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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행20; 17-24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의 가치_1
2025. 4. 6. 주. 주일오전. 소원교회 정리예배.
*개요: 71충성
[행]20: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행]20: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행]20: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행]20: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행]20: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행]20: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20: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행]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교회생활도 전적인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으로 지금까지 이어 왔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현재까지의 모든 과정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지난 26년간의 시간이 은혜로운 시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시간을 준비할 때 그 초심을 잊어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속에서 사도 바울의 고백을 보면서 우리에게도 이러한 고백과 초심이 넘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도 바울의 여정은 크게 4가지로 구분됩니다. 1차 전도여행과 2차 전도여행, 그리고 3차 전도여행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 4차 로마 이송 여행이었습니다. 1차 전도여행은 처음으로 소아시아 지역인 터키 동남부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고 2차 전도여행은 이전에 세웠던 교회를 돌아본 다음에 마게도냐 지역까지 들어가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3차 전도여행은 소아시아와 마게도냐 전지역을 다시 돌아보고 돌아오는 여정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진행된 것이 로마로 가는 이송여행이었습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그 3차 전도여행을 끝내는 시점에서 바울이 밀레도에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초대해 놓고 말씀을 증거할 때에 나타난 내용이었습니다. 17, 18절을 보십시오.
“[행]20:17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행]20:18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1차 전도여행이 바울의 처음 전도여행의 시작이었는데 그때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에 구브로섬의 살라미에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때 사도 바울이 했던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 회당에서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바울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계속 확장되어서 나아갔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바울이 말하는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복음을 열심히 전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열심히 전한 것을 에베소의 장로들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서 그것을 좀더 설명했습니다.
“[행]20:19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행]20:20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행]20: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바울은 겸손과 눈물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겼습니다. 또한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전하여 가르쳤습니다. 그 가르침의 본질은 하나님이 회개하게 하신다는 것이었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회개와 믿음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바로 구원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 자신도 하나님께 대한 핍박과 공격을 통해서 죄를 지은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용서 속에서 눈이 떠지고 생각이 새로워져서 온전한 변화의 삶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유대인과 헬라인을 감당하는 것이 놀라운 일이었는데 왜냐하면 그럴 때 간계와 무지를 가진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자체가 바울 자신의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이러한 은혜로운 변화를 경험했던 바울이었기 때문에 과거로의 회귀로 되돌아가거나 미래로의 발전을 주저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악한 모습을 자각하고 현재의 새로운 모습을 기뻐하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이전 삶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살았기 때문에 날마다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변화의 삶을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에게는 초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처음에 가졌던 마음을 이후에도 계속해서 가졌습니다.
우리 교회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처음 교회를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매번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뒤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다음에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의지하고 사모했습니다. 지금까지 5번의 이사를 하였고 또 항상 하나님께서 다음에 이루실 일을 기대했습니다. 왜냐하면 무엇을 하든지 주님을 섬기기를 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변화와 모든 발전과 모든 과정들이 전부 주님을 섬기는 일들이었고 그럴 때 힘든 일이나 괴로운 일이나 어려운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섬긴다는 마음으로 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럴 때 경험한 것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능력을 주셨고 힘을 주셨고 지혜를 주셨고 많은 경험을 주셨습니다. 그 모든 것이 밑거름이 되고 양분이 되어서 가지를 뻗을 수 있었고 꽃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모든 시간 시간이 헛되지 않고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이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정말로 그렇게 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다음으로 진행될 일을 앞두고 하나님을 바라보려고 할 때 초심을 잃어버리지 않고 앞으로 다가올 일의 어렵고 쉬움을 따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것 만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러한 마음을 고백했습니다.
“[행]20: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20: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행]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는 평안한 삶을 기대한 것이 아니었고 그렇게 살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3차 전도여행을 끝내고 다음에 기다리는 것은 로마이송여행이었고 그것을 성령께서는 미리 알려주시고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피하려고 하거나 거부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삶 속에서 항상 하나님을 섬기려고 했고 그렇게 섬기려는 마음으로 견디고 극복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환난과 결박이 기다린다 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기를 원했고 그러한 섬김 속에서 견디고 극복하기를 준비했습니다. 그것이 바울의 초심이었습니다. 그 초심 속에서 그는 더욱 의연하고 든든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말한대로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자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할 때 생명의 가치보다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이 더 귀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초심이 그러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러한 귀한 삶을 살아왔던 것이고 그 초심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귀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초심을 지킨다는 것은 그냥 처음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처음의 상태보다 더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초심을 유지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바로 발전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바울이 4차 로마이송여행을 갈 수 있었던 것은 1,2,3차 전도여행을 통해 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시민권이 있던 그는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을지 말지를 결정해야 했고 그 발전의 기회를 그는 최대한 살려서 가이사 앞에 가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마침내 놀라운 로마 복음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여정이 계속 발전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5번의 이사와 교회생활은 앞으로의 이사와 교회생활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발전할 때 놀라운 열매들이 나타납니다. 그 기회와 가능성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럴 때 지금까지의 삶이 얼마나 가치 있었는가를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장 귀하고 보람되며 거룩한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런 마음으로 앞으로도 계속 은혜의 복음을 따르는 삶을 살고자 할 때 우리는 은혜의 복음의 가치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나짐 히크메트라는 시인이 쓴 시를 인용해서 나타내고 싶습니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의 가치를 계속 유지하고 보존하며 발전시켜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그 귀한 가치에 우리가 연합되며 그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우리의 모습도 함께 나타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새로운 인도하심에 따라 온전히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