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충만] 29욜 1; 1-10 삶의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다Loading the player... .
29욜 1; 1-10 삶의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다_1
2022. 6. 5. 주. 주일오전.
*개요: 요엘서에서의 신앙의 목표, 26심층, 56충만, 65인내, 6통찰적해석
[욜]1:1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욜]1:2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욜]1:3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 [욜]1:4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욜]1:5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이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 [욜]1:6 다른 한 민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수가 많으며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욜]1:7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 [욜]1:8 너희는 처녀가 어렸을 때에 약혼한 남자로 말미암아 굵은 베로 동이고 애곡함 같이 할지어다 [욜]1:9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은 슬퍼하도다 [욜]1:10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마르니 곡식이 떨어지며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
6월은 올해 전반기의 끝입니다. 2022년이 시작된 지 6개월이 되었고 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 6월에 보는 요엘서는 지금까지 우리가 본 선지서의 의미와 동일한 심판과 회복을 보여주고 있지만 배경은 좀 다릅니다. 이스라엘의 멸망과 회복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남유다 요아스왕 때 있었던 메뚜기 재앙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재앙에서의 회복과 발전을 예언한 것이었습니다. 이 의미는 국가적인 재앙과 회복이 아니라 개인적인 삶의 어려움과 회복 속에서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신앙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삶에서 메뚜기 재앙과 같은 피해와 어려움이 있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소망을 갖는다면 얼마든지 그 피해에 대한 회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지난 6개월을 생각할 때 개인적인 삶 속에서 고통과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좌절과 실패는 없었습니까? 곱씹어보면 볼수록 새록새록 그때의 괴로움과 좌절을 기억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크든 작든 그러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의 의미를 망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단순히 잊어버리는 것만으로는 그 어려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진정한 해결은 하나님 안에서 교훈을 갖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어려움의 가치와 의미가 생겨납니다. 요엘서는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알게 합니다. 메뚜기의 피해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바로 그 교훈의 내용을 우리가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엘서의 말씀을 통해서 그 교훈을 이해하고 삶 속에 적용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그 모든 말씀의 의미처럼 과거의 어려움이 다 해결되고 미래에는 더 큰 축복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이러한 요엘서의 핵심을 이해하기 위해서 오늘 본문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욜]1:1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욜]1:2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욜]1:3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 이 일은 정확히는 요아스왕 때 일어났던 메뚜기 재앙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 재앙은 그냥 무의미하게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의미가 중요하고 그 속에서 깨닫게 하고자 하시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죄에 대한 심판의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그 속에는 모든 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나 괴로움을 경험하면서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런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허무한 일이 될 뿐입니다. 하지만 그 경험 속에서 깨닫는 것이 있고 이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 속에서 더 큰 지혜와 명철함과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날마다 반복될 때 우리의 삶은 무의미한 삶이 아니라 유의미한 삶이 됩니다. 그런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성숙과 발전의 기회가 됩니다. 요엘서는 우리에게 바로 그러한 의미를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의미가 자녀에게 전달되어야 하고 후세에 알려져야 합니다. 시간을 초월하여 전해질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지난 6개월의 삶이 바로 그런 의미를 갖습니다. 전혀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삶이 아닙니다. 지난 6개월의 삶이 우리에게 다음 세대에 전해줄 수 있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이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난 삶이 쉬운 것이었든지 혹은 어려운 것이었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것이든지 평안하고 잘 살았다면 그런 평안한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었는가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힘들고 어렵고 괴로웠었다면 역시 그런 삶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었는가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을 때 오늘 요엘서에서 증거하고 있는 일들이 이해됩니다. 우리가 경험한 것이 이전에 경험한 것이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새로운 것의 의미에 대해서 자녀들과 후대에 전달할 수 있는 가치가 생기게 됩니다. 이전에 없던 전염병의 시기를 경험하게 된 것이나, 이전에 없던 교회침체의 시기를 겪게 된 것이나, 이전에 없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변화를 겪게 된 모든 것들이 전부 자녀들과 후대에 전해줄 좋은 경험담과 지혜의 내용이 됩니다. 그것을 단순히 성공담으로 전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실패담과 시행착오도 모두 전해질 수 있는 놀라운 지혜와 통찰의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그런 것들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할 때 생깁니다. 깨달아야 할 사람이 깨닫지 못하고 생각해야 하는 사람이 아무런 생각을 안 하니 6개월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무지하고 어리석고 미련한 삶을 살아가게 될 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4, 5절을 보십시오. “[욜]1:4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욜]1:5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이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 하나님은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고 그 손해와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십니다. 팥중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palmerworm’이고 메뚜기는 ‘locust’이고 느치는 ‘cankerworm’으로 자벌레를 의미하고 황충은 ‘caterpiller’로서 전부 잎을 먹는 곤충, 벌레들입니다. 그래서 팥중이, 메뚜기, 느치, 황충이 연달아서 남아 있는 것을 먹음으로서 결국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에서 술에 취하기만 하고 포도주를 마시기만 한다면 그것은 결코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정말 해야 하는 일은 이 일의 심각성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로 나아와야 하는 일입니다. 그럴 때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그 고통과 괴로움을 해결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어려움에 대해 외면하고 회피하며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면서 반응합니다. 그래서 스트레스에 대해서 해소 차원으로 대응합니다. 음식을 먹고 취미활동을 하고 TV를 보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운동을 하고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합니다. 기도나 찬양이나 예배나 신앙적인 방법을 스트레스의 해결에 사용하지 않는 이유도 스트레스가 있기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할 것이고 그 부분에 대해서 모든 사람들이 분명하고 확고한 이유와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고 잘 사용하고 있는 방법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몰랐고 전혀 사용해본 적이 없는 방법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그 스트레스에 대해서 어떻게든 빨리 빠져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스트레스를 더욱 생각하고 고민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욜]1:8 너희는 처녀가 어렸을 때에 약혼한 남자로 말미암아 굵은 베로 동이고 애곡함 같이 할지어다 [욜]1:9 소제와 전제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끊어졌고 여호와께 수종드는 제사장은 슬퍼하도다 [욜]1:10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마르니 곡식이 떨어지며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 하나님은 그 어려움에 대해서 생각하고 애곡하라고 하십니다. 처녀가 자유롭게 연애를 하지 못하고 어렸을 때 약혼한 남자로 인해서 억지로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을 애곡하는 것처럼 하라고 하십니다. 제사장이 소제와 전제가 끊어졌음에 대해서 슬퍼하는 것처럼 하라고 하십니다.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말라서 곡식이 떨어지고 포도주가 마르고 기름이 다함에 대해서 농부가 애통해 하는 것처럼 하라고 하십니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그럴 때 자포자기하고 좌절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그 문제를 붙들고 애곡하며 슬퍼하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문제를 풀 수 있게 도와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요엘서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지난 6개월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 의미를 우리가 잘 생각하고 우리의 괴로움과 어려움 속에 있는 교훈과 가치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왜 성도들이 기도하며 성경을 읽고 왜 예배를 드리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어려울 때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이지 시간이 남아 돌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와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고 하나님의 해결과 변화와 발전의 뜻을 이루게 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6통찰적해석 1. 요엘서는 삶의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게 한다. 2. 우리는 삶의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해야 한다. 3. 문제의 자각 속에서 하나님께로 나아갈 의지와 소망을 얻는다. 4.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도우심으로 나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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