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용서] 43요 20; 19-23 다시 살아나셔서 죄사함을 주신 예수님



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4320; 19-23 다시 살아나셔서 죄사함을 주신 예수님_1

  

 

  

2021. 4. 4. . 주일오전

  

 

  

*개요: 부활감사예배, 1적용적해석, 54용서, 5복음서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부활감사예배를 드리면서 올해 우리에게 있었던 여러 가지 상황들을 생각해 볼 때 부활의 은혜는 더욱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렵고 힘든 이 시기를 보내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부활의 기쁨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신다는 뜻입니다. 재림으로 찾아오신다면 무엇보다도 더 기쁘겠지만 아직 이 세대에 주님의 계획과 뜻이 있고 우리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부르심과 소명이 있다면 재림이 아닌 부활이 우리에게 격려하시고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 가운데 오셨습니다. 안식 후 첫날은 오늘날의 주일이고 그 주일 저녁 때 제자들 가운데 오셨던 것입니다.

  

"[]20: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제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흥분상태에 있던 유대인들이 어떻게 그 다음 행동을 취할지 알지 못해서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선동을 받아서 바라바 대신 예수님을 못박으라고 했고 그로 인해서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장사를 지내고 안식일이 지난 뒤 그 다음 날에 제자들은 다시 모였고 그 때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면서 문을 꼭꼭 닫아 걸어 놓고서 모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가운데 서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기하게도 예수님은 문을 열고 들어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실재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정말 못박힌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 였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이전과는 달랐습니다. 더 이상 인간의 몸이 아니었고 육체에 제한되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과연 예수님은 살아계신 것입니까, 죽으신 것입니까? 환상을 보고 있는 것입니까? 실존하시는 분이십니까?

  

저는 예전에 아버지 꿈을 꾼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셨는데 너무 생생해서 어떻게 아버지가 다시 살아나셨나고 반문을 했습니다. 분명히 장례까지 다 치뤘는데 어떻게 이렇게 다시 나타나실 수가 있는가 하고 의아해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꿈이었습니다. 꿈속에서는 그게 꿈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지만 꿈을 꾸고 나서 비로소 그게 꿈이라는 사실을 이해했습니다.

  

제가 보았던 것은 꿈이었지만 제자들이 보았던 것은 실제였습니다. 예수님은 정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더 이상 제자들과 같은 몸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부활하신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태어난 사람과 부활하신 사람은 다릅니다. 육체로 태어난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모든 한계와 제한을 가지고 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런 한계와 제한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분명히 다시 살아나셨음도 맞고 이전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도 맞습니다. 예수님은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수준의 몸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 모든 일은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일을 겪으셨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그 엄청난 일로 인해서 새로운 수준의 몸과 새로운 세계의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은 새로운 세계의 존재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이미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약속하셨던 일들의 성취였습니다. 그것은 그 이전 단계가 있었기 때문에 존재하게 된 일련의 연속성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세계를 뛰어넘어 존재하는 아련하고 애틋하며 뭉클한 사랑의 존재를 깨닫게 합니다.

  

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이해한 다음에 한참 동안을 아버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돌아가셨지만 돌아가신 분과 현재 살아있는 나 자신을 연결하는 그 고리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관계가 좋았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아버지를 사랑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죽음 이후에도 연결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죽음 이후에도 연결되는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 뿐만이 아닙니다. 사랑하던 병아리가 죽어도 생각납니다. 사랑하던 개가 죽어도 생각납니다. 사랑하던 그 어떤 대상에 대해서 항상 연결고리가 생깁니다. 그 사랑의 연결고리가 우리가 살아가고 존재하고 있는 이 시간과 이미 사라지고 존재하지 않는 다른 시간을 연결하는 끈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와 같이 두 세계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근거가 되십니다. 그 근거 속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소망할 수 있고 그 속에서 그리스도에 근거를 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는 자들에게는 내세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어떤 악한 사람이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미워하던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것이라면 어떨까요? 혹시 더 나아가 가상적으로 자신이 괴롭혔거나 죽였던 사람을 다시 만난다면 그럴 수 있는 세계는 얼마나 거부되고 부정될까요? 그것이 바로 지옥의 세계가 아니겠습니까? 자신이 했던 죄악과 자신이 저질렀던 모든 악함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 존재한다면 그곳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곳이 되겠습니까? 내가 버린 모든 쓰레기와 내가 배설했던 모든 오물이 전부 모여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가장 고통스럽고 괴로우며 끔찍한 장소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죄의 문제를 거부하고 부인하며 심판의 개념과 죄악의 결과를 부정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그 모든 일은 결코 허락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허락하면 하나님이 부정하고 부패하며 악하신 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사람들이 많은 쓰레기와 담배꽁초와 오물을 수없이 버리는데 그 모든 쓰레기와 꽁초와 오물이 온 거리에 널려 있다면 그것을 허락하고 허용하는 사회가 있다면 그런 사회는 지탄을 받을 것입니다. 올바른 사회는 그 더러움을 제거하고 그 기준과 원칙을 어기는 자들을 심판할 것입니다. 그것이 모두에게 좋기 때문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삶에 대한 죄의 심판과 처리를 이루십니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용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용서를 이루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죽었다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 용서하심이 바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해주신 중요한 말씀이었습니다.

  

"[]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0: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용서에 대해서 알려주셨습니다.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죄의 용서가 가능한 것은 제자들 때문이 아닙니다.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기에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한 죄의 용서는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용서를 이루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용서를 알게 하셨습니다. 부활의 기쁨은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성령을 통해서 용서가 이루어지게 되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너무나 기쁜 일이 되었습니다.

  

 

  

제가 꿈속에서 다시 만났던 아버지는 저에게 하신 말씀은 제 설교를 잘 듣고 있다는 정도로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것은 로또 번호는 몇 번이다, 어떤 주식이 급상승한다, 어디에 땅이나 집을 사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다 등의 실생활에 중요하고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지만 그런 말은 없었습니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제자들의 경제활동이나 취미생활이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인 면에 한 마디 해주셨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들의 죄의 용서함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통해 죄를 용서받았고 그래서 그들은 평안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을 사람들에게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뜻이었습니다.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예수님을 보내시고 항상 함께 하셨듯이 예수님도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항상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용서받음의 기쁨을 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온전한 용서를 이루게 하셔서 기뻐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보내셔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온전한 용서를 받게 하실 때 기뻐하십니다. 우리도 바로 그 일에 동참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다시 살아나심은 제자들에게서 기뻐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기쁨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잇는 연결고리가 되셨습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는 다음 세상을 소망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그 기쁨 속에서 살아가게 하십니다.

  

부활의 기쁨으로 함께 부활감사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죄사함의 용서를 받게 된 것을 감사하면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더욱 기뻐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고 용서를 주신 그 주님의 은혜 속에서 날마다 기쁨으로 살아가는 자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힘든 시기이지만 우리와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게 하심을 기억하고 그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셔서 제자들에게 오셨고 평강을 주셨다.

  

2. 죽은 자의 살아남은 보이는 일과 보이지 않는 일의 오묘한 관계를 깨닫게 한다.

  

3. 다시 살아나신 주님은 성령을 통한 죄의 용서함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4. 주님은 죄로 죽으심을 통해 죄사하심을 이루셨고 그 기쁨을 전하게 하신다.

  

 





chart b-g.jpg

모바일 웹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