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계획] 24렘 1; 13-16 기울어진 끓는 가마의 의미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24렘 1; 13-16 기울어진 끓는 가마의 의미_1
2022. 1. 16. 주. 주일오전예배.
*개요: 예레미야에서의 신앙의 문제와 목표, 선악문제, 유익->계획, 인내심, 선지서, 도덕해석
[렘]1:1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하니 [렘]1: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 [렘]1:15 내가 북방 왕국들의 모든 족속들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방 모든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들을 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1:16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그들에게 선고하여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예레미야의 존재와 그의 사명은 그 이전까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커다란 재앙이었습니다. 그가 존재하고 하나님의 사명을 받기 전까지는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예레미야의 사역 이후에 매우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전까지는 마음대로 하던 우상숭배를 편하게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그 우상숭배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사역은 평안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 파문을 일으키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죄를 짓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편에서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반대로 그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편에서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막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 죄로 인해서 망하게 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이 의를 이루고 선을 추구해서 다시 살 수 있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셨고 하나님의 뜻을 그들에게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죄악이 사라지고 의로움이 다시 나타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러한 예레미야의 말씀은 지금도 우리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전해줍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거나 혹은 예레미야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이라면 그것은 신앙의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숭배로 인해서 하나님 보시기에 죄를 행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문제를 해결한다면 비로소 신앙의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있다면 그것은 신앙의 목표입니다. 신앙의 목표를 이루고자 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에 비로소 부르심을 이루게 되고 신앙의 목표를 성취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 있습니까, 아니면 예레미야의 입장에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그것을 생각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무엇인가를 보게 하십니다. 그것을 보면서 그는 자신이 생각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렘]1:13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끓는 가마를 보나이다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하니”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해서 잘 들여다 보았을 때 그는 끓는 가마를 보았습니다. 그 가마는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여졌습니다. 우리도 오늘 말씀 속에서 예레미야를 봅니다. 그 예레미야는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여진 끓는 가마를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말씀 속에서 보는 그대로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지난 주 지방에서는 공사중인 아파트 외벽 붕괴사고가 있었습니다. 그 사건을 보면서 우리가 각자가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도 깨닫는 것이 없다면 수없이 많은 교훈과 변화의 기회를 잃어버릴 뿐입니다. 물론 그런 사고를 통해서 어떤 교훈을 깨닫거나 혹은 깨닫지 못한다고 해서 우리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지혜가 생겨나면 그 지혜는 우리의 삶에 점진적인 변화를 일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깨달을 때 우리는 선으로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본다고 하더라도 선과 악을 구별해 내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말씀을 아무리 본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사건과 사고를 많이 다루는 기자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정보와 세부 내용에 대해서라면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들을 판단하거나 수사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에 대해서 대중에게 알리고 전하는 데에 의미가 있지 평가하고 판단하고 재단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첨예한 입장에 대한 양측의 견해를 소개하거나 혹은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을 전할 뿐이지 기자 자신이 본인은 이렇게 생각하거나 판단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단순히 제3자의 관점으로 다룬다면 그 말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은 약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나 자신의 관계에서 다룬다면 어떤 말씀이든지 그것을 보면서 깨닫고 이해하며 분별할 수 있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울어진 끓는 가마를 보여주시면서 심판을 예고하셨습니다. 그것을 예레미야가 이해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렘]1: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 [렘]1:15 내가 북방 왕국들의 모든 족속들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방 모든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들을 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기울어진 끓는 가마는 하나님께서 부으실 재앙을 의미하였습니다. 북방 왕국들의 모든 족속들이 내려와서 예루살렘을 치리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가에 대한 의문은 그 다음 구절에 설명되고 있습니다. “[렘]1:16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그들에게 선고하여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였고 자기 손으로 만든 우상에게 절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렇게 우상숭배를 한 이유는 그 우상이 하나님만 믿고 따르는 것보다 더 많은 유익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선고하셨고 그 죄악들을 징계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설명을 들을 때 우리는 선과 악을 분별할 기준을 찾게 됩니다. 그 기준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 만을 따르고 섬기며 살아가게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이 성경에 있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선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는 것이 악이었습니다. 그것을 분별하고 우리가 각자 자신의 삶 속에서 적용할 수 있을 때에 이 성경 말씀을 보는 것이 의미가 있고 보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우상 숭배가 없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성도이지만 하나님만 의지하는 삶이 아니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다른 수단과 방법에 의존하여 자신이 만든 결과물에 의존하고 거기에 매여 살아간다면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우상 숭배의 죄악일 뿐입니다. 안타깝게도 그 결과는 죄악에 대한 징계 뿐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이해하고 돌이키고 삶 속에 그렇게 살지 않기로 결심한다면 우리는 신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더욱 큰 지혜로움 속에서 살게 됩니다.
또는 이 말씀을 통해서 신앙의 목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알았습니다. 그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고 돌이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을 하려고 할 때 그는 신앙의 목표를 이루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신앙의 목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내가 행하기를 원하시는 일을 순종함으로 감당할 때 우리는 신앙의 목표를 이룹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세우심과 갚으심’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냥 일 시키시지 않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그분의 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일이 눈에 보이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을 때 우리는 고민하고 갈등합니다. 부르심을 받았거나 부르심을 따를 수 있거나 부르심에 동참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고민합니다. 그것을 행한다면 그것이 바로 신앙의 목표입니다. 예레미야처럼 우리도 신앙의 목표 앞에서 갈등합니다. 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울어진 끓는 가마가 있는데 그것을 모른척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미리 경고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우리가 왜 여기에 존재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혜택이자 축복이 됩니다.
오늘도 예레미야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바로 나에게 설명하십니다. 그것에 올바르게 반응하고 대답할 때 다른 사람을 위한 신앙이 아닌 하나님을 위한 신앙이 될 것입니다. 또한 내 중심의 신앙생활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신앙생활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일 때만이 신앙생활이 의미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된 신앙생활은 일시에 무너져 내릴 뿐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 예레미야의 말씀의 자신의 삶 속에 적용해서 기울어진 끓는 가마를 보는 자로서 내 스스로를 돌아보든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든지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놀라운 부르심과 세우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말씀을 설명해 주시고 그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신다. 2. 그 속에서 선과 악을 구별해 낼 수 있을 때에 성도들은 선으로 나아갈 수 있다. 3.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로 나아간 문제를 깨닫고 하나님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 4. 성도들에게 보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생각하며 신앙의 목표를 이루는 자들이 되자. 11주제설교 관련글[더보기]16설교소감 관련글[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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