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8:7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느]8: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느]8: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느]8: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느]8:11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느]8: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삶의 커다란 변화를 이루게 합니다. 그 이전에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삶에서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면 이것은 삶의 방향성이 놀랍게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아가고자 한다는 것이고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다에서 배를 따면 육지가 멀어질 때가 있고 가까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 기준은 육지가 어떻게 보이느냐 입니다. 육지가 작게 보이면 멀어지는 것이고 육지가 더욱 크게 보이면 가까워지는 것이 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되지만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절을 지키면서 에스라에게 성경말씀을 읽어달라고 요청하고 그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이스라엘에서의 삶이 의미 있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을 때만이 인생은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을 때 놀라운 반응을 경험했습니다.
“[느]8:7 예수아와 바니와 세레뱌와 야민과 악굽과 사브대와 호디야와 마아세야와 그리다와 아사랴와 요사밧과 하난과 블라야와 레위 사람들은 백성이 제자리에 서 있는 동안 그들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였는데
[느]8:8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에스라는 율법을 낭독하였고 다른 레위 사람들은 그들이 들은 율법의 뜻을 해석하고 설명하여 그 내용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단지 율법을 낭독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 내용을 설명한 것은 그것이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이 율법을 알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그러면 하나님께로 더욱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스라와 레위 사람들은 애를 써서 말씀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바다를 헤치고 육지로 나아가는 것처럼 말씀을 사모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각자 느끼는 놀라운 경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알게 되면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우는 것이었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느]8: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느]8: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그들이 울었던 이유는 왜 우리가 이런 말씀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을까 하는 자조적인 울음이었습니다. 그들은 나라가 망하는 괴로움과 포로생활의 서러움과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와서의 고단함을 느낀 다음에 비로소 자신들이 해야 했던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말씀 속에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온전하게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삶의 본질이자 핵심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그 말씀을 배우고 익힘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성일을 지키고 여호와를 기뻐하는 삶에 대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삶 속에 실천한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점차 가까워집니다. 그것을 귀하게 여기면서 그 가치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 변화된 모습이 다음 구절에 나타납니다.
“[느]8:11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느]8: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레위 사람들은 백성들을 정숙하게 했습니다. 감정적인 상태에만 빠지지 않게 했습니다. 이성적이고 차분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했습니다. 그럴 때 모든 백성은 크게 즐거워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을 살리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올바르게 살고 하나님만을 경외하면서 사는 삶은 그들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풍요롭게 살 수 있게 했습니다. 우상숭배가 그들을 망가뜨리는 것이었지 하나님을 경배하며 그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은 그들의 삶을 복되게 만드는 축복의 길이었습니다.
1883년, 진화론을 주장한 다윈은 인간과 원숭이의 중간 단계의 화석을 발견하고자 남양군도(뉴질랜드 위쪽의 섬들)를 탐색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굉장히 미개한 식인종 무리를 발견하고 자신의 이론이 맞다고 확신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후 30년 정도가 지난 다음에 자신이 갔던 곳을 다시 방문하였는데 그곳에서 사람들이 옷을 입고 찬송가를 부르며 교회가 세워지고 학교가 세워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가 알아봤더니 패튼 선교사가 그곳에 복음을 전하여서 사람들이 변했던 것이었습니다. 큰 감명을 받은 다윈은 패튼 선교사를 보낸 영국 런던선교회에 거액을 기부했다고 합니다.
교육을 통해서 바뀔 수 있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살아야 하는 방향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알 때 그 은혜를 경험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말씀을 통해서 지금 수준보다 더욱 신앙이 발전됩니다.
이러한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그 내용을 더욱 밝히 알게 되어서 하늘의 기쁨을 누리며 사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