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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계 20; 11-15 처음과 끝의 일치를 이룸_1
2025. 1. 12. 주. 주일오전예배.
*개요: 71충성
[계]20: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계]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계]20: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계]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계]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2025년은 을사년이고 ‘푸른 뱀’의 해입니다. 을사는 ‘새로운 시작’, ‘지혜로운 변혁’, ‘성장과 발전’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의미를 갖는 새해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당장의 상황만 볼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만물에는 시작과 끝이 있고 역사와 시간 속에도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작과 끝을 모두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시작에 대해서 무엇을 말씀해 주셨고 끝에 대해서 무엇을 말씀하셨는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이 시작과 끝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시작이 있기 때문에 끝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둘을 하나님 안에서 이해할 때 우리가 현재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세상의 마지막 때에 있을 일에 대해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마지막은 종말이라고 말하는데 이 종말에는 개인적 종말이 있고 우주적 종말이 있습니다. 개인적 종말은 각 개인이 죽어서 맞이하는 종말이고 우주적 종말은 세상이 끝나서 맞이하는 종말입니다. 우리가 지난 주에 살펴본 눈물을 닦아 주시는 하나님도 종말에 만나게 되는 은혜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지금 살펴보는 장면도 역시 종말에 만나게 될 모습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계]20: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계]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사도 요한은 크고 흰 보좌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분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앞에서 땅과 하늘은 다 피하여 사라졌습니다. 그 영광스러우심 앞에서 땅과 하늘이 사라진 것입니다. 오직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전부 보좌 앞에 서 있는데 거기에는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인 생명책도 펴져 있었습니다. 모든 죽은 자들은 자기 행위를 따라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심판을 받는 시간이 바로 종말의 시간인 것입니다.
처음과 끝은 서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종말의 시간이 있다는 것은 창조의 시간도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이 존재하게 되는 시간이 있었고 그걸 창조라고 본다면 하나님이 만드셨던 땅과 하늘은 사라지게 되는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다소 상상하기는 어렵겠지만 하나님께서 행하시기로 작정하신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를 생각한다면 종말도 생각해야 합니다. 창조와 종말은 하나로 연결된 두 짝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의 문제는 ‘어떤 종말을 맞이하느냐’였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종말은 단순히 있던 것이 사라지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종말의 의미는 바로 여기서 나타납니다. 그것은 ‘심판’이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심판’을 통해서 어떤 종말을 맞이하게 될지가 결정됩니다. 있는 것이 사라진다는 것은 존재에 대한 종말이지만 했던 일들에 대해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행위에 대한 종말의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보좌 앞에는 이러한 심판을 위한 책들이 있었습니다. 여러 책들은 행위에 대한 책이었고 생명책은 구원에 대한 책이었습니다.
심판의 과정은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이 부분을 영어성경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The dead were judged according to what they had done as recorded in the books.’ 죽은 자들이 자신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는 것인데 그 행위는 책에 기록되어 있어서 그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마치 죽은 자의 삶이 낱낱이 기록된 자료가 있어 그 자료에 의해서 그의 행위가 심판을 받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것은 운동선수가 운동을 하면 그의 활동이 세세하게 기록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이 살아 있을 때 했던 일들이 세세하게 기록된다는 것은 그가 살아 있을 때 했던 일들이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시작과 끝이 서로 연결된다는 것이고 그것이 결국엔 일치를 이룬다는 것이 바로 심판의 의미인 것입니다. 이러한 심판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의 의미가 얼마나 의미심장한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반드시 심판으로 연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심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었는데 하나는 상급이었고 다른 하나는 형벌이었습니다. 상급을 받는 심판이 있고 형벌을 받는 심판이 있는데 그걸 결정짓는 것은 행위에 대한 책이 아닌 생명에 대한 책이었습니다.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으면 상급을 받는 심판으로 넘어가고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 있지 않으면 형벌을 받는 심판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 생명책은 그리스도의 죄사하심을 믿는 자들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일을 이루셨는가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정식 명칭은 ‘어린 양의 생명책’입니다.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자들을 위해서 대속을 이루셨고 그것을 약속해 주셨기 때문에 그 약속을 믿는 자들이 예수님의 대속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얻은 사람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생명책은 하나의 약속이었습니다. 행위책에 나오는 그 모든 악한 일이 사망을 이룬 책에 대해 반대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의 약속인 생명을 이루는 책입니다.
인간은 죄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많은 죄에 대해서 생명책은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함을 얻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구원받은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죄를 생각하지 않으시고 그의 의를 생각하십니다. 행위로만 하면 모든 사람이 잘못 한 일도 있고 잘한 일도 있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에 대해서는 잘한 일만을 중요하게 여기셔서 그에 대해서 상을 주시는 것입니다.
반대로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잘한 일이 있고 잘못 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잘한 일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잘못 한 일만 기억이 되어서 결국은 심판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의 원리가 성경에 나와 있고 현재의 우리에게 증거되었습니다. 우리는 그 증거에 따라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마치 표지판처럼 우리에게 보여지고 있으니 어떤 쪽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사망으로 가는 길을 경고하는 표지판이 있습니다. 그걸 무시하면 사망으로 떨어집니다. 생명으로 가는 길이 어디인지를 보여주는 표지판을 따라가면 생명으로 나아갑니다. 성경을 우리에게 바로 그런 우주적인 종말과 그 결과를 깨닫게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은 한계가 없습니다. 서양에 살거나 혹은 동양에 산다고 해서 예외가 되지 않습니다. 산에 살거나 바닷가에 산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계]20: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계]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계]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죽은 자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으면 심판이 시작됩니다. 바다에서 죽은 자들이 모이고 사망과 음부에서 죽은 자들이 모두 모입니다. 그들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그것이 하나의 끝이라면 그들의 시작도 다시 역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사람들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살면서 바다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사망과 음부에까지 나갔습니다. 그러나 죽었을 때에 그 모든 흩어졌던 사람들은 다시 주님 앞으로 모이는 것입니다.
만약 살아있을 때 그들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 다시 모이게 될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했다면 하나님의 뜻을 따랐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생명책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았고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했으며 결국은 하나님 앞으로 다시 소집되어서 불못에 던져지는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처음과 끝의 일치를 기억해야 합니다. 종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그 종말에서 심판이 아닌 상급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로부터 세상에 보내어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생명과 구원을 기억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갈 생각을 한다면 그는 구원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그가 생명책에 기록된 자가 되고 하나님을 위해서 한 모든 일이 기억되는 사람이 됩니다.
구원받는 사람에게는 모든 신앙생활이 다 상급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무익해 보이는 모든 일이 믿는 자들에게는 다 귀한 일이 됩니다. 심지어는 예배에 나아와 앉아 있는 것도 상급이고 자신의 물질을 드려 헌신하는 것도 상급입니다. 하나님을 묵상하며 그 뜻을 생각하는 것도 상급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상급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모든 일이 전부 기록되기 때문입니다.
2025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해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충성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 보시길 바랍니다. 그럴 때 눈물을 흘리는 것이나 숨 쉬는 것도 전부 기억해 주시는 귀한 성도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풍성한 구원을 바라보며 사는 거룩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