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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요 2; 1-4 주님의 때가 이르기를 기다리는 모습_1
2025. 7. 6. 주. 주일오전.
찬양: [195장] 성령이여 우리 찬송 부를 때 [300장] 내 맘이 낙심되며
[552장] 아침 해가 돋을 때 [240장] 주가 맡긴 모든 역사
개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림, 64인내
[요]2: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요]2: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요]2: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요]2: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요]2: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맥추감사주일을 보내면서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 살아갈 삶에 대한 소망을 갖습니다. 그런 소망 속에서는 우리는 시기와 때를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그 일이 언제 일어날 것인가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도 그 구원이 언제 이루어지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관심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무엇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 일이 과연 언제 일어날 것인가에 너무 집착할 때 하나님의 뜻은 그 이상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 뜻을 바라보려고 할 때 우리는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관심에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것은 신앙의 놀라운 발전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변화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합니다. 1절을 봅니다.
“[요]2: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요]2: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여기서 사흘째 되던 날이라는 것은 안식일 다음으로 세 번째 날이라서 화요일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날짜의 요일명을 붙이지 않고 순서만 따져서 요일을 계산했습니다. 그 이유는 요일명은 전부 이방신들의 이름을 딴 것이라서 그 자체로 우상숭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화요일에 갈릴리 가나에서 있었던 친척의 혼례식에 초청을 받아서 가게 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세 번째 날인 화요일은 전통적으로 결혼식이 많이 열리던 날이었습니다. 창조에서 세 번째 날에 바다와 땅과 식물이 창조되었기 때문에 풍성한 소산을 의미하는 날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결혼식이라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것은 사실 주님의 사역의 때는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 결혼잔치에서 음료인 포도주가 모자라게 되었을 때 마리아는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했지만 예수님은 지금이 자신의 때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요]2: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요]2: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잔치집에서 음료가 부족해지는 일종의 위기상황이 일어났고 마리아는 그 상황에서 예수님이 도와주시기를 원하였지만 예수님은 그것이 예수님의 사역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들로서가 아니라 구세주요 메시야로서 사역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정중하게 이 상황의 한계를 말하고자 하셨고 그래서 어머니를 높여 부르는 말인 ‘γύναι’ 로 부르면서 자신이 할 일이 아니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아마 마리아는 예수님이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고 하셨을 때 낙심하거나 절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때 그 때를 기다리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계속 기다려야 하다 보면 그것이 거절의 의미로 느껴지면 상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의 때를 따라가는 것이지 하나님의 때를 나에게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의 모습이나 빨리 시험이 끝나기를 바라는 학생의 모습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때가 빨리 임해서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그것이 당연하고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만 객관적인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은 그냥 자기 중심적인 생각이었을 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그럴 때의 조급함은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일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때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의 반응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성도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대답에 대해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는 예수님의 뜻까지도 따르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 때를 준비하게 시켰습니다.
“[요]2: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이렇게 말할 때 마리아의 생각은 아직 예수님의 때가 이르지는 않았지만 언제 어떻게 이루어지든지 그 뜻을 따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인들에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언제 어떤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고 분부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그 순종하는 하인들을 통해서 물이 포도주가 되는 첫 번째 가나의 혼인잔치에서의 기적을 이루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하는 주님의 때를 기다리는 자의 모습입니다. 중요한 것은 언제 되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짜 하나님의 때와 뜻을 따르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와 뜻을 따르고자 한다면 언제든지 그 때와 뜻을 따를 준비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 때와 뜻에 대해서 준비가 미흡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는 이러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성도들의 모습을 좀더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25: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마]25: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마]25: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마]25: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너무나 대비가 되는 두 그룹의 사람들은 본질적인 차이를 보였습니다. 미련한 자들은 등은 가지고 있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고 슬기로운 자들은 등과 함께 기름도 준비했습니다. 등이 있어도 기름이 없으면 빛을 밝힐 수 없지만 미련한 자들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신랑의 뜻에 따라서 빛을 밝히든 말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만이 중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슬기 있는 자들은 자신의 뜻보다 신랑의 뜻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등과 함께 기름도 준비하니 비로소 빛을 낼 수 있었고 그로 인해서 신랑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나타나는 슬기 있는 그들은 자신의 뜻을 따르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들이었습니다.
미국 뉴욕에는 맨해튼섬과 브루클린시를 연결하는 브루클린 다리가 있습니다. 이 다리는 1883년에 완공되었는데 여기에는 건축가 존 로블링과 그 아들 워싱턴 로블링, 그리고 그 아내 에밀리 로블링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뛰어난 건축가였던 존 로블링에게는 이 공사를 완공할 수 있도록 돕는 아들과 며느리가 준비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14년동안 흔들림없이 공사를 진행해서 마침내 위대한 현수교를 완공할 수 있었던 준비였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 속에서 내 때와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와 뜻을 따르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더욱 준비하는 것이고 더욱 노력하는 것입니다. 더욱 최선을 다하고 더욱 간절하며 더욱 진실해 집니다. 주님을 위해서 애를 쓰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주님의 때가 이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때가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가정에 우리의 교회에 임하기를 기다릴 때 슬기 있는 자가 되어서 잘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에는 놀라운 빛이 나타나고 왜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일을 행하셨는지를 알게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삶 속에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