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경건] 54딤전 2; 1-4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이유
54딤전 2; 1-4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이유_1
2024. 6. 2. 주. 주일오전예배.
*개요: #74경건, 보훈의 달, [딤전]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딤전]2: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딤전]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번 달은 6월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6월 1일은 의병의 날이 있고 6월 6일에는 현충일이 있습니다. 6월 25일은 6.25전쟁 발발일이고, 6월 29일은 제2연평해전이 있었던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국가의 의미를 되새기고 나라의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서 애쓴 분들을 기리는 시간을 갖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나라 사랑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을지를 생각해 봅니다. 나라 사랑 속에는 신앙적 의미도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환경과 형편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라에 대해서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적용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그 다음에 적용하게 되는 것은 세상적인 생각입니다. 세상적인 생각은 다양한 영향력에 이끌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엔 세속화된 생각에 얽매이게 됩니다. 그걸 이겨내고 더욱 경건함으로 나라를 생각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세속의 세파에 흔들리지 않고 의연하게 올라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나라에 대한 본질적인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딤전]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디모데전서는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내는 편지였는데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뜻이 있기 때문에 우리 삶에 적용되는 성경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해야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에 대해서 하나님께 의지하며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간구는 현재 형편에서 사람의 구체적인 요청사항을 말씀드리는 것이고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도고는 인간의 죄에 대한 회개와 용서를 도와달라고 하는 기도이며 감사는 하나님께 대해서 감사한 것들에 대해서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서 이러한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할 수 있다고 할 때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악인이나 선인이나 모든 사람에 대해서 이러한 기도를 드릴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은 그 사람들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를 바라신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반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면 그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다른 것을 하게 될 것이고 그것이 이 무엇이든지 그 모든 것은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는 일들이 됩니다. 그러면 그로 인해서 우리 자신은 그들에 대해서 전혀 신앙적이지 않은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더욱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만 합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다면 다음 구절이 의미가 없지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그렇게 기도를 하려고 할 때 특별히 생각해야 하는 대상이 있습니다. “[딤전]2: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그 대상은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서 꼭 기도하라는 말이 아니라 기도의 대상으로 모든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어떤 사람이든지 나라와 국가의 위정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에서 살아갈 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나라와 국가에 대한 신앙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나라에서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한 혜택은 단지 그리스도인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이 나라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모든 경건과 단정함 가운데 고요하고 평안하게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고자 하시는 이러한 뜻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은 제쳐 놓고 무조건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만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하고 단정한 삶을 살지도 않고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천국에 가려고 한다면 그건 그냥 자살충동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살면 하나님의 뜻과는 더욱 멀어지게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나와 다른 사람들의 경건과 단정함을 위해서 임금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 어떤 사람들이든지 기도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해당됩니다. 모두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말이 아니라 모두가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들이 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뜻은 조금 더 나아갑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딤전]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딤전]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어떻게 나타나는가가 하나님 앞에서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들과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기도를 선하게 생각하고 받으시며 기뻐하시는 이유는 바로 그럴 때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는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을 엉망으로 생각하고 빨리 도피하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쿼바디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동명 소설을 영화한 것인데 내용은 로마시대 네로황제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대학살 시기에 로마를 떠나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서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네가 내 양들을 버린다면, 내가 다시 십자가에 달리러 로마에 갈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정신이 든 베드로는 다시 로마로 돌아가서 성도들에게 믿음으로 이겨낼 것을 당부하면서 “오늘 낙원에서 영원하신 예수와 함께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거꾸로 십자가에 매달려서 순교합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피해 평안을 얻고자 사셨던 분이 아닙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도 역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행하면서 사는 자들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는 삶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그렇게 사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받으실 만한 일이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도 외에 다른 분야의 일에 열심을 낸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된다면 어떤 면에서는 다른 목적으로 남용되거나 선동될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모두에게 경건하고 단정하며 화평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섬기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그렇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걸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기는 하지만 그 기도가 세속적이고 혼란을 야기하며 불안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것이 되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의분에 사로잡혀서 하는 것이거나 혹은 아예 외면하는 것이라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이 어디에서든지 나라와 국가와 정부 아래 거하게 하면서 그 속에서 빛과 소금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두워지지 않고 맛을 잃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나타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애굽을 기근에서 구했고 다니엘이 느부갓네살왕의 꿈을 해석했으며 다윗이 나라를 다스렸고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지금도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자들이 나라를 위해서 일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 세상에 나타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삶을 살아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경건하고 단정한 삶을 살며 나라를 위하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