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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동행] 25애 1; 6-10 이전과 나중을 생각하지 않는 어리석음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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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6-10 이전과 나중을 생각하지 않는 어리석음_1

  

 

  

2022. 2. 13. . 주일오전.

  

 

  

*개요: 애가에서의 신앙의 목표, 4극본적해석, 2조직유형, 5동행

  

 

  

[]1:6    딸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감이여 그의 지도자들은 꼴을 찾지 못한 사슴들처럼 뒤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아났도다

  

[]1:7    예루살렘이 환난과 유리하는 고통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기억하였음이여 그의 백성이 대적의 손에 넘어졌으나 그를 돕는 자가 없었고 대적들은 그의 멸망을 비웃는도다

  

[]1:8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으니 전에 그에게 영광을 돌리던 모든 사람이 그의 벗었음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그는 탄식하며 물러가는도다

  

[]1:9    그의 더러운 것이 그의 옷깃에 묻어 있으나 그의 나중을 생각하지 아니함이여 그러므로 놀랍도록 낮아져도 그를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

  

[]1:10  대적이 손을 펴서 그의 모든 보물들을 빼앗았나이다 주께서 이미 이방인들을 막아 주의 성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명령하신 그 성소에 그들이 들어간 것을 예루살렘이 보았나이다

  

 

  

 

  

예레미야 애가를 통해서 우리는 죄의 결과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심판의 이유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미 일어났던 죄의 결과와 심판의 이유를 보면서 우리의 삶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습니다. 지난 주에 마지막으로 살펴보았던 말씀은 우리에게 그러한 참담한 일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1:4  시온의 도로들이 슬퍼함이여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들이 적막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시온도 곤고를 받았도다

  

[]1:5    그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함은 그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곤고하게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시온의 도로가 슬퍼하거나 성문이 적막하거나 처녀들이 근심하거나 시온이 곤고를 받는 것들은 전부 추상적이어서 마음에 와 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절기를 지키려고 나아가는 사람이 없고 제사장이 탄식하는 것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럴 때 그 모든 것들은 우리에게 아주 실제적으로 다가오는 일이 될 것입니다. 절기를 지키지 않고 예배를 드리지 않고 기도를 하지 않고 제사장은 탄식하고 성도들은 편하고 즐거워 한다면 그것은 지금 당장 그럴 뿐입니다. 그 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원수들이 형통하게 되는 일들입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 죄가 되었고 자신에게 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죄로 인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졌고 자신의 능력은 상실되었습니다. 삼손이 그랬습니다. 죄를 지으니 그로 인해서 자기를 지킬 힘을 잃었고 결국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와 같이 이스라엘도 대적들과 원수를 막아낼 힘이 없게 되었을 때 결국 그들의 자녀들은 대적에게 사로잡힐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국가나 사회나 기업 간의 경쟁 속에서 편하게 지내면 지낼수록 결국에는 사로잡히는 것을 봅니다.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항상 마찬가지입니다. 편하고 쉽고 즐겁게만 하려고 하면 늘 어려움이 닥칩니다. 누군가 자신이 맡은 일을 해야할 사람은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게 하지 않고 모두가 다 쉬려고 한다면 결국에는 모두가 어려움을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항상 외부적인 측면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부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의 영향력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의 상태만 생각한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일어나는 죄는 결국에는 그로 인해서 자신이 몸소 경험하는 심판의 결과가 됩니다. 오늘 말씀은 그러한 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6  딸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감이여 그의 지도자들은 꼴을 찾지 못한 사슴들처럼 뒤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아났도다

  

[]1:7    예루살렘이 환난과 유리하는 고통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기억하였음이여 그의 백성이 대적의 손에 넘어졌으나 그를 돕는 자가 없었고 대적들은 그의 멸망을 비웃는도다

  

시온의 모든 영광은 떠나갔습니다. 그 지도자들은 뒤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아났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목표가 되고 그 목표를 이루려고 하는 노력과 애씀이 있었어야 했는데 그런 것이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대해서는 하나님 대로 멀어지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그 마음과 태도와 자세가 전부 허물어져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따르기만 하면 무조건 영광이 찾아오고 힘있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것을 가르쳐주시기 때문에 부지런한 삶과 열정적인 노력을 행함으로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 되면서 발전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마음으로 따른다고 해도 구체적인 실천이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자기 스스로 세워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니까 그로 인해서 자신도 세워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심판이 이루어지고 환난과 유리하는 고통을 당했더라도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기억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일까요? 하나님을 더 이상 따르지 않아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했고 대적들을 대응할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은 그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하나의 아픈 교훈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문제는 그마저도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옛날의 즐거움은 기억되지 않고 하나님을 따르지 않았다는 자성 조차 없어집니다. 더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하나님과 멀어질 때 회복되고 돌이킬 수 있는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집니다.

  

악순환은 여기에서 생깁니다. 진짜 문제의 원인을 찾아서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면 이전의 어리석음을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준비가 안 되었고 대비가 안 되었고 하나님을 따르지 못했고 죄를 많이 지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그 다음부터는 준비와 대비를 하고 하나님을 따르고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면 지금까지의 어리석음이 더욱 커져서 그 다음에는 돌이킬 수 없게 되어 버립니다. 그대로 그 고통과 괴로움이 굳어져 버립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어리석음을 보면서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지혜로움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과거를 생각하는 것이고 미래를 미리 보는 것입니다. 과거를 생각하면서 무엇이 잘못이었는지를 생각하고 미래를 바라보면서 나중에 찾아올 더욱 심한 상황을 생각할 때 현재의 해야할 판단과 결정이 무엇이어야 할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1:8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함으로 조소거리가 되었으니 전에 그에게 영광을 돌리던 모든 사람이 그의 벗었음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그는 탄식하며 물러가는도다

  

[]1:9    그의 더러운 것이 그의 옷깃에 묻어 있으나 그의 나중을 생각하지 아니함이여 그러므로 놀랍도록 낮아져도 그를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

  

예루살렘이 범죄하여 조소거리가 되었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던 모든 사람들이 그의 벗음과 무방비의 상태를 보고 업신여기고 물러갈 때에 그 이유는 분명했습니다. 그의 더러운 것이 그의 옷깃에 묻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의 나중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더러운 것이 어떻게 그의 옷깃에서 그의 몸으로 그리고 그의 영혼을 파고 들어갈지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낮아지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그를 위로할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말합니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이 말은 죄로 인해서 고통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 은혜를 간구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약함을 틈타서 원수는 스스로의 능력을 자랑하고 자신의 존재를 높입니다. 그렇게 그 모든 죄로 인해서 받은 수치와 고통 속에서 그는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만 자신의 죄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환난을 감찰해 달라고 간구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중을 생각하는 모습입니다. 도우시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기에 일어난 일들이기 때문에 다시 하나님께로 나아가려고 할 때 모든 회복과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을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미래를 생각하지 못해서 쓰러졌던 삶은 다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간구할 때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을 따르고 믿었다가 믿음이 없어지게 되고 난 다음에 다시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회심자들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처음에 신앙이 발전되게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나중에 사라진 신앙을 다시 갖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는 신앙에서 낙심했다가도 다시 회복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시 회복되었을 때의 모습은 신앙의 가치와 의미를 더욱 귀하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없이 살아보고 예배 없이 기도 없이 살아보고 그로 인해서 문제와 아픔을 경험하게 되었을 때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생각한다면 그 때 하나님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따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럴 때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필요할 때 다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이 없을 때의 고통과 아픔을 경험한 다음에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없을 때의 고통과 아픔을 미리 가늠하고 계속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입니까? 둘의 표면적인 차이는 고통을 겪어 보았는가 아닌가의 차이일 뿐이지만 본질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중요함을 뼈저리게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중요함을 깨달을 때 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환난을 감찰해 달라고 간구하는 이스라엘의 호소 속에서 애초에 왜 환난이 닥쳤는가를 다시 발견합니다.

  

“[]1:10 대적이 손을 펴서 그의 모든 보물들을 빼앗았나이다 주께서 이미 이방인들을 막아 주의 성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명령하신 그 성소에 그들이 들어간 것을 예루살렘이 보았나이다

  

대적은 주의 성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신 성소에 들어가서 이스라엘의 모든 보물들을 빼앗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그것을 안타까워 하였지만 사실 누구 보다도 먼저 대적들이 주의 성회에 들어오게 한 사람은 이스라엘 자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만 섬기며 하나님만 따르게 하셨지만 그들은 대적들을 따랐고 대적들을 들였던 것입니다. 우상숭배와 혼합주의와 배교주의는 전부 대적들로부터 온 것들이고 그런 사고방식을 받아 들였을 때 마침내 그들은 보물들도 모두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죄가 죄의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애가를 통해서 이전과 나중을 생각하지 않던 어리석은 자들의 이야기를 봅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우리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이전과 나중을 기억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이전과 나중 사이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전과 나중을 잘 기억해서 그 모든 현재의 시간에 주재자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삶과 하나님이 보호하시는 마음을 잘 이루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은혜가 애가서를 함께 읽는 우리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죄악의 심판 속에서는 이전의 모든 즐거움을 기억하는 것이 고통이 된다.

  

2. 이후의 모든 괴로움을 경험하게 되면 그것이 전부 죄의 결과였음을 실감할 수 있어야 한다.  

  

3. 문제는 그것이 이르기 전에 미리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을 생각할 때 가능하다.

  

4. 악이 행해진 것은 악이 들어갔기 때문임을 깨닫고 그것을 막아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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