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죄악과 잘못에 대해서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였을 때에 사람들은 그런 비판을 할 수 있을 만한 근거와 증거를 요구하였습니다. 우리도 무엇인가를 바르게 하려고 할 때마다 그런 근거와 증거가 요구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럴 때 무엇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자신있는 근거를 내어 놓을 때에 비로소 우리에게 모든 바르게 함의 이유와 목적이 나타납니다.”
1. 죄 지은 자들의 반격과 그들의 요구사항
2. 동일한 문제에 대한 우리 자신의 저항과 대답
3. 바울이 나타낸 대답과 그 이유
4. 그 대답을 통해 나타나는 우리의 목적
이제 우리는 고린도후서의 마지막 장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이 편지의 목적과 당부하는 말, 그리고 끝인사 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가 고린도교회의 죄 지은 자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당부하는 내용은 그들의 잘못된 반응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쉽게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반항적이었고 도리어 책망하는 바울에게 대드는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지적하는 바울에게 그 판단기준에 그리스도의 어떤 권위가 있는지를 따졌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판단과 생각으로 한다고 도리어 공격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증거’를 요구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현대교회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교회가 새로워져야 한다고 말하면 왜 그래야 하냐고 반문합니다. 인격과 열정을 회복하자고 하면 지금 현재 상태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합니다. 성도 개개인의 잘못과 실수를 지적하면 그 이유들이 모두 교회 자체와 프로그램과 체제와 그리고 목사님을 비롯한 교역자들에게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신이나 잘하라고 합니다. 이런 상황이니 고린도교회의 죄지은 자들이나 오늘날 우리들이나 큰 변화는 없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그럴 때 사도 바울은 무엇이라고 대답했을까요? 혹시 주눅들어 뒤로 물러서지는 않았을까요?
사도 바울은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고 말했습니다. 죄를 지적할 때에 그 모습은 주님의 약하심의 모습이 아니라 강하심의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약하심과 강하심의 의미를 좀 더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약해지신 것은 죄값을 치루는 십자가의 고난으로 인해 약해지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 치루신 후에는 다시 강하여지셨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의 모습은 영광과 존귀와 능력의 모습이신 것입니다.
죄를 지적할 때의 모습은 그 죄가운데서 고통하며 괴로워하는 주님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때에는 죄값을 치루시고 승리하시고 강하여지신 주님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죄는 바로 그 모든 주님의 승리와 강하여지심이 있기에 지적되는 것이고 회개가 촉구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주님이 이제 살아나셨기에 죄는 결코 용납되어서는 안되고 다시 약해져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죄에 대한 지적 그 자체만을 싫어하기 때문에 죄의 지적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또한 죄의 지적에 대항하는 거부반응을 불편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그냥 넘어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죄를 이기고 승리하신 주님의 강하심을 잊지 말하야 합니다. 주님의 고난이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죄를 이겨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죄를 그냥 내버려 두면 우리는 버리운 자일 수 밖에 없습니다.
죄를 지적할 때에 반드시 그 증거를 요구하는 반응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에 뒤로 물러서지 마십시오. 죄를 이기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헛되이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 결심도 세우지 못하면 버리운 자가 되고 맙니다. 연약함을 이기고 강함으로 주님의 올바른 능력을 나타내는 우리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