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경건] 42눅 2; 36-40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사람들Loading the player... .
42눅 2; 36-40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사람들_1
2024. 12. 1. 주. 주일오전예배.
*개요: #74경건, [눅]2: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눅]2: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눅]2: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눅]2:39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눅]2: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2024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에 이르렀습니다. 올 한 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도우셨던 시간이 정리되고 다가오는 2025년이라는 새로운 한 해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12월이 그리스도의 나심이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그와 함께 한 해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을 준비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나심에도 이러한 의미가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그리고 새 해를 준비하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동안의 모든 수고를 잊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새로운 일들이 과거를 잊어버리고 미래만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과거에 근거해서 미래를 생각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한 해를 돌아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지나온 과거 또한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이루셨던 일이 지난 시간에 있습니다. 그것을 기억하면서 다가올 일을 사모할 때 우리는 성탄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로 그리스도의 나심을 생각할 때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왔던 한 선지자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나심이 증거된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는 대로의 화려하고 풍성하며 이야깃거리가 많은 성탄의 분위기와는 다릅니다. 여기에서의 성탄은 일상적이고 평이하며 조용한 삶 속에서의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탄은 특별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바로 그러한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눅]2: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눅]2: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안나와 시므온은 예수님께서 태어난 다음에 정결예식을 받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가셨을 때에 만났던 사람들입니다. 본문 순서 상으로 시므온이 먼저 나오는데 시므온 아기 예수님을 안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리고 안나는 아기 예수님에 대해서 감사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의 탄생의 시기와 비교해 보면 탄생의 시기에는 목자도 나오고 천사도 나오고 동방박사들도 나왔지만 태어나신 다음에 팔일 후에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는 시므온과 안나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조용하고 많이 언급되지 않는 사건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시므온이나 안나의 존재와 역할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새롭게 증명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안나는 선지자라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고 있었고 그 당시의 경건생활을 통해서 주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함께 하는 자였습니다. 그녀는 결혼 한 후 7년 동안 남편과 살다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그 이후로 84세가 될 때까지 혼자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던 그녀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주님을 섬겼는데 그 삶 속에서 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그 함께 하심이 예수님께서 나신 후에 정결예식을 드리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왔을 때에 성령께서는 안나를 예수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이것은 앞서 시므온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므온도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 아기 예수님을 만났는데 안나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렇게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예수님을 만나기에 합당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84세에 비로소 예수님을 증거하는 선지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였던 것입니다. 그녀가 선지자로서의 사역을 한 것은 이전에 어떤 사역을 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로서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의미 있는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사람들입니다. 애초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모하며 따라가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납니다.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모습이나 삶이 없었다면 예수님을 만나도 그 귀함을 알아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났던 다른 많은 사람들은 아기 예수님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지만 이 안나 여선지자는 달랐습니다. 38절 입니다. “[눅]2: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안나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오셨던 그 때 마침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한 일이 중요한데 바로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 당시 예루살렘은 로마 제국의 지배 하에 있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지배 하에서의 구원을 간절히 바랬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랬던 것입니다. 여기서의 속량은 영어로 보면 redemption 이고 이는 다른 말로 ‘구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란다는 것은 예루살렘의 구원을 바란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른 예루살렘의 구원을 바랬는데 그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 바로 구세주이신 예수님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안나는 열심을 다해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전파했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원래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던 삶 자체가 주님을 따르는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삶의 연장선에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증거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고 쉬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사람을 통해서 예수님의 구원하심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세주가 되신다는 사실은 안나 선지자를 통해서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구원자이라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이러한 기쁜 소식은 지금도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우리가 안나 선지자처럼 우리 삶의 구원자가 예수님이심을 깨닫고 증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증거를 통해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자들에게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올해의 성탄에 예수님의 이름을 기념하고 구세주이심을 기뻐하는 자들은 한해 동안 성실하게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에 의해서입니다. 늘 교회에 모여서 예배 드리는 자들에 의해서 예수님은 찬양을 받으시고 높임을 받으시며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예수님은 진정한 구원자가 되십니다. 안나 선지자에게도 그랬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자들에게도 예수님이 구원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찬양하는 것에는 바로 이러한 원리가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올 한해 함께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한해 동안 해 왔던 신앙생활과 인생의 삶이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구원자 되심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활용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셔서 지금까지의 삶을 의미 있게 하셨고 그래서 우리는 구원받은 자들이 됩니다. 또한 앞으로 우리의 삶에 예수님께서 구원자가 되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확신할 때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그런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삶은 은혜의 삶입니다. 단지 구원을 바라기만 하고 구원자를 찾기만 하는 삶과는 전혀 다릅니다. 정결예식을 끝낸 아기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실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39절을 보십시오. “[눅]2:39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눅]2: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예수님은 구원자로서 율법에 따른 모든 일을 잘 마쳤습니다. 그래서 갈릴리와 나사렛에서 살아가면서 자라고 강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이루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가려고 하니 하나님의 은혜는 그의 위에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삶이었고 우리가 따라가는 삶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원자로 모시며 살아갈 때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게 됩니다.
한 해의 마지막인12월에 그리스도의 나심이 함께 공존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나심이 과거 구약시대때부터 이루어진 옛 언약의 마침이라는 의미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새로운 언약이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제 평생 하나님을 섬기며 예루살렘의 속량하심을 바라보았던 안나 선지자를 통해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이 증거된 것처럼 우리 모두가 구원을 사모하고 증거하는 자가 되어서 더욱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오심을 통해 온전한 구원을 다시 한번 경험하는 성도들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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