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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왕상 18; 41-46 작은 구름을 기다리는 소망_1
2024. 11. 10. 주. 주일오전예배.
*개요: #56충만
[왕상]18:41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 소리가 있나이다
[왕상]18:42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왕상]18:43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왕상]18: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왕상]18: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왕상]18: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미래에 대한 전망을 하는데 그 전망을 가질 때 소망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대로 절망을 갖는다면 미래에 대한 전망은 항상 암울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암울한 생각과 마음은 결국은 미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보는 것 뿐입니다. 그것이 정확한 미래도 아닐 뿐만 아니라 잘못된 미래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사고방식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 면에서 소망은 믿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있으니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또한 소망이 있을 때 믿음도 의미가 있습니다. 알려진 것에 대한 확신이 믿음이고 앞으로 나타날 것에 대한 바램이 소망이니 이 두 가지는 사람의 마음을 밀고 당기면서 구체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이미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 앞으로 보여주실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도 소망을 갖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이면서 우리의 삶입니다. 그러한 믿음이 있고 소망이 있는 삶을 살아간다면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기억해야 하는 것은 충만한 믿음은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늘 작은 믿음, 작은 소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것이 커지는 것이지 처음부터 큰 것으로부터 시작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엘리야가 작은 구름을 발견한 것을 봅니다. 우리도 소망의 본질을 이런 작은 것에서부터 발견해야 합니다. 44절을 보십시오.
“[왕상]18: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엘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나라에 임한 기근에 대해서 기도하기 위해서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사환을 보내서 바다 쪽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그가 처음 올라가서 보았을 때 아무 것도 볼 수 없어서 엘리야 선지자에게 아무 것도 없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러자 선지자는 일곱 번까지 다시 가서 보라고 했습니다. 사환이 일곱 번 왔다 갔다 하면서 보았을 때 마지막 일곱 번째에 바다에서 일어나는 작은 구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엘리야 선지자에게 말했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소 엘리야 선지자는 사환에게 이르기를 아합왕에게 이제 비가 내릴 것이니 마차를 타고 내려가라고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정말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면서 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3년반이나 오지 않던 비가 마침내 내리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왕상]18:45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비가 오기 전까지는 전혀 비가 올 기세가 아니다가 비가 오려고 하니 갑자기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렸습니다. 그토록 기다렸던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 비로 인해서 혜택을 받는 사람은 아합왕이었습니다. 그는 기근의 고통과 괴로움으로 오랜 시간 어려움을 당했지만 큰 비가 내렸을 때 즐거운 마음으로 마차를 타고 자신의 궁전이 있는 이스르엘로 내려갔습니다. 그는 엘리야 선지자의 말을 따랐을 때 오랜 기간 후에 마침내 내리는 비를 즐거워할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소망이 이루어졌을 때 그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온전한 소망을 갖고 기다리는 시간에 동참한 것은 아니지만 이루어진 소망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기다림의 일에 참여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혜택입니다. 만약 그 일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그 혜택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겠지만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며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성취와 완성에 함께 혜택을 보는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사람은 그 소망을 붙들었던 엘리야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비가 왔을 때 큰 능력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46절을 보십시오.
“[왕상]18:46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아합은 마차를 타고 갔지만 엘리야는 여호와의 능력을 힘입어서 허리를 동이고 달려갔습니다. 아합은 소망의 성취에 혜택을 입는 자였고 엘리야는 그 소망의 성취를 이루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능력의 충만을 누렸고 마차를 타지 않고 직접 달려서 갈 수 있었습니다.
소망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 소망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소망에 함께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내가 갖는 소망의 성취를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 소망은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일곱 번이라도 다시 가서 바다를 쳐다보는 것과 같은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라도 기다리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하늘을 뒤덮는 큰 비의 응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엘리야의 이러한 모습은 그 전의 삶의 모습에서 잘 나타납니다. 그가 비의 응답을 받은 것은 갑자기 기도했기 때문에 순식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3년반이나 비가 오지 않고 온 나라가 기근으로 인해 고통했는데 그동안 엘리야는 무엇을 했습니까?
그는 큰 비의 소식을 듣기 전에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신의 이름을 불러서 불의 응답을 기다리되 제단에 누가 먼저 불을 피우는가로 누구의 신이 진짜인지를 확인해 보는 시합을 했습니다. 1대 850이 경쟁을 한 것입니다. 그럴 때 엘리야의 모습은 믿음과 소망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숫자로는 비교가 안 되었지만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하고 의지할 때 그는 자신감이 충만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실패하였고 엘리야는 한번에 성공하여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신것을 모두에게 나타내 보였습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믿음과 소망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하나님께 대한 의지함과 간구함이 있었기 때문에 뒤를 이은 큰 비의 소식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소망은 이와 같이 엘리야 선지자가 일곱 번이라도 작은 구름을 살펴보라고 하면서 기다렸던 것과 같은 간절한 사모함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하실 일에 대해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소망이 없었다면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처럼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겼을 것입니다. 우상숭배에 빠진 이유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불신과 절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나아가려고 할 때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으로 인해서 소망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망의 성취는 갈멜산의 제단에서 분명히 이루어지면서 나타났고 바다에서 작은 구름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러니 엘리야는 그 다음에 이어서도 다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나타나는 소망의 수혜자로 다른 사람의 소망의 성취에 함께 기뻐할 수 있지만 더 나아가서 우리 자신이 소망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자신이 기뻐하며 다른 사람도 함께 기뻐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작은 구름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 작은 구름을 기다릴 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붙들 수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그러한 믿음이 있었기에 갈멜산에서 바울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을 펼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당면하는 모든 불신과 절망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이루실 일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엘리야도 어느 날 갑자기 갈멜산에서 제단 불 피우기의 대결을 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 전부터 엘리야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3년 반의 기근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 살면서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음식을 먹으며 살았고 그 다음에는 사르밧으로 가서 과부를 만나 그와 그의 자녀에 풍성한 먹을 것을 얻게 하며 살았고 그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에 그를 위해서 기도함으로 다시 살려내면서 살았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삶이 있었기에 갈멜산에서의 대결도 감당할 수 있었고 바다에서 보이는 작은 구름을 위해서 기도할 때 그 기도의 성취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소망이 진정한 소망입니다. 그 모호함과 혼란스러움 속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엘리야 선지자처럼 바랄 수 없을 때 바라고 보지 못할 때 보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해서 자신이 믿음을 가지고 소망하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영광받으심이 넘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