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2출12; 31-36 복음으로 애굽 땅에서 나오게 됨_1Loading the player...
2출12; 31-36 복음으로 애굽 땅에서 나오게 됨_1
2025.10.26.주. 주일오전.
찬양: 24. 왕 되신 주, [139장] 오 영원한 내 주 예수, [378장] 내 선한 목자, [194장] 저 하늘 거룩하신 주여
개요: 복음으로 살아가는 생활의 모습, [출]12:31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출]12:32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하며 [출]12:33 애굽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하고 그 백성을 재촉하여 그 땅에서 속히 내보내려 하므로 [출]12:34 그 백성이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니라 [출]12: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출]12:36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복음으로 사는 삶과 율법으로 사는 삶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이 둘의 삶의 방향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복음으로 사는 삶이나 율법으로 사는 삶이 단순히 신앙수준의 차이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본질적으로 이 둘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하나는 올라가는 삶이고 다른 하나는 내려가는 삶입니다. 비록 비슷한 길이나 수준은 공유하겠지만 목적지는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슷한 길이나 수준을 공유하는 시기에 우리는 정신을 차려서 율법으로 살지 말고 복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럴 때 복음의 목적지인 하나님 나라에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복음의 삶을 살아가는 방향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판단하기만 하다 보면 그 자체가 율법의 삶이 되어 버립니다. 진정한 복음의 삶을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티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 대한 나의 들보가 보이게 됩니다. 그것이 진정한 복음의 삶입니다. 그래서 사랑의 빚을 지게 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푯대도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복음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삶의 방향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떠나 가나안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복음의 삶이었습니다. “[출]12:31 밤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르되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에서 떠나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출]12:32 너희가 말한 대로 너희 양과 너희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 하며” 바로는 밤에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스라엘 자손을 내보내기로 한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들을 자신의 백성에게서 떠나게 했고 그들의 말 대로 여호와를 섬기며 그들이 말한 대로 그들의 양과 소도 몰아가서 떠나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고 했습니다. 밤에 바로가 그렇게 말했던 이유는 그 밤에 바로의 장자가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애굽에 임한 열 번째 재앙이 이루어졌을 때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전까지 있었던 아홉 가지의 재앙은 잘 견뎌냈지만 열 번째 장자가 죽는 재앙은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주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바로의 말 속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라고 했던 것처럼 그들은 그렇게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을 따르는 삶의 방향이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방향은 바로 여호와를 섬기는 삶 속에 있습니다. 그전에는 바로를 섬기는 삶이었지만 계속 그렇게 살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랬고 마침내 바로가 뜻을 굽힌 다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그들의 삶의 방향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의 삶의 방향은 세상을 따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는 삶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따르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양도 몰아가고 소도 몰아가고 바로를 위해서 축복도 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방향인데 이러한 방향은 명목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방향입니다. 그렇게 살려고 할 때 우리에게는 율법의 삶의 방향을 따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율법의 삶의 방향은 바로를 따르는 것이었고 그 반대는 오직 하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하나님을 따르기 전까지는 많은 시련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홉 가지의 하나님의 재앙이 임했어도 뜻이 굽히지 않던 바로를 보았습니다. 그 바로를 보면서 그들이 혹시라도 가졌을 절망감과 상실감을 생각해 보십시오. 애굽에 임한 아홉 가지의 재앙들 속에서도 견뎌낸 바로는 얼마나 대단한 의지의 소유자입니까? 그런 모습을 보면서 그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포기해 버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포기하고 좌절해 버리는 것은 율법을 따르는 삶이지 복음을 따르는 삶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열 가지의 재앙을 말씀하셨고 정말 그 말씀대로 열 번째 재앙인 장자의 죽음 앞에서 비로소 바로는 무너졌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연약하여져서 바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하나님을 따라야만 합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바로와 같은 세상 권력을 따르고 사모한다는 것은 단순히 좌절이나 절망의 의미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의 의미도 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못박으라고 소리를 질렀던 예루살렘 백성들이 바로 그러한 반역을 이루는 자들이었습니다. 요19:15절을 보십시오. “[요]19: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그들이 간절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면서 대제사장들은 말하기를 ‘가이사만이 우리의 왕이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 당시 과거 애굽의 바로와 같은 위엄을 가진 로마의 가이사를 섬기는 자들이었고 그래서 예수님을 대적하고 못박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사탄의 무리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로마의 위세에 굴복해서 가이사를 섬겼든 혹은 가이사를 섬기는 것이 더 자신들에게 유리해서 가이사를 섬겼든 간에 결국 예수님을 섬기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은 철저히 율법의 삶을 살았던 자들이었고 또한 반역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이 주님의 일군들을 핍박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일들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삶을 살고자 할 때 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만 따르는 삶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홉 번째 재앙 이후에 올 열 번째 재앙에서도 하나님을 소망하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마치 야구에서 9회에서 승부를 내지 못해 10회로 연장되더라도 여전히 자기가 응원하는 팀을 응원하는 것처럼 우리는 이 세상에서 계속 하나님을 따르고자 할 때 복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에 대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소망할 때 복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상황에 대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대하고 간구할 때 복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세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식이 있기 때문에 다음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가 나가라고 했을 때 나올 수 있었는데 그들은 그냥 나오지 않았습니다. “[출]12:33 애굽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하고 그 백성을 재촉하여 그 땅에서 속히 내보내려 하므로 [출]12:34 그 백성이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니라” 상황이 변화되어서 바로가 나가라고 하니까 애굽 사람들은 보기 싫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빨리 나가주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재촉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식량으로 발효되지 못한 떡반죽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고 집을 떠났습니다. 그런 촉박한 상황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에 은금패물과 의복을 요구했습니다. “[출]12:35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출]12:36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그리고 그것은 모세의 말을 따르는 것이었고 그 말은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이었습니다. “[출]1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내보내리라 그가 너희를 내보낼 때에는 여기서 반드시 다 쫓아내리니 [출]11:2 백성에게 말하여 사람들에게 각기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을 떠날 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셨는가 하면 그 은금 패물은 애굽에서 사용할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할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도착할 가나안에서 사용할 것도 아니었고 오직 광야에서 사용하기 위한 물건들이었습니다. 바로 언약궤를 만들고 성막을 만들고 하나님의 법을 세우기 위해 필요한 물건들이었던 것입니다. 자신들을 위한 패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패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귀중품들을 구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의 재물과 능력과 삶과 생활이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쓰여질 것들입니다. 그런 생각과 의식을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는 복음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율법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지만 복음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복음으로 애굽 땅에서 나오게 되었고 우리도 복음으로 세상에서 구별된 자들이 되었습니다. 더욱 복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자 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잘 실천해서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뜻을 경험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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