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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벧후 1; 3-7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_2
2024. 12. 29. 주. 주일오후 온라인 설교
*개요:
[벧후]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벧후]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후]1: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벧후]1: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벧후]1: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올해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목표를 계속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목표를 성경 속에서 함께 묵상한 이유는 그리스도의 생활이 중요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이 발전하는 것은 단지 신앙활동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삶에서의 모습이 신앙에 따라서 발전할 때 믿음도 더욱 커져가고 생활의 모습도 더욱 성숙해 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은 발전되었더라도 삶에서의 모습은 이중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의 모습이 삶으로 나타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오늘 말씀은 생활의 모습이 중요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믿음을 가질 뿐만 아니라 그 믿음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앙에 따라서 생활도 달라지게 됩니다. 베드로 사도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본문 말씀 속에서 증거했습니다.
“[벧후]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생명과 경건을 사모하는 믿음을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생명을 사모하고 경건을 사모할 때 그 믿음 대로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생명과 경건에 속한 은혜로운 생각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얻은 구원입니다. 그 구원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설명하는 부분이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는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을 때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이 모든 것을 알려주시고 허락해 주셨을 때 그 복음과 전파를 통해서 알게 되고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믿게 된 모든 것은 예수님이 허락하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자신을 믿고 구원을 얻게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그 다음 구절에 나옵니다.
“[벧후]1: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셔서 이 약속으로 인해 세상의 심판을 피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을 닮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욕으로는 세상의 썩어질 것만 구하겠지만 은혜로운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소망이 있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죽은 다음에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소망과 함께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거룩한 성품에 참여할 소망도 있습니다. 그 소망을 붙들고 살아가는 자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 거룩한 성품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그걸 한번에 할 수가 없으니 세상에서 충분히 노력하고 그 다음엔 천국에서 영원토록 누리면서 살아갑니다. 그러한 고귀한 미래를 가진 자로서 우리는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도록 하시는 덕목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덕목이 무엇인지 살펴보십시오.
“[벧후]1: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벧후]1: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벧후]1: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이 말은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믿음부터 덕,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우애와 사랑은 한 마디로 말해서 신앙에 따라서 살아가는 생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니 우리가 서두에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의 뜻은 신앙만으로 살아가라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 따른 변화된 생활로 살아가라고 명령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만 있고 나머지 것들이 삶에서 나타나지 않으면 그 믿음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업신여기고 비방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하나씩 새로움을 생활에 공급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씩 그 의미를 묵상해 보면 덕은 다른 사람에 대한 온유함을 보여줍니다. 지식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절제는 유혹은 많은 생활에서의 구별된 삶을 의미하는 것이고 인내는 인내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내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모습을 갖는 것입니다.
경건은 삶이 거룩해져서 하나님을 높이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우애와 사랑은 모든 사람에 대해서 악하게 대하지 않고 선하고 진실하게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이렇게만 살아도 신성한 성품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외식적인 모습이 아니라 본질적인 변화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함께 있는 사람들의 영향으로 삶이 바뀌는 경우가 있습니다. 강퍅하고 거친 사람이 함께 그리스도의 성품을 사모하는 사람들과 같이 있다 보니 예수님을 달아갈 수 있습니다. 그 본질은 바로 믿고 따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 하나님의 능력이 넘쳐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신앙의 본질이 삶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기억하고 더욱 그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시는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