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동행] 58히 12; 1-5 부활의 주님을 생각하면서 따라간다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58히 12; 1-5 부활의 주님을 생각하면서 따라간다_1
2022. 4. 17. 주. 주일오전. 부활절.
*개요: 부활감사주일, 부활의 적용, 55동행-64인내, 4극본적해석
[히]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히]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히]12: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우리는 오늘 2022년 부활절을 맞이했습니다. 교회 절기상 부활절은 춘분(春分) 이후 만월(滿月) 다음의 주일이 부활절이 됩니다. 춘분은 3월 21일이고 만월은 4월 15일이기 때문에 그 다음 주일인 4월 17일이 부활절이 되었습니다. 부활절의 핵심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2천년 전에 있었던 이 사건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는 자들이 구원을 받았으며 그 이전까지 진행되었던 구약의 제사가 폐지되었고 그 이후부터는 예배를 드림으로 신약의 신앙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누구든지 이러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이며 우리는 이 복음에 따라서 구원을 받았고 구원 받은 자로서 이 복음을 믿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해마다 부활절을 보내면서 그 부활의 핵심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누가 물으면 언제든지 대답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절기를 맞이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을 더욱 기뻐하기는 하지만 절기가 아니라도 그 부활을 늘 생각하며 기억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면 절기를 맞이할 때 의미가 더욱 특별할 수 있습니다. 유명 가수의 콘서트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의 팬들이 평소에 그 가수의 노래를 늘 즐겨 부르고 좋아할 때 콘서트에도 찾아갈 수 있습니다. 그 콘서트에서 동일한 노래가 나오면 더욱 즐겁고 기뻐합니다. 그 다음에 콘서트가 끝난 후에도 다시 그 노래를 즐겨 부르고 좋아합니다.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에게 늘 마음이 있기 때문에 콘서트 전이나 이후에도 여전히 그 가수를 좋아하고 응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절이 그런 의미입니다. 부활절 전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따르고 있었고 부활절 이후에도 여전히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릅니다. 단순히 부활절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부활절의 이전 시간이나 이후 시간이 전부가 다 의미가 있고 중요합니다. 부활절은 그 연속선상 속에 있을 뿐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통해 죄사함을 받았고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통해 의로움을 얻었습니다. 그러한 부활을 성도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성도의 본질이자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이 사건에 대해 성도들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부활절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러한 부활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것이 오늘 1,2절 말씀입니다. “[히]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히]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여기서 우리가 바로 성도들입니다. 성도들에게는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습니다. 그 모든 증인들이 앞서간 다른 성도들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전부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분은 십자가를 참으사 희생하심으로 죽으셨고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성도들인 것이고 우리는 과거의 그 성도들을 따라가는 현재의 성도들입니다. 부활이 이렇게 성도들에게 중요하다면 그 부활을 따르는 성도들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요? 그러한 부활의 사건을 삶을 적용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그 다음에 이어지는 3절 말씀입니다. “[히]12: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기념하고 기억하며 따라가는 성도들이 살아야 하는 삶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으면서 죄인들의 거역함을 참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는 삶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보여주는 부활의 사건을 삶에 적용하는 방법입니다. 부활은 단순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끝나는 절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예수님께 감사함으로 끝나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 모든 기쁨과 감사와 영광을 돌린 다음에 그분의 모습을 현재의 삶에 적용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됩니다. 마치 콘서트가 끝난 다음에도 여전히 그 노래를 기쁘게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부활의 여운이 우리로 하여금 현재의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를 기억함으로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에게 거역하는 일을 참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삶입니다. 주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죽음과 같은 절망과 낙심에서 부활하여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러한 시간에 함께 하십니다. 그것이 부활절을 어떻게 보냈든지 그 시간이 끝나고 나면 사라질 모든 의지와 열심을 새롭게 합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부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기억하고 따르는 자들에게 끊임없는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이 감당해야 하는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자신에게 거역하는 일을 참아야 하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자신이 원하는 목표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때 피곤해서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가족들이 자신의 하고자 하는 일에 순응하지 않고 반대하고 거부할 때에도 참아야 합니다. 학교와 직장에서 동료들이 선후배들이 혹은 더 높은 사람들이 지치게 하고 힘들게 할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하고 참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더 넓은 영역으로 사회생활에서 사람들이, 사회가, 정부가, 국가가 어려움을 줄 때 낙심하지 말아야 하고 참아야만 합니다. 과연 우리는 그런 모습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단지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는 차라리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싶을 때 예수님은 우리를 잊어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약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며 부활할 수 없는 인생이지만 주님은 강하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4, 5절을 보십시오. “[히]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히]12: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은 늘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그래서 죄와 싸우고 있지만 사실 피흘리기까지 대항하지는 않고 적절히 타협하는 것을 아십니다. 또한 자녀들에게 권하시는 것 같이 권면하신 말씀도 잊어버렸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낙심하지 않고 참아야 한다고 하셨는지의 이유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어떠하였겠습니까? 우리는 모두 여전히 죄인이 되어서 구원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죄를 사해주시고 우리를 의인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죽으셔야만 부활하실 수 있었고 부활하셔야만 우리를 살리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죽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감당하셨고 부활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이겨내셨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죄의 본질은 낙심하는 것이고 참지 않는 것이지만 의의 본질은 낙심하지 않는 것이고 참는 것입니다. 그래서 낙심하지 않을 때 잘 참을 때 우리는 예수님의 방향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을 잠시 잊어버렸을 때라도 다시 예수님을 찾고자 한다면 바로 그 방향을 찾아보십시오. 낙심하지 않는 방향, 참는 방향을 생각하고 그리로 나아간다면 바로 거기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로 나아 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붙들어서 다시 낙심하지 않고 잘 참을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죄인된 본성으로 원하는 것은 쉽게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죄성을 가진 인간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에게 거역하는 자들에 대해 응징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항상 죄로 귀결될 뿐입니다. 인간 자신이 생각하는 것은 그렇게 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생각하며 낙심하지 않고 그 거역함을 잘 참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의로움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따라서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5절 하반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히]12:5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말씀을 통해 낙심하지 말라고 하실 때 또한 참으라고 하실 때 그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왜 낙심했느냐고 왜 참지 못했느냐고 하실 때 그 말씀을 거부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 모든 징계와 꾸지람이 바로 우리를 올바르게 서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부활을 준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죄를 이기고 의로운 모습으로 영생을 살아가고자 하는 소망이 있는 자들의 마음가짐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뻐하는 이 부활절에 주님의 징계와 꾸지람을 잘 받아들여서 더욱 낙심하지 않고 더욱 인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부활이 보여주는 의의 소망이 우리의 삶 속에 더욱 넘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의 구원을 의미하는 가장 중요한 믿음의 사건이다. 2. 이러한 부활을 삶 속에 적용하는 모습은 주님을 생각하며 인내하는 것이다. 3. 노력도 없고 권면도 잊어버렸을 때에 주님을 생각하며 인내해야 한다. 4. 주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말고 낙심하지 않음으로 부활에 동참하는 자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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