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존경] 43요 1; 6-11 사람들은 알지 못하였지만 계속 빛을 증거하는 이유



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431; 6-11 사람들은 알지 못하였지만 계속 빛을 증거하는 이유_1

  

 

  

2021. 10. 10. . 주일오전.                                                                                         

  

 

  

*개요: 요한복음에서의 믿음의 소원, 극본적해석, 44존경-56충만, 5복음서

  

 

  

[]1: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1: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1: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성자 하나님이신 것은 요한복음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예수님을 보면서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예수님을 본 것은 하나님을 본 것과 같다는 말씀은 전부 요한복음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다음 구절을 보십시오.

  

“[]12:45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1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이런 말씀이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이유는 요한복음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요한복음의 시작에서부터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이해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그럴 때 말씀 한 절 한 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예수님을 바르게 알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 예수님을 잘 알 수 있도록 마지막 선지자를 보내주셨습니다. 그가 바로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하나님께서 보내신 마지막 선지자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선지자의 사역과 증거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스스로를 더욱 높이는 자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보다 낮은 자들인지 아니면 하나님 보다 높은 자들인지가 예수님을 알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했습니다.

  

 

  

그에 반해서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자인 세례 요한은 사람들이 빛되신 예수님을 알든지 모르든지 상관하지 않고 계속해서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바로 그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증거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1: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1: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세례 요한에 대해서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빛에 대해서 증언하러 왔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믿지 않았을 때 그는 좌절하지 않고 계속해서 빛되신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임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자신의 증언과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 때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끝까지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그러면 과연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임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빛되신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이유와 정확히 반대되는 이유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높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알지 못했던 것이고 세례 요한은 자신보다 하나님을 더욱 높였고 높으신 하나님의 다스리심 안에 자신이 있음을 고백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이러한 차이가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 수 있는지의 여부를 결정합니다.

  

 

  

요즘 교회에 다니는 것은 인기가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어리석어 보이는 일입니다. 많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믿지 않고 남들이 다니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 자신이 신앙을 버린다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보다 높아졌을 때 나도 하나님 보다 높아집니다. 하나님을 믿는 가치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치가 더 높아졌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만약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중단한다면 그것도 역시 나를 보내시고 내가 섬기는 하나님을 높이는 모습이 아닙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면 보내심을 받은 대로 하나님의 뜻을 수행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자신보다 더 높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그 일을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일은 자신의 취향과 만족도에 따르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높으시기 때문에 따라야만 하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을 낮게 여겨서 부르심을 받은 일을 하지 않는다면 사실 일어나는 일은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인기 없다고 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역시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내가 하나님이 필요해서 보고자 해도 내심 부끄러워서 내키지 않는 일이 되고 결국에는 하나님을 보고 싶어 해도 이미 때가 늦어서 볼 수조차 없는 때가 이르게 됩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는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가 가까운지 먼지를 생각하고 올바른 반응을 결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자신의 위치를 결정짓습니다. 만약 산 앞에 있다면 산의 높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하지만 산이 멀리 있다면 높음을 생각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빛으로 본다면 자신은 빛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왕으로 본다면 자신은 그분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아가고 예수님께 순종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님께로 나아가지 않고 순종하지도 않으며 따르지도 않는다면 그 사람은 어둠에 있는 사람일 뿐이고 백성도 아닙니다. 다행히 마음 속의 생각이 그 정도는 아니라면 빨리 예수님께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정 반대되는 모습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되셨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으로 인해 지어졌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예수님은 빛이 되시고 우리에게는 그 빛을 알아 차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이 세상에 도덕과 정의와 공의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비추고 있고 우리에게 올바른 방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을 곡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신만의 도덕과 자신만의 정의와 자신만의 공의를 부르짖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 투쟁하며 갈등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온전한 도덕과 공의와 정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자들이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의 창조자 되심을 이해하며 예수님의 심판자 되심을 받아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예수님의 백성들입니다. 11절은 그것을 반어적으로 보여줍니다.

  

“[]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지만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땅에 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땅에 사는 것이었고 죄악의 땅에 사는 것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믿는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의 나라 안에 있는 예수님의 백성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님이지 위인으로서의 예수님이 아닙니다. 취미나 여가나 기호생활로서의 신앙이 아니라 생명과 소망과 확신으로서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반응에 상관없이 자기 땅에 오신 예수님을 그분의 백성으로서 영접합니다. 그분을 그렇게 영접함으로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분의 백성임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 대한 반응 속에서 우리 자신의 실체를 드러냅니다.

  

모세는 바로의 왕자였지만 늘 이스라엘 백성으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애굽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을 학대하는 것을 보고 그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애굽사람을 때렸는데 그가 그대로 죽어버렸고 그 길로 그는 도망가서 광야를 떠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의식 속에는 자신이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땅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만약 그런 의식이 없었다면 그냥 바로의 왕자로 편히 살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부르셨을 때에 그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말로 그는 자신의 땅에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땅에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도로서 우리에게도 그런 의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고 믿음생활을 하며 변함없이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이러한 마음 가짐으로 이 시대를 극복하고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빛된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을 더욱 환하게 비춰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구성

  

1.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스스로를 하나님 보다 높였기 때문이다.

  

2. 사람들은 그분을 알지 못하고 있었지만 전도자는 예수님을 증거하였다.

  

3. 빛으로 볼 때 자신이 빛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왕으로 볼 때 자신이 백성이 된다.

  

4. 하나님과 어떤 관계 속에 있는가를 통해 하나님과 어떤 관계가 있음을 자각하는 성도들이 되자.

      
 



번호 분류 이미지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747 83성숙
46고전 2;1-5 복음 이외에는 아무 것도 전하지 않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2-07 21 8402
746 83성숙
46고전 1;21-29 하나님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신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1-24 22 8548
745 83성숙
19시 119; 97-112 말씀을 읽는 자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법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1-15 20 8581
744 83성숙
59약 2;21-26 믿는 마음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1-15 20 8163
743 83성숙
58히11;24-28 우리가 믿음으로 해야 하는 일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1-02 19 8326
742 83성숙
19시 19; 7-14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해야 하는 이유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0-23 20 9109
741 83성숙
43요 5;36-40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게 된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0-17 20 9125
740 83성숙
45롬 1;14-17 과연 복음이란 무엇인가?_c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9-27 16 7279
739 82연합
43요11;33-40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눈물을 흘리신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9-27 22 8527
738 82연합
44행17;28-31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9-14 21 8563
737 82연합
44행15;6-11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겠는가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9-10 20 8518
736 82연합
44행10;36-46 말씀들을 때에 성령이 내려오시니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8-26 21 8263
735 82연합
4민14;1-10 이스라엘은 왜 가지 않았는가?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8-21 18 7987
734 82연합
44행11;22-30 안디옥의 제자들이 유대형제들에게 보냄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8-21 21 8767
733 82연합
51골 2;13-15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승리하셨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8-21 16 8299
732 82연합
45롬16;1-7 함께 수고하고 함께 고생한 사람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7-22 19 9206
731 82연합
44행 4;32-37 자기 재물을 자기 것이라고 하는 자들이 없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7-12 19 9064
730 82연합
40마28;16-20 주님이 주신 위대한 명령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7-12 16 8609
729 82연합
42눅23;42-43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6-28 20 8639
728 81훈련
49엡 4;25-32 부부의 성경적인 의사소통법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6-28 19 8921
727 81훈련
1창2;24 성경적인 결혼생활을 위해 할 일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6-18 21 9228
726 81훈련
1창 2;18-24 결혼에 관한 성경적 원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6-09 18 8363
725 81훈련
1창 1;27-28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얻은 자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5-31 19 8655
724 81훈련
59약 1;13-18 죄의 악순환과 의의 선순환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5-21 17 8366
723 81훈련
47고후10;3-6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4-30 19 8946
722 35죄책
1창 3;4-7 죄악의 시작, 욕구의 시작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4-30 19 7416
721 54용서
30암 4; 4-8 언제나 하나님께 돌아와야 하는 자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7-30 0 5893
720 51계획
30암 3; 1-7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이유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7-23 0 4650
719 56충만
30암 2; 6-12 예언하지 못하게 하던 사람들의 소망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7-16 0 4330
718 54용서
30암 2; 1-5 세상의 죄와 유다의 죄의 차이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7-09 1 5113
717 71충성
30암 1; 1-5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소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7-02 2 5099
716 56충만
29욜 2; 10-14 여호와의 날의 두려움과 기뻐함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6-25 1 5240
715 56충만
29욜 1; 15-20 슬퍼하며 주께 부르짖는 사람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6-18 2 4718
714 55동행
29욜 1; 11-14 어려움을 하나님 안에서 해결하는 과정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6-11 2 5535
713 56충만
29욜 1; 1-10 삶의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6-04 1 12519
712 54용서
28호 3; 1-5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은총으로 나아감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5-28 1 4953
711 56충만
28호 2; 19-23 진실함으로 인해 여호와를 알게 되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5-21 1 4526
710 55동행
28호 2; 4-8 자신이 사랑하는 자를 따르는 자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5-14 1 4777
709 55동행
28호 1; 6-11 호세아의 가정을 변화시키는 하나님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5-08 2 4920
708 51계획
28호 1; 1-6 이스라엘이 이스르엘이 되게 하심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4-30 1 5637
707 52능력
27단 2; 1-6 하나님을 의지하여 어려움의 시간을 극복한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4-23 2 13125
706 55동행
58히 12; 1-5 부활의 주님을 생각하면서 따라간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4-16 1 11592
705 55동행
27단 1; 10-16 열흘 동안의 시험과 그 의미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4-09 1 5320
704 51계획
27단 1; 1-7 바벨론에서 하나님 앞에 선 사람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4-02 1 5598
703 56충만
26겔 2; 6-10 하나님이 우리에게 먹게 하시는 것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3-26 0 5577
702 56충만
26겔 1; 27-2; 5 영광의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 이유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3-19 3 4756
701 56충만
26겔 1; 22-26 네 생물의 머리 위에 계신 그리스도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3-12 4 5285
700 52능력
26겔 1; 1-14 보좌 앞의 네 생물을 통해 주의 뜻을 깨달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3-05 2 5525
699 51계획
25애 1; 16-20 하나님을 어느 때에 만나고 있는가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2-26 1 5590
698 51계획
25애 1; 11-15 하나님의 심판하심 속에서 깨달아야 하는 것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2-19 1 5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