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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영역] 눅 1;1-7 말씀의 목격자되고 일군 된 자들



눅 1;1-7 말씀의 목격자되고 일군 된 자들



* 일시: 2008-12-02, 주일오전
* 주제: 1영역-가정의 어려움
* 구성: B2- 사람들은 성탄절의 주인공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여러가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B1- 누가는 목격자되고 일군된 자로서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전하기 위해 글을 썼습니다.
C2-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준비하기 위해 시작하신 일은 아이를 낳지 못해 괴로워하던 사가랴 부부에게 복음을 전해주시는 일입니다.
A3- 하나님은 언제든지 우리의 고난과 괴로움 속에서 복음을 주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오심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성탄절이 가까이왔습니다. 12월에 울려퍼지는 캐롤과 성탄장식은 우리에게 연말이 다가왔다는 것과 올해에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왔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건물에 드리워진 멋진 트리장식과 방송에서 가끔씩 나오는 캐롤송은 더욱 그런 느낌을 깊게 가지게 합니다. 비록 이번 연말도 예전 연말과 별로 다름없이 우울하고 낙심되며 경제사정이 해마다 더욱 좋지 않게 느껴지는 분위기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렇게 우리가 힘들때에 우리에게 오신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어서 올해에도 역시 견딜만하고 인내할 만한 시간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해마다 성탄절이 되면 이 날이 무슨 날인지에 대한 설명을 해야하는 필요성을 느낍니다. 도대체 이날이 무슨 날이기에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한 준비를 하며 특별한 기대감을 가지며 특별한 소망을 품는 것일까요?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불신자들이 볼 때 신자들의 이러한 행동은 얼마나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겠습니까? 뿐만 아닙니다. 우리들의 어린 아이들이 바로 이날에 대해서 순수한 마음으로 질문을 하는 때가 있습니다. 성탄절은 무슨 날이에요? 왜 이름이 성탄절이에요? 성탄절에는 무엇을 하나요?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들은 성탄절이 무슨 날인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신자들도 성탄절이 무슨 날인지 잘 모르고 지내는 것 같습니다. 그냥 교회행사가 있는 날, 즐거운 분위기가 있는 날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도 무조건 캐롤만 울리면 정신없이 즐거워합니다. 괜히 음악만 들어도 흥겨워지는 이 날은 도대체 누구의 날입니까? 도대체 누가 이 날의 주인공입니까? 이 날의 주인공은 가족일까요? 연인일까요? 산타일까요? 유명연예인일까요? 유명가수들일까요? 아니면 누굴까요? 누가 진정한 주인공입니까? 우리가 성탄절을 지키며 그날을 기억하고 그로인해서 평화를 누리며 소망을 갖게 된 것은 모두 누구때문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때문입니다. 이날의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생일잔치입니다. 마땅히 예수님이 제일 높임을 받으셔야 합니다. 하지만 주변상황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오셨지만 어두운 경제사정이 그분의 오심의 기쁨을 무력화시키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여러가지 우울한 상황이 별로 예수님을 반길 입장이 아니게 만들고 있습니다. 혹은 예수님보다 더 높여지는 다른 대상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때로는 무시와 외면이 때로는 다른 것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주인공인 예수님은 뒤로 제치고 그냥 성탄절을 맞이한 자신들의 분위기를 형성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울함이나 좌절감이든 혹은 격한 쾌락이나 몸의 편안함이든 어떤 것이든지 다 예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성탄절의 참된 의미와 내용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그들은 말씀의 목격자되고 일군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전함을 받은 그대로 모든 내용을 정확히 기술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붓을 들고 펜을 들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편지를 쓰고 엽서를 쓰고 기사를 쓰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들 중의 하나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누가입니다. 누가는 오늘 성경말씀 2절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들처럼 복음의 내용을 그대로 기술하려고 붓을 들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좀더 중요한 목표가 있었는데 그것은 데오빌로 각하입니다. 데오빌로 각하에게 복음의 내용을 자세히 전해주고자 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습니다. 그가 이러한 목표를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3절에서 누가는 자신이 데오빌로 각하에게 이와같은 내용을 써서 보내는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서점에 가보니 ‘성경말씀대로 살아본 1년’이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제목이 신기해서 펴들었더니 아주 아주 황당한 이야기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저자는 1년동안 성경말씀대로 살아보기로 결심하고 성경말씀에 나와있는대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가 따르는 성경말씀은 신약의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율법과 규칙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는 전혀 상관없이 의복과 관습과 문화적인 규칙대로만 1년을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뒤 1년이 지난 다음 그가 보여준 모습은 수염이 더부룩하게 자란 전통유대교의 랍비와 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런 일을 한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유대교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신약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교말입니다. 결국 그가 붓을 들고 자신의 기행에 대한 책을 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마 배운 바의 허무함을 알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성경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지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누가가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에 관한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피고 그 모든 내력을 기록하기로 한 이유는 바로 ‘데오빌로각하가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고’했던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예수님을 믿고 그 예수님을 인해서 담대하고 두려움없이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더 많이 알게 될 때에 더 많은 확신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 목적을 위해서 그가 이야기한 것은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구원이 절실히 필요한 자들에게 하나님이 구원을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가장 먼저 말한 것은 제사장 사가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었고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에 흠이 없이 행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벳은 수태를 못해서 무자하였고 나이가 많았습니다. 그들의 상태를 말하자면 의인이었고 올바르게 살았지만 아이가 없음으로 인해서 별다른 소망이 없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조금 더 과장된 추측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어쩌면 아이가 없어서 살 재미가 없었고 즐거움이 없었으며 때로는 그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의 눈치까지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 소망이 있었고 의로운 삶을 살았지만 왜 그들에게는 정상적인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을까요? 그들의 삶은 그런 상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그들에게 오셨습니다. 수태를 못하여 무자하고 나이가 많아 자녀의 소망이 끊어진 그들에게 주님은 오셨습니다. 자녀가 없어서 낙심하는 자들의 마음을 우리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자녀란 구원과 같은 것입니다. 일부러 자식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면 자녀가 없다는 것은 절망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을 하나님은 변화시키셨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셨습니다. 바로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그는 바로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였던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우리는 세례요한이 이 세상에 와서 무엇을 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서 나와서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소개하였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도록 인도했습니다. 누가는 바로 그러한 세례요한을 가장 먼저 이야기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누가는 또다른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로서 듣고 보고 받은 바를 그대로 전한 자들 중의 하나였던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자들입니까? 자신이 듣고 본 바를 전하는 자들입니까? 아니면 데오빌로처럼 누군가 여러분에게 지금까지 배운 바를 다시 확실하다고 알려주어야 하는 자입니까? 아니면 그런 것에는 관심도 소망도 없이 그저 그리스도를 외면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자입니까?

하나님은 언제든지 가장 어두울 때에 가장 밝은 빛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상황이 가장 어두울 때 주님은 가장 밝은 빛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그 주님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이 누구인지가 혼란스러운 이 때에 우리도 함께 혼란스러워하면 안되겠습니다. 주님이 주인공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그분을 기억하고 기뻐하는 날이 성탄절입니다. 그분으로 인해 감사하는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날을 힘써 준비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에게 어느해 성탄절이 가장 뜻깊었는가 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가장 오랜 기간 성탄절을 준비한 해가 가장 뜻깊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성탄절 하루의 어떤 특별 행사로 우리가 성탄절을 영광스럽게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성탄절의 분위기는 시작되었습니다. 누구를 기억하고 누구를 바라보며 누구를 높이고 얼마나 오랫동안 준비하는가가 그날의 의미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말씀의 목격자되고 일군된 우리 모두가 더욱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기억하고 그분께 집중하여서 이번 성탄절에도 가장 큰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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