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동행] 37학 2; 5-9 지금 성전의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큰 이유Loading the player... .
37학 2; 5-9 지금 성전의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큰 이유_1
2023. 2. 26. 주. 주일오전예배.
*개요: 학개서에서 사람을 세움, 55동행
[학]2: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학]2: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학]2: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2: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2: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월이 끝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2월은 더욱 짧았던 것 같습니다. 시간의 흐름은 늘 기다릴 땐 길지만 끝나고 나면 짧습니다. 다가올 시간은 길고 지나간 시간은 짧게 느껴집니다. 그것은 인간이 아무리 오랜 시간을 살아도 그럴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에 제한이 있는 인간의 존재는 이미 일어난 일은 언제든지 재연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에 대한 생각 속에 시간의 제한이 없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생각 속에서 무한한 시간의 제한이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에 초월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이러한 존재의 제한 속에서 무궁무진한 변화의 가능성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다음 시간의 상황 속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시고 준비해 놓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라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변화의 계획에 동행하며 연합하여 새로운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예전에 어떤 분이 강아지 한 마리를 아는 사람으로부터 데리고 왔는데 얘를 키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 보기에는 작아 보였지만 견종자체가 큰 종이면 나중에 엄청 클 것이기 때문에 큰 개를 키우는 것은 부담스러워서 키울지 말지를 고민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도 발전할지 아니면 그대로 일지 아니면 오히려 퇴보할지 미래의 일들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발전의 일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갈 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변화의 일은 하나님의 계획에 순종하며 동행할 때 항상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장하게 하심과 발전하게 하심은 변화와 순종 속에서 이루어진다. 학개서에서 우리가 보는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전 영광보다 나중 영광이 더욱 크게 해 놓으셨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학]2: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비록 성전의 이전 영광이 겉으로는 나중 영광보다 더 커 보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게 하십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 성전에 평강을 주시기로 계획하셨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성전은 솔로몬 성전이었는데 그 성전은 우상숭배로 인해서 나라가 멸망하면서 파괴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70년 포로생활 후에 고레서의 명으로 스룹바벨의 지도 하에 만들어진 성전이 두 번째 성전이었습니다. 그 성전 건축은 가나안 민족들의 방해로 중간에 중단되었다가 학개서를 통해서 다시 재개 되어서 마침내 완공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두 번째 성전의 영광이 이전 첫 번째 성전의 영광보다 더 크리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의미가 더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두 번째 성전에 예수님께서 오셨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성전에는 언약궤도 없고 화려함도 없었지만 그것을 대신하고 대치하는 새로운 의미가 있으면서 완성도와 의미는 더욱 커졌습니다. 그러니 보이는 것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더욱 집중할 때에 본질적인 의미가 확대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전 성전의 영광보다 현재 성전의 영광이 더 크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안주하려고 하지 말고 동행하려고 해야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러한 하나님의 발전의 개념을 이해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컨베이어 벨트처럼 다음 공정에서의 발전을 행하도록 하실 때에 그 인도하심을 따라가면 더욱 완성되고 성숙되며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인도하심을 따라가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발전을 이룰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초대교회 시절에는 성경보급이 원활하지 않고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아서 그리스 정교회 경우에는 벽화(이꼰)가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이 보급된 다음에도 벽화에만 집착해서 성경을 연구한다던가 적용한다던가 이렇게 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삶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닌 교회에서 종교생활을 하는 것으로만 제한되었습니다. 그러니 국가와 민족의 종교로 정체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것은 더 많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학개에게 주신 말씀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단순히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더 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더 많이 알게 되기 때문에 나중 영광이 더 커지는 것입니다. “[학]2:5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영이 계속하여 너희 가운데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언약한 말과 하나님의 영이 계속 그들 가운데 머물러 있도록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씀과 성령을 붙들고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일들에 따라가야 합니다.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움직이게 하십니다. 그 인도하심과 계획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의 많은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 안 하다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발전입니다. 마리아와 요한도 예수님의 수태와 출생을 받아들여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다음에 제자들이 멍하니 하늘만 바라볼 때 천사는 하늘만 쳐다 보지 말고 다시 오심을 준비하라고 했고 제자들은 그 말 대로 순종할 때 초대교회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발전의 계기가 되는 것을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두 번째 성전은 하나님의 예비하심 때문에 더욱 영광스러웠음을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따라가는 일들 속에서 발전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학]2:6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학]2:7 또한 모든 나라를 진동시킬 것이며 모든 나라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이 성전에 영광이 충만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2:8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다음 단계에서 준비하신 것들이 있습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의 진동함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모든 나라를 진동시키시며 보배가 이를 것이고 성전에 영광을 충만하게 하려고 하십니다. 주님께는 모든 것이 다 충만합니다. 은도 금도 전부 주님의 것입니다. 무엇이 부족해서 못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을 믿고 따라 나아가야 합니다. 바울이 전도여행지 중에 에베소가 있는데 성지순례를 하면서 이곳을 가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곳이 아주 의미 있는 곳이었습니다. “[행]19: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에베소가 원래 바다가 가까웠던 항구도시였다고 합니다. 이후에 바닷물이 뒤로 물러나면서 기후상황이 바뀌면서 도시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규모가 큰 난전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사도 바울이 그곳에서 복음을 증거했을 때 오고 가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내용을 듣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면서 커다란 믿음의 부흥이 일어났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복음의 발전의 기회와 과정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따라가기만 하면 그 기회를 얻을 수 있게 하십니다. 항상 문제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따라가느냐가 문제입니다. 그 인도하심을 따라갈 때에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성전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발전하는 성도가 되자. 두 번째 성전이 영광스러운 것은 그 성전에 예수님이 오셨기 때문이라고 앞서 설명드렸습니다. 예수님은 그 성전에서 결례를 행하시고 소년시기에 오셔서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셨으며 호산나 찬양과 함께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성전되신 자신의 육체를 의미하시면서 ‘너희는 이 성전을 헐라 삼일 만에 내가 일으키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성전은 온전한 성전이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 성전은 예수님께 나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세 번째 성전을 꿈꾸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슬람 모스크가 건립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대전을 생각하지 않는 한 실현은 어려워 보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전의 영광은 세 번째 성전을 지어야 생기는 것이 아니라 참된 성전이신 예수님을 붙들 때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며 성전의 영광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발전하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성전에 있으면서 우리의 삶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발전하고 있기에 또 이 성전이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 성전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우리의 삶이 발전하고 삶이 발전하면서 성전을 섬기는 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잘 기억하고 3천년도 더 넘은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어짐을 생각하며 우리가 성전을 섬기게 하시고 또한 우리를 성전으로 삼으시는 하나님을 더욱 따르기로 결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4극본적 해석 1. 하나님의 성장하게 하심과 발전하게 하심은 변화 속에서 이루어진다. 2.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안주하려고 하지 말고 동행하려고 해야 한다. 3. 두 번째 성전은 하나님의 예비하심 때문에 더욱 영광스러웠음을 이해해야 한다. 4. 온전한 성전 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발전하는 성도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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