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양선] 40마 15; 21-28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는 예수님Loading the player...
40마 15; 21-28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는 예수님_1
2024. 1. 7. 주. 주일오전예배.
*개요: 소원을 들으시는 주님을 깨달음, #56양선, 4극본적해석 [마]15: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마]15: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마]15: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마]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마]15: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마]15: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마]15: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마]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2024년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한 해에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간절함을 가지고 나아갈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하나님께 아무런 간구도 기대도 없다면 하나님께 나아갈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에는 하나님과 아무 상관없는 사람으로 끝나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간구와 기대가 있다면 하나님과 관계가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풍성한 결실로 나타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넘치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런 하나님에 대해서 실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하는 말씀은 이전에 하나님께 간구도 하고 기대도 했었지만 하나님은 도와 주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다시 하나님을 의지하기가 내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들이 그렇게 말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들에게 실망이 되고 낙심이 된 일에는 다 사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대해서 구한 것은 소원이 아니라 욕심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그 차이를 이해하고 욕심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소원 대로 구한다면 선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응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가나안 여자의 딸을 고쳐 주시고 있습니다. “[마]15: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마]15: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이 가나안 여자는 병행 본문인 마가복음에서는 헬라인, 수로보니게 족속의 어머니였습니다. 그 딸이 병이 들었고 이 어머니는 예수님에 대해서 소문으로 들었었기 때문에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정성스럽게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이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욕심인가 아니면 소원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당연히 그것은 소원이었습니다. 욕심으로 그렇게 예수님께 나아와서 간구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 어머니는 흉악하게 귀신 들린 딸의 병을 고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도 이러한 마음 가짐이 필요합니다. 욕심으로 구하는 것은 잘못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욕심으로 구하는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야고보서에서도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약]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정욕으로 쓰려고 한다는 것이 자신의 욕심으로 구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영어성경으로 보면 좀더 명확합니다. ‘When you ask, you do not receive, because you ask with wrong motives, that you may spend what you get on your pleasures.’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것은 잘못된 동기로 구하는 것이고 받은 것을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에 쓰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나님께 구해야 하고 진실한 소원으로 간구할 때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즐거움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좀더 쉽게 말하면 그 얻고자 하는 것이 자기 자신의 즐거움을 위하는 것이라면 욕심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더 잘 먹고 잘 살고 잘 입고 즐겁게 살기 위해서 구하는 것이라면 응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바라는 것이라면 응답을 받을 것입니다. 또한 그 응답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 하더라도 그러한 방향에 맞는다면 별다른 반대나 부정적인 감정이 없을 것입니다.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고 자신의 원함에 이루어지기를 바랄 때 그것이 자신의 원하는 것에서 달라진다면 안 좋은 감정이 생길 것입니다. 하나님께 간구했는데 들어 주시지 않아서 상심했다면 이러한 원리 때문에 자신의 욕심 대로 구했던 것입니다.
이 여인의 간구는 정말 소원이었는데 그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그 다음의 장면입니다. “[마]15: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마]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마]15: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제자들의 반응은 별로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냉담하고 차가운 말씀이었습니다. 더 나쁘게 말하면 이 여인의 의지와 결심을 흔드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만약 그 여인이 가지고 있었던 마음이 욕심이었고 자신의 안위를 위하는 것이었다면 이러한 제자들의 반응과 예수님의 반응에 실족했을 것입니다. 나름 헬라인이고 귀족층인 수로보니게 여인이었으며 인근 가나안 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이라는 자신의 위치가 있었을 때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섭섭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구하는 것은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흉악히 귀신들린 그녀의 딸의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은 이미 귀신을 쫓아내셨던 예수님께만 있었습니다. 그러니 결코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딸의 절박한 상태를 생각하면서 그녀는 주님께 도움을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그러한 이 여자의 소원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소원을 기뻐하십니다. 욕구를 가지고 오지 않고 소원을 가지고 오기를 바라십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우리는 잘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소원을 가진다면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소원이 있다면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을 감당할 것입니다. 욕심을 가지고 있어도 때로는 인내심이 필요한 법입니다. 그러니 더욱 좋은 소원을 위해서는 얼마나 잘 참아야 하겠습니까? 예를 들면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 오래 동안 식당 앞에서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좋은 옷을 사기 위해서 오래 동안 상점 앞에서 기다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단순히 더 잘 먹고 더 잘 입기 위함이지만 그래도 기다림과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소원은 그보다 더 인내할 수 있고 견딜 수 있습니다. 가장 필수적이고 절박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것은 소원을 가지고 있다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원을 가지고 견디는 것은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닙니다. 의미와 목적이 있어서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장면에서 이 여인의 애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15: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마]15: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 어머니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는 예수님의 거절에 그냥 참고 견딘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자녀의 떡과 개들이라는 구도 속에서 개들과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자녀가 먹을 떡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주인에게서 받는 부스러기를 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겸손과 간절함에 예수님은 감탄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주인 되심을 믿는 믿음이었고 그 주인 되신 예수님으로부터 받는 은혜의 부스러기라고 얻을 수 있기를 엎드려서 간구하는 간절한 소원이었음을 발견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주인 되신 예수님을 고백하는 믿음이 큰 것이었고 그 부스러기라도 간구하는 소원에 응답하셨습니다. 영어성경으로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Woman, you have great faith! Your request is granted." 그래서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고 그 순간 딸로부터 귀신이 떠나고 딸이 나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간구는 욕심이 아니라 소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존심을 견디고 인내해야 하고 소원을 생각하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우리의 소원을 기뻐하시면서 응답해 주십니다.
새해에 가지고 있는 많은 소원들을 하나님께 드리며 그것이 욕심이 아닌 소원이 되도록 노력하시고 그 소원이 온전히 응답 받을 수 있도록 주님께 나아가서 노력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열심히 준비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결심이 우리 모두에게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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