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쾌락] 20잠 2; 9-19 계속 지혜를 구하고 악인을 피하는 이유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20잠 2; 9-19 계속 지혜를 구하고 악인을 피하는 이유_1
2021. 3. 28. 주. 주일오전.
*개요: 잠언에서의 믿음의 소원, 43쾌락, 5동행, 3도덕적해석, 3시가서
[잠]2:9 그런즉 네가 공의와 정의와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잠]2:10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을 즐겁게 할 것이요 [잠]2:11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잠]2:12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 내리라 [잠]2:13 이 무리는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하며 [잠]2:14 행악하기를 기뻐하며 악인의 패역을 즐거워하나니 [잠]2:15 그 길은 구부러지고 그 행위는 패역하니라 [잠]2:16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잠]2:17 그는 젊은 시절의 짝을 버리며 그의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 [잠]2:18 그의 집은 사망으로, 그의 길은 스올로 기울어졌나니 [잠]2:19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 길을 얻지 못하느니라
잠언 속에서 지혜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지혜이고 그 지혜 속에서 최선이나 차선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항상 최선 만을 선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차선이라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지 않다면 그 다음에는 차악을 선택할 것이고 더욱 심해지면 최악을 선택하게 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감정이 극대화되기 때문입니다. 환경과 상황이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그런 상황과 환경 속에서 항상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은 감정의 극대화입니다. 그래서 차악이나 최악을 선택하게 됩니다. 그걸 돌이키게 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 지혜 속에서 차선을 발견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최선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의 문제는 그걸 얼마나 오래 반복하느냐입니다. 이전에는 지혜를 추구했지만 지금은 지혜를 다 버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지금부터는 가장 어리석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지혜가 저절로 붙어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어리석어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어리석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성도를 지혜롭게 하는 근원을 생각해야 합니다. 지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오늘 성경말씀에서 그 비결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잠]2:9 그런즉 네가 공의와 정의와 정직 곧 모든 선한 길을 깨달을 것이라 [잠]2:10 곧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을 즐겁게 할 것이요" 지혜를 추구할 때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선한 길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 앞서 나오는 8절은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잠]2:8 대저 그는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의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 그래서 하나님은 누구를 편들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정의의 길을 보호하시고 공의와 정직의 선한 길을 알게 하십니다. 지혜를 통해서 성도는 바로 그러한 올바른 길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지혜가 마음 속에 들어오고 그로 인해서 알게 된 놀라운 지식이 영혼을 즐겁게 합니다. 그래서 탄복을 하게 되고 탄성을 지르게 되고 기쁨에 차게 되면 그것이 바로 영혼의 즐거움입니다. 그 영혼의 즐거움이 희락이고 그런 희락이 있어야 계속 지혜를 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더 이상 지혜를 구하는 일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 지혜가 단순히 영혼의 즐거움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명철과 능력이 됩니다. 11, 12절을 보십시오. "[잠]2:11 근신이 너를 지키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잠]2:12 악한 자의 길과 패역을 말하는 자에게서 건져 내리라" 근신이 자신을 지킵니다. 명철이 자신을 보호합니다. 그래서 악한 자의 길과 패역한 자에게서 건져내게 합니다. 그 말은 내 의지에 반해서 억지로 그렇게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지혜로움을 추구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고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지혜로움을 추구하니까 근신하게 되고 명철하게 되어서 악한 자와 패역한 자에게 속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군들 근신과 명철을 싫어하겠습니까? 누가 악한 자와 패역한 자에게서 속고 싶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무엇이 근신이고 명철이며 악한 자와 패역한 자가 자신의 정체를 나타내며 활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위험성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지혜로 채워지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지혜를 따르는 혜택이 주어집니다. 야곱은 삼촌 라반의 집에서 21년을 봉사하다가 마침내 밤중에 온 가족을 데리고 원래의 집으로 떠났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런 야곱에게 지혜를 주셔서 모든 것을 지혜롭게 대하도록 하셨습니다. 야곱도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해서 그동안의 어려운 모든 삶을 잘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본국인 가나안으로 떠났을 때 하나님은 그를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보호하심 속에서 삼촌의 위협을 피해서 안전하고 평안하게 잘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따르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기에 어떠해서만이 아닙니다. 어떨 때에는 더욱 손해보는 것 같고 더욱 억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모든 것에 더욱 풍성한 면이 있습니다. 그 풍성한 면을 온전히 누릴 때에 우리는 최선의 선택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혹은 차선의 선택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 선한 모든 것은 전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렇게 좋은 것을 오래도록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는 왜 그런 지혜를 오래도록 지속하지 못할까요? 그 이유는 육체의 즐거움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13-15절을 보십시오. "[잠]2:13 이 무리는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하며 [잠]2:14 행악하기를 기뻐하며 악인의 패역을 즐거워하나니 [잠]2:15 그 길은 구부러지고 그 행위는 패역하니라" 행악을 기뻐하고 악인의 패역을 즐거워할 때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행하고 그 길은 구부러지고 그 행위가 패역한 것입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애초에 그 행악과 패역을 즐거워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즐거워하는 것이 행악과 패역인지 아니면 지혜와 명철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건 그가 어떤 길을 가는가를 보면 됩니다. 정직한 길을 떠나 어두운 길로 가는지 그 길이 구부러졌는지 그 행위가 패역한지를 보면 그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을 기뻐하는가에 따라서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와 정직을 기뻐하시는 것은 그러한 행위와 방식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그로 인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패역함과 행악함을 즐거워 할 때에는 하나님의 방식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기만 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렇게 올바른 길을 벗어나 악한 길로 나아가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죄와 어리석음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인해서 그 모든 심판과 처벌이 다 용서되었습니다. 우리가 은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어리석음와 죄악을 다 용서해 주시고 그 죄값을 갚아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귀한 용서의 은혜를 깨달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죄악된 삶을 살아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죄악된 자의 삶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어리석은 자의 모습이 다음 구절에 나옵니다. "[잠]2:16 지혜가 또 너를 음녀에게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하리니 [잠]2:17 그는 젊은 시절의 짝을 버리며 그의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린 자라" 지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음녀에게서, 이방 계집에게서 구원할 것입니다. 그들의 삶이 죄악된 삶이었기 때문에 그런 삶에서 벗어나고 새롭게 되는 것이 너무나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나오는 17절에 나오는 '그는'이라는 말은 바로 그 음녀와 이방 계집을 의미합니다. 정확히는 '그녀는'으로 번역해야 하는데 '그'라는 공통명사로 지칭해서 의미의 혼란이 생긴 것입니다. 그들이 음녀요 다루기 힘든 아내, 혹은 여성으로서의 이방 계집(wayward wife)이 된 것은 젊은 시절의 짝을 버렸고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언약도 없고 원칙도 없고 신실함도 없고 목표도 없어서 의로 나아가지 않고 악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지혜는 바로 그런 자들에게서 벗어나게 합니다. 그런 자들과 함께 하지 않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악인의 길의 결말을 보십시오. "[잠]2:18 그의 집은 사망으로, 그의 길은 스올로 기울어졌나니 [잠]2:19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 길을 얻지 못하느니라 " 그에게로 가서 돌아오지 못하고 생명 길을 얻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뻐하며 지혜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탄과 함께 할 때 반드시 죄를 짓게 되어 있습니다. 악인과 함께 라면 반드시 악에 동참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혜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빠져나오게 합니다. 그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즐거워하는 자들이고 그럴 때 영혼의 즐거움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용서의 길은 우리에게 바로 그런 영혼의 즐거움을 얻게 하시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따르는 자들은 바로 그러한 영혼의 즐거움을 사모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충만함을 누리며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의의 기쁨을 날마다 사모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고난주간도 함께 들어있는 이번 주에 이러한 지혜의 즐거움을 사모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계속해서 지혜를 구하고 악인을 피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혼의 즐거움을 날마다 충만한 자들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여러분의 삶 속에 항상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지혜를 따르는 이유는 그것이 영혼을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2. 선을 따르기 때문에 근신과 명철이 있고 그것을 반복하게 된다. 3. 패역을 따르는 이유는 그것이 육체를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4. 악인은 쾌락을 좋아하며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는 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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