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교육] 1창 6; 1-3 성교육의 필요성과 신앙적 의미
1창 6; 1-3 성교육의 필요성과 신앙적 의미_2
2024. 6. 23. 주일오후 온라인 설교.
*개요: [창]6: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창]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창]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현대를 살아갈 때 성교육에 관한 문제는 늘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분야입니다. 중세시대나 근대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데 삶에 필요한 성에 대한 교육은 필요할 때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보다는 암묵적으로 은밀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교육은 항상 세상의 영향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신앙과 교육의 영향을 통해서는 오히려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점을 안타까워 하면서 어떻게 하면 자라는 세대들이 올바른 성의식을 가지고 성문제에 대해서 지혜롭고 신앙적인 결정과 판단을 하게 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문제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좋은 정보와 지식이 자라는 세대에게 먼저 선점해서 좋은 정보와 지식을 몰아내게 됩니다. 성교육과 비슷하게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이 여가생활입니다.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가르치지 않으면 그 여가시간을 자기 마음대로 악하게 보내게 되고 결국에는 그 여가시간이 신앙의 시간을 압도해 버리게 됩니다. 그와 같이 성에 대한 생각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는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자녀들 뿐만이 아닙니다. 자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 자신들도 성인들도 장년들도 이러한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을 보여주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올바른 방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의미를 알게 하시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이 말씀은 성교육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방향성을 깨닫게 합니다. 1절부터 보십시오. “[창]6: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창]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성경에서 성교육이라는 단어는 안 나타나지만 성의 의미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 등장하는 아담과 하와의 모습에서 성의 의미가 나타났고 또 창세기 6장에서 성의 의미가 보여집니다. 이 말씀 속에서의 성교육의 의미는 단지 성적 기관이 어떻고 그 기관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남자로서 혹은 여자로서 성적 능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입니다. 그럴 때 성 기관의 사용방법도 의미가 있습니다.
사람이 땅에서 번성할 때 그들에게서 딸들이 났다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사람의 자녀들의 분화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미 그 전에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유리하는 자가 되면서 사람의 선구자가 되었고 셋이 새롭게 태어나 아담의 자손을 이어가면서 하나님의 자녀의 선구자가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분화된 모습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과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들의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러한 자들이 창세기 6장에서 사람의 자녀와 하나님의 자녀로 나타난 것입니다. 어쩌면 아담과 하와는 태어난 다음부터 자신의 성적 기관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알았습니다. 좀더 자세한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되었겠지만 성적 기관에 대한 이해는 저절로 알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가르쳐야 하는 것은 사람의 자녀와 하나님의 자녀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복잡한 사고의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녀들에는 아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딸도 해당됩니다. 그들의 문제는 단지 아름다움만 보면서 사람의 자녀들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이점은 아들이나 딸이나 상황이 동일했습니다. 그들이 정말 바라보았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기준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부하며 부인하는 사람의 자녀들을 연모했을 때 그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뜻대로 사랑하는 일을 실행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여러 여자를 데리고 오신 것이 아니라 하와만 데리고 오셔서 두 사람 사이에 진실한 사랑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 하와는 아담에게 갈비뼈를 대신하는 특별한 의미의 아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 친밀함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다음 세대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오직 외모의 아름다움만 보면서 모든 이성을 사랑했고 그럴 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결국은 성문제의 타락으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년수를 단축시키시고 그들의 자유로운 연애에 대해서 심판하셨습니다. “[창]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기준에 따르는 죄악된 육신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이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날이 백이십 년으로 단축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전에 사람은 5백년 혹은 6백년을 살았었지만 그들의 범죄와 타락함으로 인해서 120년으로 축소되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 심판 속에서 하나님은 자유로운 연애와 자유로운 결혼이라는 잘못된 성의식을 금지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주어진 인생 동안 해야 하는 일은 겉으로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의 마음에 가는 대로 성의 상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교육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상대에 대해서 진심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영이 사람과 함께 하면서 그들이 육신이 되는 육체의 쾌락을 따르는 세상의 사람이 되지 않고 정신의 기쁨을 나누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할 때 진정한 성의 감사함을 가장 온전한 관계 속에서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걸 사모할 때 성교육의 의미가 신앙 속에서 잘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이루어지는 성적 관계는 부부관계이자 아름다운 가정의 모습이 되어질 것입니다. 그것은 에베소서에 나타난 다음의 모습과 같습니다. “[엡]5: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아름다운 모습은 육체를 사랑하면서 정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육체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정신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와 정신 둘 다를 사랑할 때 비로소 온전한 친밀감을 이루는 정신이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육신에 머무르지 않고 이러한 정신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성교육에 대한 지혜와 가치를 잘 생각하면서 인간이 육신이 되지 않고 정신이 되기를 바라셨던 하나님의 뜻이 단순히 성을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않으면서 온전한 창조의 섭리를 잘 나타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가 더욱 신앙 안에서 성문제에 지혜로 채워지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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