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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엡 1; 20-23 만물 위에서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_1
2025. 6. 15. 주. 주일오전.
찬양: [234장] 구주 예수 그리스도 [353장] 십자가 군병되어서 [208장] 내 주의 나라와 [210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
개요: 성령강림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엡]1: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엡]1: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엡]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셨을 때 사람들은 처음에 정치적인 변화가 일어나는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좌우편에 자신의 아들들을 앉게 해달라고 간구하기도 했고 언제 주님의 나라가 임하느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함을 알려주시고 하나님의 다스림이 나타난 것을 보여 주시면서 성령의 강림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오셔서 각 사람에게 임하시면 주의 복음이 전파되면서 새 일을 행하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진 다음에 나타난 것은 교회였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났고 성령강림이 이루어졌으며 복음전파가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는 사라지고 교회가 시작된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시대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통해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었지만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령강림도 바로 교회를 만드시고 세우시며 발전시키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나타냅니다. 그 원리가 우리의 삶 속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보십시오. 23절입니다.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각지에 세워진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 되었습니다. 조금 어려운 표현이지만 의미 상으로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세상의 모든 일의 의미와 가치를 나타내시는 그리스도께서 그 뜻을 나타내시는 방법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의 성전과 하나의 국가와 하나의 왕권이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내었지만 신약에서는 모든 지역에 세워지고 모든 인종으로 이루어진 많은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런 의미이니 우리는 그 교회에 속한 자로서 그리스도의 충만을 나타내게 됩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각 개인의 삶과 각 가정의 모습이 교회의 활동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이루고자 하는 의미와 가치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세상에도 그렇게 활동하는 기관들이 있습니다. 유니세프나 적십자사나 사랑의 열매 등이 있습니다. 그들이 참여자들의 후원을 받아서 이 세상에 특별한 구호와 도움과 봉사의 일들을 행합니다. 그래서 그런 활동을 통해서 각 기관의 가치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면 교회는 교회의 활동을 통해서 어떤 가치가 나타나게 될까요? 교회가 존재해서 행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예배와 찬양과 교제와 교육과 전도와 봉사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활동만으로는 어떤 가치가 나타난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활동은 다른 종교나 이단들도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독교 교회에서 행하는 모든 활동을 통해서 나타낼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란 어떻게 나타나게 될까요? 20절을 보십시오.
“[엡]1: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그 첫 번째 가치이자 첫 번째 충만함은 바로 구원함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셔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히셨습니다. 그 충만함이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났기 때문에 그를 믿는 우리가 그 충만함의 수혜자가 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최종적으로 얻게 되는 것이라서 살아 있을 때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혹 죽기 전의 모습을 통해서 감화로 나타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구원은 죽은 다음에 얻게 되는 영원한 충만함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사모하면서 교회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교회에서 필요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 구원받게 될 충만함을 마음 속에 새기는 것입니다. 이보다 좀더 앞선 가치가 있는데 그것은 21절에 나타납니다.
“[엡]1: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예수님의 이름은 구원받게 하심으로만 끝나지 않습니다.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영광이 그 이름으로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이 떠나가고 병고침을 받으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영혼의 구원을 얻기 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생활의 구원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 기도함으로 그 기도의 응답을 얻게 되는 것은 주님의 이름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분야의 통치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이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 기도하는 일의 결과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모든 결과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분야에서 예수님께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감사한 일이 있어서 몸이 건강해져서 문제가 해결되어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어서 예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감사를 드리면 드릴수록 주님께서 이루신 일들을 새롭게 알게 됩니다.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께 드리는 기도와 간구가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앞선 가치가 있습니다. 가장 실제적이고 가장 모든 일의 시작이 되는 가치와 충만함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22절입니다.
“[엡]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이 말의 의미는 만물이 주님의 뜻 아래에 복종한다는 것이고 그럴 때 예수님께서 만물 위의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다른 가치보다 예수님의 뜻이 가장 중요하게 되고 예수님이 모든 상황과 모든 순간에서 교회가 선택하게 되는 최고의 우선순위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면 세상논리보다 예수님의 뜻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고 인간의 판단보다 예수님의 뜻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예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리라고 생각하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예수님의 충만함이 풍성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과거 교회가 내렸던 많은 결정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신사참배에 저항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공산주의에 대항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교회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찾아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또한 교회는 교회 대로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신사에 절을 하고 예수님께 믿음을 포기했다면 교회의 본질도 사라질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걸 이기게 하시고 그걸 견디게 하신 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있었기 때문에 그 모든 시련을 견뎌서 오늘날 교회의 부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새로운 도전이 있습니다. 세속주의나 물질만능주의가 교회의 가치를 위협합니다. 그런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로 낮추려고 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될 때 그 교회에 속한 사람들도 그렇게 발전될 것입니다. 교회에서 올바르게 사는 모습을 배워서 그것을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머리를 삼는 교회의 성도가 됩니다. 그 모습을 요한계시록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계]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계]19: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 나타나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런 교회를 바랄 때 우리는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의 의미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을 다스리며 세상 논리에 압도되지 않으며 우리를 충만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의 구원의 방주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형성하는 놀라운 사람들이 됩니다.
18세기 청교도 신학자였던 조나단 에드워즈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훌륭한 청교도 목회자의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외할아버지도 목사님이었고 아버지도 목사님이었습니다. 본인도 예일대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17세때 성령을 체험하고 신앙의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목사안수를 받은 후 결혼을 했는데 가정에서는 자상한 아버지로 자녀들과 함께 기도하고 성경공부를 하면서 11명의 자녀들이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갖도록 도왔습니다. 그리고 노스햄턴 교회를 맡아서 사역하면서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따르는 영적 대각성 운동에 불을 지폈고 교회의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이후 24년간 사역했던 교회를 사임한 다음에는 인디언들을 대상으로 한 선교를 하였고 프린스턴대학 총장으로 사역하다가 소천했습니다. 그는 죽을 때까지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를 통해서 나타납니다. 그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는 성도들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의 몸이 될 때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는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각처에서 나타내게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교회와 성도가 됩시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진정한 머리를 삼는 그분의 몸으로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