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인내] 66계 21; 4-8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는 하나님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66계 21; 4-8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는 하나님_1
2025. 1. 5. 주. 주일오전예배.
*개요: #64인내, 새해의 결심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계]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새로운 2025년이 시작되었습니다. 각 교회마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거나 혹은 신년예배를 드리면서 새해를 시작했습니다. 각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해가 바뀌는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 더 있으면 새로운 한 해가 아니라 그냥 익숙한 한 해가 될 것입니다. 2025년에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를 기다리는 많은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대비하고자 할 때 그 시간을 소홀히 보내지 않고 중요하고 가치 있게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새해의 소망을 생각해 보면 반대로 지금까지의 문제와 결핍을 의식하게 됩니다. 평화를 소망한다면 갈등이 있었다는 뜻이고 부요함을 원한다면 가난함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수많은 부족함과 결핍이 있고 그것이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소망을 갖게 됩니다. 그런 생각 속에서 우리는 모든 결핍이 사라지는 완전한 때를 바라보게 되는데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결핍과 부족과 한계 속에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나라를 의미합니다. 사람이 다스릴 때 이런 저런 문제가 생기지만 하나님께서 다스리실 때에는 얼마나 완전한 모습이 이루어지겠습니까? 그 완전함을 사모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덧입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더 가깝게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삶에 있는 많은 문제와 한계와 사건과 사고와 안타까운 일들과 고통스러운 일들은 얼마나 우리를 힘들게 만들고 있습니까? 이것은 비단 우리만 겪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각 지역에서 문제와 어려움으로 인해서 괴로움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믿는 자들은 괴로움에 사로잡혀서 계속 괴로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그 괴로움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로 나아가려고 할 때 비로소 마음은 하나님의 나라에 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가 말씀 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 약속이 오늘 말씀 속에 나옵니다.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명을 보여줍니다. 그 앞서 나오는 내용이 있는데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면입니다. 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장막이었습니다. 그 장막 안에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때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것들이 다 끝이 났기 때문입니다. 단지 끝이 나기만 한다면 그건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종말론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예상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종말의 모습은 끝이 나기는 하지만 의미는 없습니다. 의미를 만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종말은 다릅니다. 하나님이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그것은 단지 위로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으로 인해 흘리는 눈물을 이해하시고 그 속에 있는 바램을 들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망이 없고 애통이 없고 곡함이 없고 아픔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주십니다. 그런 변화를 약속해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장막 안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선언하시기를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고 하셨고 하나님은 그 말씀을 반드시 지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그 날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때 우리 마음은 이전의 눈물과 사망과 애통과 곡함과 아픔이 있던 세상에 머물러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비록 여전히 몸은 그런 아직 새로워지지 않은 만물 속에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벌써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놀이기구를 탈 때 오랜 시간 기다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건을 살 때 역시 오랜 시간 기다릴 때가 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 경험하는 시간은 짧지만 그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마음은 이미 놀이기구를 타고 있기 때문이고 이미 그 물건을 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몸은 이 한계가 많은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하나님 나라에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 구절을 보십시오. “[계]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주님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주님은 알파와 오메가 되셔서 앞으로 어떻게 일이 이루어질지를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 중요한 것은 주님을 찾는 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목말라 하는 자에게 생명수 샘물을 주십니다. 이기는 자에게 생명수 샘물을 상속으로 주십니다. 주님이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아직 일이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을 때 결정됩니다. 그 절박한 순간에 그의 선택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경기에서 승부가 어떻게 날지를 예상하고 내기를 하는 도박이 있습니다. 경기시작 전까지 승부예측을 결정하고 경기가 끝나면 그에 따른 결과를 받는 것입니다. 결과가 나기 전까지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지만 자신의 결정은 이미 시작하기 전에 결정되어 있습니다. 시작하고 나면 더 이상 변경할 수 없고 모든 것이 끝났을 때 그 결과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서 우리는 의에 목마른 자가 될 수 있고 믿음으로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승리는 이미 결정적이기 때문에 우리 자신만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한다면 하나님의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런 면에서 예수님을 온전히 따른 자들입니다. 그들이 경험했던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를 제외하고 그를 대신해서 새로 제자가 된 맛디아까지 모든 제자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서 주님의 길을 갔습니다. 우리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바라는 것은 생명수 샘물입니다. 그 샘물을 마시면서 주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서 기대하는 것입니다. 내 이상과 환상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부르심을 완성하려는 마음입니다. 그럴 때 온전하신 하나님의 뜻에 일치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배반했던 가룟 유다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뜻과 의지가 분명한 사람이어서 도저히 하나님의 계획과 부르심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그 악한 자신의 뜻에 따라서 자신의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길이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역사 속에서 자신의 뜻을 주장하다가 사탄에게 내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딤전 1:20)가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이단에 속한 교사로서 경건치 않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던 자들이었습니다. 자신의 뜻의 악함을 깨닫고 포기했었더라면 사탄에게 내주지 않았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돌이키지 않을 때 결국은 사탄에게 내주고 그들은 사탄의 길을 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습니다. 설사 눈물을 흘렸더라도 눈물을 닦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스로 눈물을 닦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길을 가려고 할 때 하나님의 복주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축복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생각이나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할 때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할 때 그가 진정으로 목마른 자요 이기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신의 뜻을 따를 때 그는 악인이 되고 맙니다. 8절을 보십시오. “[계]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악인들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자들이었고 믿지 않는 자들이었으며 그외 더 악한 모습으로 흉악하고 살인하고 음행하고 점술하며 우상숭배와 거짓말을 일삼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둘째 사망이 되었습니다. 그 비참함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상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을 기대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 가운데 있게 되고 그 안에서 우리의 마음이 보호됩니다. 몸이 세상의 영향 속에 있지만 마음이 하나님 안에 있다면 우리가 죄지을 일이 없습니다. 오직 목마른 자요 의로운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눈물을 닦아 주실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나님 나라 가운데 거하고자 할 때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새로운 한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님을 따르면 하나님의 나라 가운데 거해야 하겠습니다. 언젠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지금 주님의 새로움 속에서 거하고 그 속에서 잘 견디며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의 삶 속에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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