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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창 13; 8-11 유연함 속에 있는 하나님의 축복_2
2024. 12. 22. 주. 주일오후 온라인설교.
*개요: 신체목표-유연함
[창]13: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창]13: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창]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창]13: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그리스도인의 신체목표를 생각할 때 마지막 주제는 ‘유연함’입니다. 유연함은 신체의 유연함이 아닌 사고의 유연함을 의미합니다. 정신활동도 신체가 유연한 것처럼 유연하게 활동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유연한 생각은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유연해지면 경직된 사고를 하지 않고 다양하고 원활한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되면 감정에 빠지지도 않고 정신활동도 평안하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신앙적인 믿음과 소망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사고의 한계 속에서는 그러한 유연함이 생길 수 없지만 신앙적인 사고 속에서는 유연함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적인 사고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마음입니다. 그럴 때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시야가 확장되면서 더 큰 것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더 넓은 것을 생각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풍성한 신앙적인 사고와 활동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정신도 유연해지며 신앙인으로서의 생활도 은혜롭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러한 사고의 유연함을 보여주는 아브라함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는 옹졸하거나 경직되거나 편협한 사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가질 때 그렇게 유연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의 마음에 있었던 신앙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는지 본문을 통해 살펴봅니다. 8, 9절을 보십시오.
“[창]13: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창]13: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아브람은 조카 롯과 함께 살았는데 하나님께서 축복을 많이 주셔서 소유가 더욱 커졌고 그로 인해서 거주지의 한계가 생기면서 종들이 서로 싸우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만약 축복을 주시지 않았다면 그렇게 부대끼며 싸울 일도 없었지만 축복을 많이 주셨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갈등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아브람은 유연함을 가졌습니다. 이 부분이 중요합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더욱 강퍅해진 것이 아닙니다. 더 완악해지고 옹졸해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현재 있는 땅을 놓고 싸우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따라서 더욱 축복을 받기를 바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조카 롯에게 제안하기를 우리 앞에 땅이 많이 있으니 따로 떨어져서 각각 기업을 세워 나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오른쪽으로 가도 좋고 왼쪽으로 가도 좋으니까 한쪽을 롯에게 택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각자 사모하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 아브라함은 유연하게 상황에 대처했습니다. 그에게는 오른쪽이 더 좋거나 왼쪽이 더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쪽이든 좋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복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유연함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단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런 목적으로 유연함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한계가 생길 것입니다. 갈등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도 그것이 더 좋게 생각되기 때문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더 풍성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등을 끝내려고 하거나 해결하려고 하는 목표를 성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려고 할 때 유연함을 가질 수 있고 그러한 유연함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어떻게 복을 주실 것인가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라가면서 신앙의 발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로 우리가 이 말씀을 삶 속에 적용하려고 할 때 생각하는 것은 어느 쪽을 선택하든 괜찮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방향을 선택하든 혹은 진로를 선택하든 혹은 결과를 선택하든 그 모든 것에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가졌던 유연함을 우리도 삶 속에서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이 우리를 더욱 풍성한 신체와 정신과 마음의 모습을 갖게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고자 했을 때 과연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났을까요? 10절을 보십시오.
“[창]13: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창]13: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롯은 선택의 순간에 자신의 시각에 좋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느 쪽이든 하나님을 따르고 의지할 생각이었지만 롯은 단순히 현재의 좋은 모습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결국 롯은 요단 지역을 택하면서 동쪽으로 갔고 아브라함은 그 반대인 서쪽으로 가면서 결정은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그 방향의 선택의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롯은 좋은 것만 택하려고 하다 보니 결국에는 그 당시 발전했던 소돔과 고모라로 들어가서 세상 사람들의 악에 빠지게 되었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을 따르고자 하면서 기업을 세우고 그 기업의 확장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소유가 많아져서 생긴 선택이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선택할 때 더욱 풍성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 인도하심의 축복을 사모하기 때문에 더욱 유연할 수 있습니다. 그런 유연한 삶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축복의 풍성함도 경험하게 했습니다. 자신의 목표가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추구하고 집착하면서 야박하고 편협하며 강퍅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사모하면서 유연하고 풍성하며 온유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신앙의 삶이 생활의 변화로 이어지게 합니다.
이러한 말씀을 마음에 새겨서 그리스도인으로 풍성한 유연함을 가지고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와 축복을 날마다 사모하는 거룩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