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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창 29; 16-20 자제력은 더 큰 것을 사모하는 마음이다_2
2024. 10. 13. 주. 주일오후. 온라인 설교.
*개요:
[창]29:16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창]29:17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창]29:18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창]29:19 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창]29: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것은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살지 않으면 신앙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지 못하며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이미지만 보이게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목표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목표라는 의미로 ‘자제력’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자제력’은 위기상황에서 가질 수 있는 목표로서 마지막으로 살펴보는 주제입니다.
자제력을 갖는다는 것은 평상시에만 해당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위기시에도 해당이 되어야 합니다. 위기 때 자제력을 잃어버리면 결국은 자제력은 무의미한 것이 됩니다. 자제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자제력이 있을 때 좋은 모습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또한 자제력이 있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자제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생활 속에서 신앙의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목표를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볼 때 오늘 말씀은 자제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6절을 함께 봅니다.
“[창]29:16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창]29:17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창]29:18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야곱이 삼촌 라반에게 그 딸들 중 하나인 라헬을 위해서 칠 년을 섬기겠다고 할 때 그 이유는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칠 년 동안 라반을 위해서 일하기로 했고 그런 시간을 감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이 그 시간 동안 야곱을 참고 견디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제력의 핵심이었습니다. 영어로 self-control 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렇게 자신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랑 속에서 자제력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더 큰 것을 사모하고 사랑할 때 현재의 그보다 작은 것을 견뎌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의 마음은 단순히 이를 악물고 칠 년을 섬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자제력은 견디기 어려운 것을 간신히 이겨내는 아슬아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랑으로 충만한 자제력은 오히려 시간의 흐름을 다르게 생각하게 하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창]29:19 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창]29: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야곱이 라헬을 위해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는데 그럴 때 그의 마음은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시간 개념이 바뀌는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자제력은 단순히 괴로움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즐거움으로 바뀌는 본질적인 변화를 이루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핵심이 단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쌓아가는 것이고 더 커져가는 것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 사랑이 더 크기 때문에 참을 수 없는 마음보다 참을 수 있는 마음이 더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야곱의 마음은 그 이후에 외삼촌 라반이 야곱을 속이고 라헬을 주지 않고 레아를 주었을 때에도 나타났습니다.
“[창]29:26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창]29:27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창]29:28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칠 년이 지난 뒤 결혼식 때 라헬을 주지 않고 레아를 주었을 때 야곱은 라반을 참기 힘들었지만 다시 칠 년을 섬기고 기다렸던 이유는 라헬을 더욱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자제력이 우리가 삶 속에서 자제력을 갖고 그 자제력을 나타내려고 할 때 필요합니다. 무엇을 더 사랑하는가가 중요한 핵심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더 사모하고 사랑할 때 그로 인해서 모든 것을 견뎌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과 자제력의 관계는 고린도전서 13장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고전]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것이 바로 사랑의 특징이자 자제력의 핵심이 되는 이유입니다. 사랑이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고 견디기 때문에 삶 속에서 그리스도께 사랑이 있는 자들이 자제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자제력이 필요한 모든 상황에서 그 사랑을 생각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발견하고 그 사랑이 자제력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그런 사랑과 자제력을 풍성한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신실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