에 왔습니다. 처음에는 이스라엘 왕에게 찾아가서 문둥병을 고쳐달라고 말하였지만 나중에 이스라엘에 있는 선지자 엘리사가 이 소식을 듣고 자신에게 오게 하였습니다. 사실 여종이 말했던 선지자는 바로 엘리사 선지자였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처음부터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왕에게 가서 병을 고쳐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나아가는 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소망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 길을 꾸준히 올라가다 보면 하나님의 마련하신 축복의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물론 잘못 갈 수도 있습니다. 엉뚱한 방향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도우심을 얻고자 노력하다 보면 결국은 그 은혜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끝까지 가는가 입니다. 그 길의 초반부에서 그만두면 그 길의 끝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사라집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사모할 때 이런 저런 시행착오와 경험들을 합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몇 번 해보았다가 낙심한 뒤에 그런 낙심을 정당화한다면 하나님의 충만으로부터는 더 멀어질 것입니다. 나아만도 이스라엘왕에게 찾아갔다가 다시 선지자 엘리사에게로 방향을 바꿔갔는데 이렇게 방향만 바꿨지 가려는 의지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충만으로 점차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나아만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엘리사가 전해준 말이 자신의 생각과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왕하]5: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왕하]5: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왕하]5: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나아만은 엘리사가 자신에게 해준 이야기를 들으며 화를 냈습니다. 왜나하면 자신의 생각한 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생각으로는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자신을 존경해 줄 것같았습니다. 그러나 엘리사 선지자는 존경은 커녕 철저히 무시했습니다. 자신을 맞으러 나오지도 않고 사자를 보내 해야할 일만 전달해 주었습니다. 그것도 맑고 깨끗한 아람의 강이 아닌 이스라엘의 강에서 목욕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위신과 명예와 현재의 상태를 내려 놓고 낮아지라는 말로 들렸습니다. 이렇게 엘리사 선지자로부터 기대하는 것이 있었지만 그런 기대와 너무나 달랐을 때 그는 화를 내면서 모든 일을 그만두고 중단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을 떠나고자 하였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왕하]5: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길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길을 우리에게 숨기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은혜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지 않으시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그 은혜로 가는 것을 거부해버리기 때문입니다. 때로 그 은혜의 길은 너무나 간단하고 단순한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그 길을 스스로 어렵고 복잡한 길로 단정해 버립니다. 그래서 그 길에서 돌아서 버릴 때 하나님의 충만의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기도를 하기 위해서 기도원을 간다고 해보십시오. 당장 기도원의 그 먼 거리로 인해서 불편한 마음이 들 것입니다. 기도원의 특별한 분위기에 마음이 상할 것입니다. 기도원에서 각자 자신의 기도제목에 집중해 있는 다른 성도들 때문에 신경이 거슬릴 것입니다. 기도원의 그 열악한 환경때문에 거부감이 들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왜 기도원에 왔는지를 잊어버릴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충만의 기회도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나아만장군은 요단강보다 다메섹 강이 더 깨끗하지 않으냐고 생각했습니다. 거기서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이었습니다. 다메섹 강들에서는 백번 씻어도 깨끗하게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요단강에서만 씻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향해 나아가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낫게 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깨끗하게 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변화시키시고 발전시켜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뜻을 따라 어려움을 감당하고 인내하며 순종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낫고 깨끗하게 되며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나아만 장군처럼 말입니다.

  

문제는 이것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입니다. 아무리 그 뜻이 유익하고 중요해도 이해시키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나아만 장군을 설득하지 못했다면 그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천하의 엘리사도 은사가 넘쳤던 엘리사도 떠나가는 나아만장군을 잡지는 않았습니다. 오직 그를 잡은 것은 그의 종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종들이 나아만 장군의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씻으면 깨끗하게 된다는데 이보다 더한 일이라도 하면 했지 이렇게 작은 일을 못하시겠냐고 장군을 설득했습니다. 그런 귀한 종들이 장군에게 존재했습니다. 그들은 엘리사가 선지자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했습니다.

  

[왕하]5: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이 말 속에는 씻는 것이 더 쉬운 일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엘리사가 선지자라는 것을 깨우치게 하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말을 무시할 수 없다고 한 것입니다. 자신의 존경을 추구하는 마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해주는 선지자의 말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존경으로 인해 얻는 것은 나병일 뿐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름으로 얻는 것은 그 병이 낫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애초에 그에게 이스라엘 종의 조언을 듣게 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 어떻게 해야 문둥병을 나을 수 있을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종들을 통해 그 말을 따를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고 그 도우심을 받으며 나아갔습니다. 그럴 때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순종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왕하]5: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왕하]5:15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 선지자의 말에 순종해서 요단강에서 일곱번 몸을 씻었고, 그 모습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을 받는 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요단강에 자신의 몸을 담갔습니다. 요단강물은 그를 덮었고 그는 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럴 때 그의 외부가 온전히 건드려졌습니다. 그의 내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몸만 집어넣었지 마음은 집어넣을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의 내부인 마음은 그의 몸이 깨끗하게 된 다음에 변화되었습니다. 물 속에 들어갔다 와서 몸이 나음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그의 몸만 깨끗해진 것이 아닙니다. 그의 몸과 마음이 다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주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욕구를 채우는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때에만 만족이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욕구를 채우면 늘 그 때 뿐입니다. 하지만 은혜를 채우면 놀라운 몸과 마음의 변화가 있습니다. 자신의 존경의 욕구나 나름의 기대와 생각을 이루고자 했었지만 그것을 버리고 은혜를 따르고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그 는 나병도 나았고 불신앙도 해결하였습니다. 그는 더 이상 예전의 거만하고 존경받기를 좋아했던 군대장관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자기 나라에 돌아가도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여전히 몸은 드리지만 마음은 드리지 않고, 마음은 드리지만 몸은 드리지 않는 항상 뭔가 부족한 그런 상태가 아닙니까? 온전히 그 은혜에 몸을 잠그기를 싫어하는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히 치료되기를 원하십니다. 그 온전한 치료는 바로 하나님 안에 푹 잠길 때에 비로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물 속에서 비로소 우리의 삶이 새로워지고 우리의 살은 어린아이의 살처럼 깨끗하게 되고 우리의 마음은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순수하게 됩니다.

  

여전히 우리 속에 부끄러움과 수치스러움과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마음과 삶이 있을 때 하나님 은혜에 온전히 나아가기를 결심해보십시오. 점차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보십시오. 진정한 기쁨과 감사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은혜의 강물에 일곱 번 몸을 잠그고 새살로 거듭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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