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금요] 49엡 5; 2-4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안에서 행함_5Loading the player...
49엡 5; 2-4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안에서 행함_5
2025. 9. 26. 금. 금요기도회.
찬양: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294장] 하나님은 외아들을
개요: 네비게이토 성경요절 E5, 순결, #75덕행 [엡]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엡]5: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엡]5: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성도의 생활에 대해서 생각할 때 그리스도를 닮은 것은 가장 기본이 되는 모습입니다. 그 다음에 좀더 발전된 모습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고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고자 할 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의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모습은 항상 예수님을 향해서 일관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동일하시고 예수님의 은혜는 변함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더 발전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충만한 은혜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은혜를 조금 받고 끝내려고 하지 말고 그 한없는 은혜 안으로 들어가려고 해야 합니다. 이러한 의미를 생각할 때 오늘 말씀 속에서 성도의 삶에 대한 그리스도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엡]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2절에서 보이는 것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받는 것이고 그분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리스도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것은 이 세상에 계실 때 뿐만 아니라 보좌에 앉으셨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사랑을 보여주셨고 우리는 그 사랑을 받은 자로서 사랑 가운데 행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사랑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님의 뜻을 알려주셨는데 그것은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버리셨다는 것이고 그것은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것을 기억하면서 그 안에 거하고자 한다면 주님을 따라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뜻을 알게 되면 우리도 그 뜻을 따라서 살고자 할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이 보여주신 모습대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드려지는 삶의 모습을 다음 3,4절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엡]5:3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욕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바인 이유는 성도의 삶이 그리스도의 뜻대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성도의 삶 속에 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욕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가장 순결한 삶을 주님께 드려야만 합니다. 받으려고 하지 않고 드리려고 할 때 그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청결사건을 행하실 때에 보여주신 것은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전이라는 점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온전한 성전으로 하나님께 드려지셨기 때문에 그 안에 거하는 우리도 그러한 뜻을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바로 온전한 삶을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서 하나님을 섬길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사람이 됩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그들이 온전한 마음으로 행하면서 정성스러운 헌금을 사도 바울에게 했을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단지 헌금을 하면서 조금 참여하는 자가 아니라 온전한 삶을 살면서 헌금을 할 수 있음을 기뻐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서 하나님께 드려지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뻐하십니다. 이러한 삶은 단지 행동으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도 표현됩니다. 그래서 어떤 말을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엡]5: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누추한 말이나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은 옳지 않습니다. 누추한 말이라는 것은 경박하고 상스럽고 속된 말입니다. 어리석은 말과 희롱의 말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지 못하는 감정의 표현입니다. 그런 말이 나오는 이유는 받지 못함이나 얻지 못함에 대한 불만의 표시일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반대의 말은 감사하는 말입니다.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선하신 뜻가운데에서 주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혔을 때 그들은 감사의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찬양을 불렀습니다. 선교를 하면서 겪는 고초에 대해 그들은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선교를 할 수 있음에 대해서 감사했던 것입니다. 그럴 때 감옥문이 열렸고 간수가 자결을 하려고 했으며 그 간수를 만류해서 복음을 전해주었고 그럴 때 간수와 그의 가족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삶의 시작은 불평과 불만이 아닌 감사와 찬양 속에서 일어납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와 같은 기적과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불평과 불만 속에서는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감사와 찬양 속에 진정한 변화와 감화가 일어납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받으시는 삶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모습과 나타내신 뜻을 생각하면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삶 속에 풍성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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