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능력] 24렘 1; 8-12 살구나무 가지를 보는 이유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24렘 1; 8-12 살구나무 가지를 보는 이유_1
2022. 1. 9. 주. 주일오전.
*개요: 예레미야서에서의 신앙의 목표, 통찰해석, 능력, 잠재력, 통찰력, 신앙성장
[렘]1: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렘]1: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렘]1:10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렘]1: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렘]1: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많은 성도들은 자신의 신앙의 목표를 의식하는 경우도 있지만 잘 모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앙의 목표가 무엇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 목표를 어떻게 찾고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신앙의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신앙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 문제를 어떻게 깨달아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신앙의 문제와 목표를 이해하지 못하면 신앙의 발전도 있을 수 없습니다. 발전과 성장의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성경 속에 있습니다. 성경 속에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고 그 메시지를 이해할 때 비로소 문제를 자각할 수 있고 목표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현재 문제와 목표에 대해서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바로 그런 의미와 목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나의 문제를 알게 하시고 나의 목표를 깨닫게 하시는 내용이 바로 성경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그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전자제품을 샀을 때 매뉴얼이 함께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 매뉴얼을 잘 살펴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가끔씩 진짜 문제가 있고 정말 스스로 해결이 어려울 때 매뉴얼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그 내용 속에서 해답을 찾을 때가 있습니다. 매뉴얼의 중요성을 그럴 때에만 깨닫습니다. 그런데 어떤 제품이 아니라 어떤 소프트웨어나 프로그램을 구입하게 되면 매뉴얼을 숙지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 됩니다. 왜냐하면 매뉴얼을 읽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 기능과 사용법을 혼자서 알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함께 동봉되는 매뉴얼이 아니라 따로 참고매뉴얼을 구입해야 하기도 합니다. 더 두껍고 더 자세하며 더 요긴한 매뉴얼을 통해서 그 프로그램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면 비싼 값을 주고 프로그램을 샀다 하더라도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조금은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전체 기능의 아주 작은 부분일 뿐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신앙의 매뉴얼이 되는 성경에 근거하지 않고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성경을 통해 자신의 문제가 무엇이고 목표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할 때 신앙생활은 아주 작은 부분만 이루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믿지 않는 것보다는 낫고 전혀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방향이 어디로 가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위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실은 하나님을 해하는 것인지는 모호할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자신의 올바른 신앙의 문제와 목표를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 속에서 다른 사람의 문제와 목표를 보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와 목표를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하나의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 “[렘]1: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보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내용을 잘 이해할 때 비로소 보는 것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 장면을 보여주시면서 그가 깨닫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보여주시면서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무엇을 보았는지 모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성경을 볼 때 비로소 성경의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내용에 대해서 하나님의 해석을 그 다음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에게 이 장면을 보게 하시는 이유는 바로 그것을 해석해 주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보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그 전에 무슨 맥락으로 말씀을 주시고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왜 해석해 주려고 하시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앞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이 아이라고 말하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렘]1: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렘]1: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예레미야는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서 그 자신도 제사장이었습니다. 주어진 제사만 진행하는 임무를 맡은 그에게 선지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두렵고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서 여러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왕들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제사장으로서 거친 왕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두렵고 떨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그에게 하나님의 권능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구원하신다고 하셨으며 손을 내밀어 그 입에 대시며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그 권능에 대해서 알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시는 경험도 이와 동일합니다. 그건 예레미야에게만 임했던 특별한 일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반대로 현대에 일어나는 일이 성경의 시대에는 없었던 일도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언제나 특별한 것이기 때문에 그 때에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신앙적인 체험의 의미입니다. 그 의미를 잘 기억할 때 신앙적인 체험이 가치가 있습니다. 예레미야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그 말을 입에 두신 것은 전부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과 관련이 되어 있었습니다. “[렘]1:10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나라와 왕국들에 예언하게 하셨고 그 예언의 성취를 통해서 그들을 심판하시고 돌이키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니 그 뜻이 자신에게 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고자 하면 자신이 받은 모든 말씀과 역사와 능력이 전부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씀으로 생각한다든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생각해 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거나 오히려 더 큰 실망만 얻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오직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의 신실하고 신앙적인 목적을 생각하면서 그 모든 깨달음과 이해는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신앙의 성장 속에서 변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신앙생활을 현상유지로만 사용합니다. 그래서 문제도 없고 목표도 없습니다. 변화는 순수할 때에만 있는 일이고 그 다음에 성장할 때에는 변화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가기 위해서나 궁금함을 해결하기 위해서나 혹은 당장의 관심사만 채우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신앙의 문제를 찾을 필요도 없고 신앙의 목표를 생각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미 아무 문제도 없고 목표도 없는 자기 기준으로 완성된 그 자체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 성도들을 통해서 하고자 하시는 일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그 일을 위해서라면 그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문제를 찾을 수 있고 그 일을 할 수 있기 위한 목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신앙의 문제와 목표를 찾았다는 것은 비로소 신앙생활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는 뜻입니다. 그 문제와 목표를 해결한다는 것과 별개로 인식한다는 것 그 자체 만으로 신앙의 의미가 전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보면 안 됩니다. 자기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보느냐 하시는 질문을 생각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대답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 말씀을 눈뜨고 봐도 그 내용이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나에게 와 닿지 않습니다. 내게 주시는 말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했다면 그 말씀을 읽었다는 것 만으로 말씀을 받았다는 것으로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이해되든 되지 않든 말입니다. 그렇게 자신이 받을 때에 그 다음에 이해되는 내용도 조금씩 생겨나고 그러면서 하나님의 일을 위한 자신의 문제와 목표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가 보는 내용이 살구나무 가지라고 대답했을 때 그에게 칭찬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렘]1: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네가 잘 보았도다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 하시니라” 이 말은 살구나무를 보여주시고 그 살구나무를 잘 보았기 때문에 칭찬하신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보느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그 말씀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보고 그에 맞게 대답했기 때문에 칭찬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주시면서 무엇을 보느냐고 물어보십니다. 그 말씀의 내용을 보면서 그 내용을 대답할 때 우리는 그 다음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니거나 다른 세상적인 매체나 자료나 근거들을 보고 있다면 여전히 하나님의 것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을 보려고 한다면 그곳에서 진실된 하나님의 가르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열매를 맺을 살구나무 가지를 보면서 하나님께서는 그 말을 지키시고 그대로 이루시려고 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바로 이러한 말씀의 의미를 믿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고 그 다음에 그것을 믿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신앙생활은 자기가 중심이 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중심이 되는 발전하는 신앙의 모습이 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예레미야가 올바르게 보았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중심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올바르게 보아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놀라운 일에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살구나무 가지를 보았는데 거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2. 하나님께서는 아이라고 말하면서 자신 없어 하는 그에게 담대함과 용기를 말씀해 주셨다. 3.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가 하나님의 말을 그 입에 두고자 했을 때 하나님이 보이시는 것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4.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고 그러한 성도가 되어야 한다. 11주제설교 관련글[더보기]16설교소감 관련글[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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