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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마 2; 20-23 나사렛 사람으로 칭함을 이루게 하심_1
2025. 7. 13. 주. 주일오전.
찬양: [135장] 어저께나 오늘이나 [449장] 예수 따라가며
[524장] 갈길을 밝히 보이시니 [502장] 빛의 사자들이여
개요: 82연합,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
[마]2:20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마]2:21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니라
[마]2: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마]2: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일들에 대해서 그 의미를 궁금하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무슨 이유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를 고민하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되는 이유는 그 경험이 스스로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순하게 이해할 수 있는 인과관계로 해석되지 않을 때 우리는 그 이유를 찾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고민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삶의 여러 가지 사건과 경험과 상황들에 대해서 항상 그 대답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이해 안 되는 이런 일들은 그냥 넘어가기에는 아쉬운 많은 고민을 만들어 냅니다. 마치 소화가 안 되어서 속이 더부룩해지는 것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은 많은 괴로움을 만들어 냅니다. 그중 특히 안 좋은 것은 그것을 잘못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정확하지도 않은 이유 때문에 더 안좋은 마음 상태가 이루어지고 그로 인해서 몸의 문제가 생기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해되지 않는 일들에 대한 이유와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해하는 내용이 바르고 정확한 것도 중요합니다. 이해는 할 수 있었지만 그 내용이 잘못되었다면 좋은 마음을 갖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분명하고 정확한 이해를 했을 때에만 그 중요성과 가치를 이해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의 일들에 대한 분명하고 정확한 이해는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만이 삶의 일들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온전하게 설명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 이유를 발견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로 인해서 더할 나위 없는 소망과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보는 말씀에서는 예수님의 삶 속에 있었던 일들이 왜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는 설명이 나타납니다. 이것은 우리가 보기에는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거나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사건이었지만 하나님 안에서 그 의미를 알게 되었을 때 그 속에 담긴 커다란 중요성을 알 수 있게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가 그 이유를 잘 이해한다면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들에 대해서도 그 의미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마]2: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마태복음 2장에서 아기 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과 함께 애굽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천사가 꿈에 나타나서 헤롯왕이 죽었으니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고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헤롯왕이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애굽으로 피하게 하셨다가 헤롯왕이 죽고 난 다음에 다시 이스라엘로 들어오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살게 되었는데 이렇게 된 이유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는 말씀을 이루려 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로 하여금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과 함께 나사렛에서 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일이 그렇게 될 때의 구체적인 정황은 22절에 나옵니다.
“[마]2: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의 아버지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요셉과 마리아는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가 아버지 헤롯의 뒤를 이어 유대의 임금이 된 이야기를 듣고 유대로 가기를 무서워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다시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서 갈릴리 지방으로 가서 나사렛에 이르러 거기에 정착한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단순히 나사렛에 가서 살라는 천사의 인도함으로만 그곳에 가게 된 것이 아니라 유대지방으로 갈 수 없는 상황에 따라서 그 다음에 갈 곳을 생각했을 때 나사렛 지역으로 인도함을 받은 것이었는데 그것은 정확하게 예언에 따른 나사렛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이 된 것은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까! 나사렛이란 예수님의 출신지역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한 세심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예비하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나사렛에서 살게 된 이유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으로 칭하여지는 것은 왜 중요한 의미가 되었을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11장 1절이었습니다.
“[사]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기서 나오는 ‘가지’(네체르, נֵצֶר, branch)가 바로 나사렛이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예언에 따르는 메시야이자 결실을 맺는 가지가 되시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나사렛으로 불리는 이 지역은 갈릴리 북부 지방에 있는 가난한 동네였습니다. 예수님은 이곳에 자라나심으로 인해 나사렛 사람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그 의미는 고상하였지만 그 이미지는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강보에 싸여 누인 아기로 표징이 되셨던 것처럼 사역을 하실 때 항상 예수님을 설명하는 용어는 바로 나사렛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수도 예루살렘 사람이거나 태어났던 베들레헴 사람이거나 더 좋은 이미지의 지역명으로 설명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으로 칭하여지기를 원하셨고 그럴 때 예수님의 의미와 가치가 온전하게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연약한 가지를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이 드러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의 풍성함을 나타내시기 위해서 나사렛 사람이 되셨던 것처럼 우리의 삶도 그렇게 예수님을 따라갈 때 나사렛 사람이 되어져 갑니다. 그것은 구차하고 비천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화려하거나 호화스럽지는 않지만 진실하다고 정직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지일 뿐이었지만 열매를 맺는 진실한 가지인 것입니다.
음식 맛을 낼 때에도 단순히 양념만 치는 것과 진정한 맛을 만드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입은 만족시킬 수 있지만 몸은 만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맛을 만들 때 그것은 입과 몸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특별한 것이 됩니다. 그런 맛을 표현할 때 ‘진국이다’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런 깊고 진실한 의미를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이었다는 것은 단순히 선지자로 하신 말씀만 이룬 것이 아닙니다. 그 이후에도 예수님 자신의 말씀을 이루는 일에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릴 때 그때 십자가 위에 쓰여졌던 이름이 바로 나사렛 예수였습니다.
“[요]19:19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죄명으로 붙여진 그 이름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던 가장 영광스러운 이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때 사용된 이름이 바로 나사렛 예수였습니다.
“[행]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뿐만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회개하기 전에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실 때 예수님은 자신을 이렇게 알리셨습니다.
“[행]22: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자신을 나사렛 예수라고 하시는 것은 그 이름이 가장 영광스러운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유일하고 온전하며 진실한 구원의 이름이 바로 한 가지이신 예수님입니다. 이처럼 소박하며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진실하고 정직한 이름을 도대체 그 어떤 존재가 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나사렛 예수로 칭하여지는 것이고 그 예수님을 믿고 의지할 때 진정한 구원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이 나사렛 예수로 칭하여지는 것은 너무나 귀하고 영광스러운 뜻이 있었습니다.
요셉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아기와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의 나사렛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많은 일들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일을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순종하며 받아들이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다 이해하면 더 순종할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순종할 때 순종의 가치가 더 크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의심하고 부인하며 절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우리가 아직 모르고 있는 삶의 복잡한 일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며 살아갈 때 우리 인생은 주님을 진실한 마음으로 따르는 거룩한 삶의 축복으로 발전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