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충만] 26겔 1; 22-26 네 생물의 머리 위에 계신 그리스도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26겔 1; 22-26 네 생물의 머리 위에 계신 그리스도_1
2022. 3. 13. 주. 주일오전.
*개요: 에스겔에서의 신앙의 목표, 24조직, 42편안-56충만, 74경건, 4극본적해석
[겔]1:22 그 생물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있어 보기에 두려운데 그들의 머리 위에 펼쳐져 있고 [겔]1:23 그 궁창 밑에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향하여 펴 있는데 이 생물은 두 날개로 몸을 가렸고 저 생물도 두 날개로 몸을 가렸더라 [겔]1:24 생물들이 갈 때에 내가 그 날개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으며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으며 떠드는 소리 곧 군대의 소리와도 같더니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내렸더라 [겔]1:25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서부터 음성이 나더라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내렸더라 [겔]1:26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에스겔서에는 신비한 모습들이 등장합니다. 1장에서부터 등장하는 네 생물의 모습은 하나님의 신비한 은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알려주던 가브리엘 천사나 천사장 미가엘 정도를 알고 있던 성도들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에스겔서에 네 생물로 표현되는 케루빔(그룹) 천사가 있음을 알게 될 때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 가지고 놀라서는 안됩니다.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이름이 안 나올 뿐이지 수많은 천사가 등장합니다. 그 수많은 천사들이 전부 하나님의 역사를 수행하고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이룹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사들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계획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도들은 어떻습니까? 성도들도 유명한 사람들만 성도가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이 다 성도로서 하나님의 일에 동참했습니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모든 성도들은 전부 자신의 있는 위치와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귀한 하나님의 일꾼들입니다. 이러한 성도의 의미가 다른 존재들, 예를 들면 천국백성들(천국에서 태어나는 자들)에게는 매우 특별하고 오묘하게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성도로서 우리를 드러내기 보다는 우리가 바라보고 추구하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강조할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백성들에게 그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라고 권면할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천사들도 우리에게 천사 자신에 대한 관심에서 그 천사들이 이루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에스겔서를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신앙의 목표입니다.
중세시대 스콜라철학에서는 많은 헛된 종교적 주제들이 다루어졌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바늘 위에는 몇 명의 천사들이 올라갈 수 있는가’라는 주제였습니다. 이것은 당시 중세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가 쓴 ‘신학대전’이라는 책에 나오는 ‘여러 명의 천사가 같은 장소에 머무를 수 있는가’라는 주제를 발전시킨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천사가 얼마나 물질적인 존재인지를 생각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정말 생각했어야 하는 것은 천사가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천사만 바라보았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런 식이니 중세시대는 다른 종교, 사상에 대한 서적이나 주장들을 탄압하고 말소하면서 오직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만 몰두하였지만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한 것이 아닌 온갖 쓸데없는 공리공론에만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것이라면 우리는 여전히 쓸데없는 것들에 관심이 쏠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관심이 전혀 우리를 성장시키지 못하고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새로워진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 은혜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입구입니다. 22, 23절을 보십시오. “[겔]1:22 그 생물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있어 보기에 두려운데 그들의 머리 위에 펼쳐져 있고 [겔]1:23 그 궁창 밑에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향하여 펴 있는데 이 생물은 두 날개로 몸을 가렸고 저 생물도 두 날개로 몸을 가렸더라” 에스겔이 그발 강 가에서 보기 시작했던 네 생물의 모습에 그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있었습니다. 그들 머리 위에 새로운 공간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구름이 걷히면서 새로운 하늘이 펼쳐지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것은 이전에 전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장면이었기 때문에 에스겔은 두려웠습니다. 더욱 두려운 것은 그 궁창의 하늘 밑에 있는 생물들이 스스로를 두 날개로 가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천사였지만 그 천사들도 경외심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 바로 그 궁창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렇게 두려움이나 기다림이나 혹은 인내심 속에서 나타납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에스겔도 그에게 임한 하나님의 계시의 은혜는 그가 어떻게 행했기 때문에 경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적인 부르심으로 인해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두려움 이후에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단순히 두려움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행하신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기도원에 가거나 부흥회에 참석하거나 특별기도를 하다 보면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를 사모하고 간절히 기다리며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식으로든지 놀랍게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느껴지는 감정에 쉽게 쓰러져서는 안 됩니다. 지겨움에 불편함에 분노에 두려움에 걱정에 짜증에 죄책감에 수치심에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을 포기해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런 마음은 생길 수 있지만 그것으로 포기해 버리면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남편 문제로 고심하던 어떤 성도가 인터넷으로 설교를 듣는 중에 유명한 설교 속에서 남편을 변화시키려고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라는 말씀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 말을 들으니까 안심이 되었고 그 말을 듣고 남편에게 이야기해주었더니 남편은 너무 기뻐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지냈는데 나중에 남편이 정말 커다란 사고를 쳐 버렸습니다. 사실은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듣기에 좋은 말은 삶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감안해야 합니다. 정말 삶에 도움이 되는 말은 듣기 어려운 말입니다. 그것이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정한 본질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다들 그 본질을 보고 싶어하지 않을 때 그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정말 중요하고 요긴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네 생물의 두려운 모습 이후에 일어났습니다. 그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일을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한다면 바로 그 이후에 은혜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제 그 다음에 나타나는 은혜의 모습을 보십시오. “[겔]1:24 생물들이 갈 때에 내가 그 날개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으며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으며 떠드는 소리 곧 군대의 소리와도 같더니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내렸더라 [겔]1:25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서부터 음성이 나더라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내렸더라” 그 네 생물들의 움직임 속에서 많은 물 소리와 전능자의 음성과 군대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들만 움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보내심과 뜻 가운데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그 움직임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의지와 계획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궁창 위에서부터 나는 음성이었습니다. 그 음성이 들릴 때 네 생물들은 그 날개를 내리고 자신의 모습을 가렸습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임재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26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겔]1:26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지금도 우리에게 예수님은 임재하심을 통해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분은 보좌에 계신 사람의 모양을 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권위와 위엄과 영광 속에서 우리에 대한 계획을 이루십니다. 그 계획의 완성을 하나님의 종들이 이룹니다. 네 생물들이 그룹(케루빔)과 스랍(세라핌)이 하나님의 역사를 완성합니다. 그 하나님의 일들은 우리 삶 속에서 펼쳐지는 하나님의 일들입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도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천사들이 각자의 이름이 있고 존재가 있어서 하나님께 협력하듯이 성도들도 역시 각자의 이름과 존재가 있어서 하나님의 일에 연합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높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성도는 바로 그 일을 이루는 자들입니다.
에스겔서를 읽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그 역사하심에 동참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성도들이 천국백성들에게는 천사처럼 보입니다. 성도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이 생애에서 그런 특별한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성도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연합하고자 하고 그 일을 이루는 일에 동참하는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과 목표가 우리 모두의 삶에 늘 충만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네 생물의 모습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본다. 2. 그 오묘한 모습 이면에 커다란 하나님의 능력이 존재한다. 3. 그들을 다스리시는 보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에 대한 은혜를 베푸신다. 4. 성도로서 그 은혜를 사모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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