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경건] 66계 21; 1-4 사람들과 함께 있는 하나님의 나라Loading the player... .
66계 21; 1-4 사람들과 함께 있는 하나님의 나라_1
2024. 6. 30. 주. 주일오전예배.
*개요: #74경건, 국가와 하나님 나라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계]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계]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삶 가운데 있다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것 만이 전부인 줄로 오해합니다. 삶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고 하니 삶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이고 삶이 끝나면 하나님의 나라도 끝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커다란 오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삶 가운데 있었다면 우리의 삶이 끝날 때 우리 영혼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의 육체가 끝났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도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각 성도가 섬겼던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이 끝났을 때 그 성도가 들어가는 나라가 됩니다. 할 일을 다 잘 마쳤으니 하나님 앞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개념을 잘 설명해 줍니다. 아무도 사람이 죽은 다음에 어떻게 될지 경험해 보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죽음 이후를 경험하고 돌아온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만이 그 이후가 어떻게 될지를 알려줍니다. 그 말씀을 믿고 그에 따라 살아갈 때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이 의미 있고 죽은 다음의 삶이 가치 있게 됩니다. 실제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천국이 있음을 믿을 때에 그 이후의 삶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측하는 것은 단순히 감각적인 방식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도의 정신적인 활동에 의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머리가 똑똑해야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해서 진실함을 가지고 있을 때 이러한 신앙적인 지혜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삶 속에서 나타나게 될 하나님의 나라 말고 죽음 이후에 이루어지게 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죽음 이후에 이루어지게 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설명은 앞으로 믿는 성도들이 가게 될 나라가 어떤 곳인가를 잘 보여줍니다. 1, 2절입니다. “[계]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계]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천국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 천국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보고 보좌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을 때 그곳은 하나님 나라의 가장 핵심이자 중심이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계신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의 영광과 권세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이었습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이전 세상의 모습이었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그 하늘은 특별하고 그 땅은 새로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밖에 설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그 새로운 나라에 내려왔습니다. 그럴 때 그것은 마치 신부가 신랑을 위해서 단장한 것과 같았습니다. 그 말은 지금까지의 모든 구원받은 자들이 내려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건축물의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들의 존재가 계속 이어진다는 의미였습니다. 그것이 단장한 것과 같은 것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한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는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어지는 것, 지속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삶도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지 않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눈에 보이는 것이 사라질 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음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 영원한 지속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도 부활을 부인하는 사두개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내세를 부인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지극히 세속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현세에서의 모든 좋은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었고 사회지배계층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이 내세를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에 현세에서 세속적인 자들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현세에서의 유익만을 바라고 믿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내세를 부정하는 사람들과 다르게 간절히 내세를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내세에서 보게 될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기 때문에 현세에서도 하나님이 나라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세에서의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유토피아나 환상적인 장소의 개념이 아닙니다. 그런 의미였다면 이 세상에서도 그런 나라를 동일하게 추구 했어야 했을 것입니다. 각자의 욕구가 실현되는 이상향이 천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뜻을 사모하는 것이 현세와 내세에서의 동일한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십시오. “[계]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좌에서 음성이 들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음성의 내용은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본체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이루려고 노력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그 본체의 그림자일 뿐이었습니다. 그 그림자가 나타나게 하려고 애를 쓰다 보면 마침내 그 그림자의 본체인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서 이루고자 노력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그림자를 따라가려고 해야 본체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림자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으면 본체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악한 사람들이 바라보는 하나님의 나라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 어리석은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단들이 열심히 추구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그들에게 결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자신들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사모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본체가 나타나기를 바랄 때 그 모습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가 넘치는 곳이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이 없고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게 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처음 것들을 다 지나가게 하시고 새로운 것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본체는 하나님 자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하나님을 사모했고 내세에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를 바랄 때 바로 그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하나님을 만나 뵙기를 간절히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장막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찾아 오셨던 것입니다. 천국이 세상의 모든 눈물을 닦아주는 곳은 아닙니다. 그 눈물이 어떤 눈물인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과 의를 위해서 흘린 눈물이 아니라면 인간이 자기 자신을 위해 흘린 눈물은 천국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 눈물은 죄의 눈물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망이나 애통이나 곡함이나 아픔이 없게 하시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것이었을 때 하나님이 찾아와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찾아와 주시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선수가 그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을 찾아와 줄 때 사람들은 기뻐합니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거나 만나보고 싶어하지 않는데 찾아온다면 별로 기분이 좋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분일 때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와 주시고 그것은 구원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악인들에게는 심판으로 찾아오시겠지만 하나님을 사모하는 우리에게는 구원으로 찾아오십니다.
이러한 내세에서의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면서 지금부터 현세에서의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해 보십시오. 그럴 때 우리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우리의 눈물과 땀과 사망과 애통과 곡함과 아픔이 있을 때 그 모든 것을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지금도 경험하고 앞으로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현세와 내세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며 애쓰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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