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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동행] 40마24; 23-28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는 거짓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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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4; 23-28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는 거짓 그리스도_1

  

 

  

2020. 3. 22. . 주일오전.

  

 

  

*개요:  마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마음, 55동행, 5선악, 3도덕

  

[]24: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24: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4:26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24:2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

  

 

  

전쟁 속에서 피난을 가는 장면을 담은 영화들이 있습니다. 그런 장면들 속에서 안타까운 모습이 있는데 그것은 정신없이 피난을 가다가 애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장면을 보면 애간장이 탑니다. 왜 그럴까요? 정말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피난을 가는 것은 생명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생명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생명을 잃어버렸으니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성도가 말세에 그리스도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그 정도로 심각한 일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마라토너가 열심히 마라톤 코스를 완주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데 결승점에 다 와서 엉뚱한 코스로 들어서 버리면 실격을 당하게 됩니다. 그동안의 오랜 수고가 물거품이 되어 버립니다. 이와 같이 만약 우리가 말세에 신앙적으로 실족하게 된다면 그것은 결승점을 앞두고 실격하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입니다.

  

말세는 그냥 보내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만 흘러가도록 기다리면 말세가 끝이 나는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 시국에 지금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사람들은 결코 마음 편히 수동적으로 피동적으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안전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 노력하고 고심분투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이 말세에 단순히 시간만 가면 되리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이 상황에 대해서 대응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마태복음 24장에서는 필요한 모든 것을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특별히 오늘 말씀에서는 말세 속에서 미혹에 빠지지 않고 예수님을 더욱 의지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이단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정통을 원래대로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욱 본질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미혹 당하는 것이 무엇이고 미혹 당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더욱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어리석음을 피할 수 있는 것처럼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해야 할 일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을 오늘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은 23절부터 입니다.

  

“[]24: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예수님은 그때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여기에 있다 혹은 저기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고 하는 속임수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말세에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도들이 실행될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런 어리석은 미혹에 넘어가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에게 놀아나지 않아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피난길에 애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아이의 손을 굳게 붙드는 것이고 또한 결승점에 무사히 골인할 수 있도록 경기장의 경로를 머리 속에 분명히 기억해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빼앗아가려는 어리석은 자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게 되고 결승점에 순순히 들어가지 못하도록 속이는 자들의 악한 행위에 속지 않게 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꼭 이런 미혹을 이겨내야만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예 미혹이 생기지 말게 하시지 왜 이런 미혹을 감당하게 하시는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럴 때에 본질을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질을 잘 알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본질과 허구를 구별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본질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본질과 허구를 구별하는 것 자체가 어려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도들이 이러한 미혹을 이겨내고 참된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를 수 있도록 준비되기를 원하십니다.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해 내지 못한다면 참된 그리스도와 선지자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요리사들이 요리를 할 때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재료입니다. 재료가 잘못되면 그 사람은 요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작정 아무 생각없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도록 되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을 잘 구별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이 아닌 자를 구별해 내야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입니다. 아빠와 아저씨를 구별해 내야 하고 엄마와 아주머니를 구별해 내야 참된 자녀인 것처럼 아빠, 엄마나 아저씨, 아주머니나 똑같이 생각한다면 이상한 사람 따라가기 십상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이 시대에 예수님의 말씀의 본질을 기억하고 여기에 그리스도가 있다 저기에 그리스도가 있다 해도 따라가지 말고 거짓 그리스도, 거짓 선지자가 표적과 기사를 보이면서 미혹하려고 할 때 그 미혹에 넘어가지 않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신앙의 목적을 분명히 깨닫는 것입니다. 신앙은 이미 우리에게 오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유익을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유익을 채우려고 하면 어떤 식으로든지 미혹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따라서 살려고 한다면 어떤 식으로든지 미혹될 수가 없습니다. 본질은 이미 주신 은혜를 따라서 살려고 하는지 아니면 더 많은 욕심을 위해서 사는지 입니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는 것은 여기서 혹은 저기서 그리스도를 봐야 더 유익이 많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표적과 기사를 보이는 이유는 그래야 믿는 성도들을 미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성도는 그런 표적과 기사를 쫓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있는 곳에서 정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럴 때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들이 되고 자기 상을 잃지 않습니다.

  

요즘 예배가 줄어들거나 중단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다양한 경로로 새로운 말씀을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고 알 수도 없었던 새롭고 다양한 메세지들을 접하게 됩니다. 그런 것들 중에는 직통계시와 사도적 권위를 강조하면서 메세지를 전파하는 신사도운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미 우리 교단에서는 교류금지로 이단경계를 받는 집단입니다. 이런 곳에 마음이 쏠리게 되면 기존의 말씀과 신앙의 방향성은 매우 건조하고 지루한 것이 됩니다. 결국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그쪽으로 떠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우리 자신에게 생기지 않게 주의해야 합니다. 그것은 미혹하는 자들에게 미혹 당하는 것이 되어 버립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되어서 미혹을 당하게 되면 결국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지옥을 가는 것일까요? 구원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일까요? 미혹을 받아서 올바른 신앙이 아닌 잘못된 신앙으로 나아가게 되면 어떤 결과가 찾아오게 될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 계속해서 이어지는 말씀을 살펴봅니다.

  

“[]24: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4:26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5절 말씀이 중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내용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지시하신 것이 있고 그것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말씀을 어길 때의 결과와 그 결과를 통한 우리 자신의 피해상황이 중요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본질을 놓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각 사람의 결과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의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건축물을 지을 때 기둥 콘크리트에 들어가는 철근은 얼마나 빼돌릴 수 있을까요? 그것을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생각한다면 조금씩 빼돌리다가 결국에는 건물이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애초부터 설계도면상 있어야 하는 철근은 절대로 빼돌려서는 안된다고 한다면 결코 건축물은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핵심은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가이지 예수님의 말씀을 안 지킨다고 해서 얼마나 피해가 있느냐가 아닙니다. 우리가 말세를 이겨나가는 힘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더욱 따라가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고 예수님을 더욱 의지하는데 있습니다. 그것이 말세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본질입니다그 본질을 우리는 더욱 붙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고 해도 나가지 말고 골방에 있다 해도 믿지 말아야 합니다. 애초에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고 말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 하신 적이 애초에 한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나아 오셨습니다. 내가 힘들 때 내가 외로울 때 내가 괴로울 때 내가 주님을 찾을 때 주님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또한 정말 주님께서 나를 움직여서 여기로 저기로 가게 하실 때에도 그것을 사람들이 욕심을 자극하고 미혹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하면서 움직이게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희생하고 헌신하며 순종하고 충성하게 하시면서 이리로 가서 주님의 일을 하고 저리로 가서 주님의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을 주님은 친히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셨습니다.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따라서 살게 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세상 사람들의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의 뜻을 잘 따르며 살 수 있습니다이 각박하고 혼란스러우며 두려운 세상 속에서도 희생하며 헌신하고 봉사하며 충성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서 어려움을 감수하며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의 행렬을 보십시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광경 속에서 우리는 가족들을 위해서 애쓰는 절박한 노력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노력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엉뚱한 목적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신실한 목표에 사로잡힐 때에 예수님의 말씀을 귀중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27, 28절을 보십시오.

  

“[]24: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24:2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

  

인자이신 예수님의 임함은 번개가 번쩍임같이 지엽적이지 않고 세계적이며 우주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임함을 보지 않을 수 없고 만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디에서든지 그 임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인자를 맞이하는 것인지 아니면 인자를 맞서는 것인지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다를 것입니다. 인자를 맞이한다면 예수님을 통해 상급을 얻겠지만 인자를 맞선다면 예수님에 의해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에게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그 말씀을 부인하며 살았는가에 대한 벌을 받는 것입니다. 욕심을 따르는 자들은 결국 그들이 뿌린 대로 결과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인자가 이렇게 임할 때 인자를 따르는 자들은 인자를 만나게 됩니다여기서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들이 모인다는 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서 1.축복으로 해석할지 2.심판으로 해석할지 3.재림의 교훈으로 생각할지로 신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저는 이것을 축복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7절에 이어지는 말로서 인자의 임함이 있을 때 그 인자를 찾는 자들은 인자에게로 모인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들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귀하게 여기는 자들이 그 죽으심으로 나아옵니다. 말세를 살아나가는 우리는 예수님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주도 비상상황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다 끝이 날 때까지 예수님을 더욱 의지하여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의 미혹을 이겨내고 예수님으로 인해서 온전한 신앙으로 거듭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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