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동행] 48갈 3; 23-29 믿음으로 되는 하나님의 자녀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pdf]
48갈 3; 23-29 믿음으로 되는 하나님의 자녀_1
2018. 2. 18. 주. 주일오전.
*개요: 복음의 중요성, 55동행, 1적용, 6서신서 [갈]3: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갈]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갈]3: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갈]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갈]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3: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혈육을 찾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항상 중요한 주제입니다. 진짜 부모가 누구냐 혹은 진짜 자녀가 누구냐 하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나 혹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부모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자녀에 대해서도 동일합니다. 자신의 진짜 혈육이 누구냐 혹은 다른 사람의 진짜 혈육이 누구냐 라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한번 이러한 주제가 제기되면 많은 관심을 기울입니다. 인기 있는 소설이나 드라마나 혹은 영화에서 혈육을 찾는 주제는 자주 등장하는 관심사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진짜 부모나 진짜 자녀를 찾고자 하는 우리의 본능적인 노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서 진짜 형제를 찾는 노력은 별로 없습니다. 진짜 친구를 찾는 노력도 시들합니다. 오직 부모와 자녀에 대해서만 그렇습니다. 또한 누군가 자신과 관계없는 다른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진짜 부모를 찾고자 하고 진짜 자녀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 있다면 그것에 공감하고 응원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아마 그 이유는 자녀가 헤어진 부모를 만나고 부모가 헤어진 자녀를 만날 때에 가장 기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반대로 자녀가 진짜 부모를 잃고 혼자 살아가거나 부모가 진짜 자녀를 잃고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슬프고 비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모가 자녀를 만나기를 자녀가 부모를 만나기를 바라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고자 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참된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가 참된 자녀가 되고자 하는 이유는 그럴 때 우리는 우리의 존재의 의미를 찾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존재의 의미를 찾을 때 가장 충만하고 가장 가치있고 보람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탕자는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에 가장 의미있고 보람되며 가치있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가 아버지를 떠나 먼 나라로 갔을 때에는 가장 무의미하며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인생 속에서 우리의 영의 아버지를 깨닫고 그 자녀임을 알 때에 비로소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부모를 만나고 진정한 자녀를 만나는 것은 단순히 만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부모이자 진짜 자녀임을 느껴야 합니다. 생물학적인 면에서 자녀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자녀이어야만 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기를 원하는 목표를 갖는 우리들이 해야 하는 하나의 과정이 있는데 그것은 율법을 통과해서 복음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복음 만을 이해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반드시 율법을 통과해서 복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23,24절을 보십시오. "[갈]3: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갈]3: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오기 전에 먼저 율법 아래에 매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습니다. 그것은 율법에서 복음으로 나아가기 때문이고 그럴 때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서 비로소 율법을 통해 그리스도의 가치와 의미를 알게 되는 성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왜 대학교는 고등학교를 마쳐야 들어가고 고등학교는 중학교를 마쳐야 들어가며 왜 중학교는 초등학교를 마쳐야 들어갈까요? 검정고시를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초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가 있고 중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가 있으며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가 있습니다. 각각은 그 아래 학력에 대한 졸업학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시험을 보게 하는 이유는 전체적으로 이 모든 것이 연속성 상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간부터 시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믿음도 율법을 통과하면서 믿음으로 발전되면서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율법의 행위에 얽매여서 율법에만 머물러 있었지만 복음으로 인도되면서 비로소 의로운 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의 행위에 머물러 있지 말고 복음의 믿음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됨을 얻게 되고 그 속에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은 율법의 행위에 얽매이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중요합니다. 25,26절을 보십시오. "[갈]3: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갈]3: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믿음이 온 후로는 율법의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않습니다. 전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움직이는 힘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복음의 믿음입니다. 그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됨을 누리게 됩니다. 자녀를 낳으면 그 때부터 자녀됨이 시작되지만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출생신고를 하고 자녀를 호적에 올리는 일입니다. 또한 그 자녀를 잘 키우기 위해서 해야 하는 예방접종단계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번거롭고 힘들기도 하지만 그렇게 잘 준비해 놓으면 비로소 자녀가 성장하면서 부모의 온전한 자녀로서 나타나게 됩니다. 그것은 호적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예방접종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녀가 부모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자녀는 부모를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는 것도 율법에서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믿음이 있다고 해서 율법적인 요소가 다 무시되는 것이 아닙니다. 등록과정을 거처야 하고 학습세례도 받아야 하고 신앙교육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지 율법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자가 됩니다. 누가복음에서 탕자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 둘째 아들을 위해서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기며 가락지를 끼워주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비로소 집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 다음에 탕자는 집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거하면서 아버지의 자녀로서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도 동일한 과정을 거칩니다. 우리는 단순히 단독적으로 하나님과 개별적인 관계를 맺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따로 살고 따로 먹고 따로 마시며 따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아닙니다.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그 믿음 속에서 하나님과 연합하며 하나님의 자녀들과 연합합니다. "[갈]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그냥 형식적으로 세례를 받은 자는 아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지 않아도 될 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해서 세례를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로 옷입은 것과 같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로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나가 됩니다. 그 중에는 유대인도 있고 헬라인도 있고 종도 있고 자유자도 있고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각양각색의 다양한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람들이 모두 그리스도와 믿음의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그 사람들의 형제가 되시고 하나님은 그 사람들의 아버지가 되시며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신천지 교인들이 과천에서 엄청난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흰 상의에 검은 바지를 입고 수많은 사람들이 과천지역에 모여서 그곳에서 집회를 갖고 주변 까페에 퍼져서 일대일로 성경공부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사랑의 모임은 아니었습니다. 오직 한 명이라도 더 희생시켜 자신들의 욕심을 이루려는 악한 자들의 모임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의 폐쇄성과 비이성적인 삶과 더불어 그 모든 노력과 활동 속에서 결국 그 핵심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전도를 하고 집회를 가지면서 그들의 중심 속에 무엇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중심에는 교주가 있습니다. 그 교주는 사람들의 욕심을 반영합니다. 그리고 그 교주가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모임이 이단이 되고 사탄적이며 적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 반대에 있는 교회의 모임을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의 성도들이 모여있는 그 모임 속의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일 때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교제하고 활동할 때 그 중심에 있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의미있고 가치있게 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행합니다. 그럴 때 이 모든 것이 의미있는 이유는 우리의 활동이나 형식이 특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 은혜를 나타내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의 모임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서로 교제를 나눕니다. 또한 교회생활을 합니다.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을 행합니다. 많은 일을 하지는 못해도 주어진 일을 하려고 하면서 우리의 삶은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이 바로 우리가 자녀됨을 깨닫게 하는 시간입니다. 이번 명절에도 많은 사람들이 가족끼리 친척끼리 함께 모입니다. 사업적 관계는 잠시 내려놓고 학교나 사회적인 관계도 잠시 중단되고 오직 가족의 시간이 중시됩니다. 그래서 부모와 자녀가 자녀와 부모가 하나되고 형제와 자매와 친지와 친척이 교제를 나누는 시간이 이루어집니다. 우리에게 가족관계가 있고 그 속에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러한 사랑이 없다면 명절은 자기 혼자 있는 시간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해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제물로 주셨고 그 희생으로 인해서 우리는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 죄사하심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 믿음으로 인해서 우리는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얻는 자가 되었고 그 은혜로 인해서 그분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자녀됨으로 인해 우리는 주일마다 교회에 나오는 자가 되었고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에 연합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 하나님의 일에 연합하면서 하나님은 그 일에 유업을 얻게 하십니다. 단순히 참여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갈]3: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하나님의 일과 그 나라의 일을 사랑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가족기업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는 이일에 우리가 다 동참해서 그 기업에 일익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업에는 이런 저런 할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을 더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영혼구원이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루기 위해서 이 가족기업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나 연합해서 자신의 재능과 달란트를 가지고 이 기업을 위해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또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율법으로부터 복음에 이어지는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루는 대상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우리들이 약속대로 유업을 잇는 자가 됩니다. 그 유업이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도 계속 이어집니다. 이 생에서 뿐만 아니라 저 생에서도 계속 이어집니다. 더 놀랍고 더 풍성한 의미로 주님의 나라가 영원토록 지속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기업의 일에 바로 우리가 참여하면서 그 유업을 누리게 됩니다.
이 귀한 일이 결코 율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겉모습이나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마음으로 이루어집니다. 복음의 내용을 온전히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로서 이 일을 이루어 냅니다. 갈리디아 교회는 이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자꾸 행위로 나아갔고 믿음의 중요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깨닫고 믿음으로 더욱 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욱 그 유업에 부요하고 충성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있는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믿음으로 인해 우리는 더욱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녀가 될 것입니다. 외면적 신앙이 아닌 내면적 신앙으로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그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 애쓰는 자가 될 것입니다. 복음의 중요성과 가치를 기억하면서 믿음으로 주의 일에 힘쓰는 더욱 귀한 하나님의 자녀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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