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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은혜] 2출23;16 우리가 맥추절을 지키는 이유



2출23;16 우리가 맥추절을 지키는 이유



2009.7.5.주일. 주일오전

오늘 우리는 맥추절을 맞이하였습니다. 맥추절이란 지난 6개월을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간의 수확물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예물을 드리는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맥추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따라서 우리는 맥추절을 지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냥 이 절기를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쳐 버린다면 그 의미와 목적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도 형식적으로만 그칠 것입니다. 진정한 마음을 담아서 그 속에 우리의 정성과 사랑을 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맥추절을 지킨다 하더라도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지난 6개월을 무의미하게 보낼 것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6개월도 무의미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생각해 봅니다. 맥추절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 의미를 먼저 성경에서 찾아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맥추절에 대해 말씀해 주시는 장면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첫 열매.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 이것의 의미를 아십니까? 여러분이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농부들은 밭에 단순히 한가지 작물만을 심는 것이 아닙니다. 여름 한철 농부들은 바쁩니다. 왜냐하면 5,6월에 보리를 수확하기 때문입니다. 이전 해 가을 쌀농사를 한 뒤 그 수확을 거두고 그 다음해 여름에는 보리수확을 합니다. 다시 말하면 보리는 쌀을 수확한 가을에 파종을 해서 겨울과 봄을 거쳐 여름에 수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리의 수확은 그 해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두는 것입니다. 맥추절의 의미도 원래 히브리어는 'chaqasir' 인데 바로 우리 상황에 맞게 번역을 해서 보리를 거두는 절기라는 의미의 '맥추절'이 된 것입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보리를 거둔 것의 의미는 그것이 진짜가 아니고 그것이 정말 바랬던 실체가 아니고 진짜 수확이 오기 전에 첫 열매와 같은 것입니다. 지난 6개월은 앞으로 오게 될 다음 6개월을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지난 6개월의 열매는 앞으로 오게될 6개월의 열매의 서곡입니다. 그 시작이 바로 맥추절인 것입니다. 보리를 거둔 것으로 끝이 아니라 다음번에는 쌀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대한 희망과 소망이 있는 시간이 바로 맥추절인 것입니다.

맥추절이 다가올 절기의 전조라는 것은 오늘 성경말씀에도 나옵니다. 맥추절을 지키라는 말씀에 바로 이어지는 것은 수장절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수장절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그것은 우리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해가 끝난 뒤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맥추절은 시작일 뿐이고 진짜는 수장절에 있습니다. 모든 이루어진 것을 거두어서 창고에 저장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저장된 것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더욱 풍성합니다. 맥추절은 이렇게 모든 완전한 수확 이전에 이루어지는 첫 열매입니다. 수확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맥추절에 대한 의미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맥추절을 지키는 것일까요? 맥추절이 한해의 중간에 얻은 첫 열매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라는 점은 알겠는데 우리는 왜 우리가 얻은 첫 열매에 대해서 감사해야 할까요? 왜 그 감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할까요? 그것은 우리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까? 말 그대로 우리가 수고하여 우리가 뿌린 것을 거둔 우리의 열매가 아닙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맥추절을 지킵니까? 왜 하나님께 감사합니까?

열매에 대해서, 수확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을 저장하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16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18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 하셨으니 21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비유 속에서 그 부자는 풍성한 소출을 보면서 그 모든 수확물을 자기 자신의 힘으로 했다고 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그는 이제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의 생명은 바로 그날 밤 까지만이었습니다. 그에게 생명을 주시고 열매를 주시고 복을 주셨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음으로 그 자신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부요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의 벌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 맥추절을 드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형통함을 주시고 좋은 환경을 주시고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셔서 오늘날의 수확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인도하시고 그분이 힘을 주시고 그분이 함께 하셨기에 우리는 이 수확물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분께 고마운 마음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감사 속에서 그 찬양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가까와집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더욱 사랑하십니다. 고마워할 줄 아는 우리들에게, 감사할 줄 아는 우리들에게, 보답할 줄 아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음번 이어지는 수장절, 즉 추수감사절에도 그대로 이어질 것입니다. 맥추절의 감사가 연말의 추수감사절의 감사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더욱 감사하고 기쁘게 여기면 여길 수록 다음 번 수확에서 더 큰 감사와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더 친밀해졌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 가까워졌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더 많이 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두가 다 이런 마음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받은 것이 자신의 생각과는 너무 차이가 날 때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보다는 너무 적게 받았을 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해서 화를 냅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좀더 멀어집니다. 더욱 멀어집니다. 아예 보이지 않게 되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그랬습니다. 그는 주인을 섬기고 있던 어떤 종이었습니다. 주인은 먼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각 종들에게 소유를 나누어주면서 일을 하여 이윤을 남기라고 했습니다. 다른 종들은 두 달란트(화폐의 일종)와 다섯 달란트를 받았는데 그는 한 달란트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너무 실망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받았지만 자신은 한 달란트밖에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날로 말하면 다른 사람들은 물질에, 배경에, 지혜에, 능력을 받았지만 자신은 고작 지혜밖에 없는 것입니다. 너무 비교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달란트를 땅에 파묻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받은 것을 그냥 묻어 두었으니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무런 유익도 남기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주인이 돌아왔을 때 그 종은 오히려 당당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아아, 이 사람은 관계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관계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관계를 깨트리고 주인에 대해서 악하게 했을 때 주인이 어떻게 나오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가 정말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종이 정말 원했던 것은 자신도 다른 사람들처럼 많은 달란트를 받고 많은 유익을 남기고 싶은 것이었겠지요. 자신도 그렇게 주인과 관계가 틀어지는 것은 원하지 않았겠지요. 자신도 정말 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 마음은 지금 당장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로 묻혀버렸습니다. 잘 할 수도 있었겠지만 한 달란트를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해서 무엇이라도 되었다면 주인이 기뻐하고 자신도 보람을 느꼈겠지만 그는 눈앞에 있는 부족함과 적은 달란트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서 더 큰 것을 다 날려버렸습니다. 작은 것을 탐하다가 더 큰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한 두 달란트의 차이 때문에 그는 주인의 원수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종은 쫓겨났고 벌을 받았습니다. 관계는 완전히 깨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때로 우리는 삶 속에서 그런 안타까운 모습을 봅니다. 공부를 하는 학생이 아무리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공부를 포기하고나서는 완전히 성적이 바닥을 치고 더이상 회복할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과외를 해주는 선생님이 자기 보수가 다른 선생님들 보다 적다고 해서 더 불성실하게 학생을 가르치다가 더이상 과외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연봉이 적은 직장인이 남들보다 연봉이 적다고 해서 대충 대충 일을 하다가 더이상 그 회사를 다니지 못하게 됩니다. 남편이 가져다 주는 수입이 적다고 해서 매일 다투다가 결국에는 함께 살수가 없게 됩니다. 아내가 자신에게 대하는 태도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매일 다투다가 결국에는 함께 살수가 없게 됩니다.

정말 원했던 것은 그런것이 아니었는데 지금 당장의 상황을 받아들이지를 못하니까 미래의 것도 받아누릴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더 인내하고 참으면서 감사하며 살면 언젠가 때가 되어 이루어지는데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일을 그르쳐 버립니다.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입니까? 누구의 사례입니까? 누구의 안타까운 사연입니까? (부디 우리들의 것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이제 진정한 감사의 시작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알면 다른 사람에게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주셨다고, 느껴지지 않는 하나님이 나를 지켜주셨다고 고백하고 감사하면 그 감사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감사할 수 있습니다. 느껴지는 사람들에게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나를 있기까지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그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도우셨던 사람들에게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던 어려운 상황들에 대해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도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랍비였던 아키바라는 사람이 먼길을 떠났습니다. 그는 책을 보기 위한 등잔불과 시간을 알려주는 수탉과 먼길을 타고 갈 나귀와 유대인들의 성경인 토라(Torah)를 가지고 여행을 출발하였습니다. 여행 중에 날이 저물어서 한 마을에 들어갔습니다. 한 집의 문을 두드리면서 "하룻밤 좀 자고 가십시다"라고 부탁했지만 거절을 당하였습니다. 다른 집도 가보았지만 모든 집들이 다 거절했습니다. 언제나 감사만 하는 아키바는 오히려 감사하며 마을 바깥에서 잠을 잤습니다. 밖에서 노숙을 하자니까 잠이 오지 않아서 성경을 읽으려고 등불을 켰습니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서 불을 꺼버렸습니다. 아키바는 그래도 감사하며 잠을 잤습니다.
잠을 청하고 있을 때에 여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귀가 그 소리를 듣고 놀라서 그만 도망을 쳐버렸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불평하겠지만, 그는 다시 하나님 앞에 감사하였습니다. 나귀가 도망을 가는 바람에 수탉도 놀라서 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에게는 남은 것이라고는 성경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키바는 "모든 것을 항상 좋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 상황을 통해 더 큰 유익을 주실 거야" 하면서 오히려 감사하며 잠을 청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날이 밝았습니다. 일어나서 마을에 들어가 보니까 이게 웬일입니까? 전날 밤 도적 떼가 마을을 습격해서 마을 사람들을 다 죽이고 물건을 다 약탈해 버렸던 것입니다. 만약 그 마을에서 잠을 잤다고 하면, 아키바도 죽었을 것입니다. 만약 등불을 켜고 오랫동안 토라를 읽었다고 하면, 아키바는 도적에게 발견되어서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만약 나귀와 수탉이 있었다고 하면, 그것이 소리치거나 울었을 때 아키바가 발견되어서 같이 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키바를 살리기 위하여서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방을 거절하게 했습니다. 등불이 꺼지게 했습니다. 나귀와 수탉을 도망가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아키바를 이렇게 지켜주셨습니다.

지금 당장은 어려운 일인 것 같아도 나중에 돌아보면 감사한 일이 된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저도 그런 일을 일일이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겪었습니다. 과거에 대해서 우리는 그렇게 이해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질 것입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일에 대해서는 역시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질 것입니다. 미래의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까요? 좀 다르게 해볼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역시 복주실 것을 믿고, 도와주실 줄 믿고, 합력하여서 선을 이루실 줄을 믿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면서 간구하십시오. 간구하면서 준비하십시오. 준비하면서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케 해주십니다.
맥추절을 주님께 드리며 감사하십시다. 그리고 더욱 주님을 의지합시다. 감사하고 의지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더 큰 열매를 준비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가질 수 있게 도와주실 것입니다. 주님께 감사하며 다시 세상으로 다시 일터로 다시 밭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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