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41막14; 36-42 아버지의 원하심을 따라가심_1
41막14; 36-42 아버지의 원하심을 따라가심_1
2026. 3. 15. 주. 주일오전.
찬양: 58. 지난밤에 보호하사, [324장] 예수 나를 오라 하네 [459장] 누가 주를 따라 , [507장] 저 북방 얼음 산과
개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성도의 삶, #55동행 [막]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막]14: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막]14: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막]14:39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막]14:40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막]14:41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막]14: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성도로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의미 있는 시간과 의미 없는 시간이 있습니다. 의미 있는 시간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시간이고 의미 없는 시간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시간입니다. 돌이켜보니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가장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로 살았던 시간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선택이나 결정의 상황에서도 나타날 것이고 그냥 일상적인 시간에서도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 자체가 이 세상에서 벗어나 영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이 새로워지는 시간이 됩니다. 그런데 그럴 때 하나님의 의지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의지하는 것이 중요하지 이용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 조른다거나 협박한다거나 원망한다거나 하면 그것은 기도시간도 아니고 충만한 시간도 아니며 단지 결핍되고 부족한 시간이기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지하는 시간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장 예수님을 닮고 따르려고 할 때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럴 때 하나님을 진정으로 의지하는 것이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이 새로워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도우심과 축복으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4장 36절은 이러한 예수님의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기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막]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막]14: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예수님은 아버지의 능력을 의심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모든 것이 가능하시다고 고백하였고 그것을 믿고 의지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 예수님이 구한 것은 이 잔을 옮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원하셨던 일입니다. 하지만 그 원하시는 일을 요구하거나 강요하시지 않았습니다. 오직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간구하셨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기도가 특별한 것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줄다리기를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줄을 잡고 따라가셨습니다. 그럴 때 몸은 이 땅에 있지만 마음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실 때 원하시는 모습이 바로 이것입니다. 돌아오셔서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셨을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눈뜨고 있는 것만을 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께 반복암송으로 압력을 행사하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께 속하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한 시간도 깨어 있었을 수 없어 잠을 잤느냐고 말씀하신 것은 한 시간만 깨어 있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릴 수 없느냐고 깨닫게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깨어 기도하는 것과 잠들어 기도하는 것은 다릅니다. 눈이 밝아져서 기도하는 것과 눈이 어두워져서 기도하는 것은 수준차이가 있습니다. 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단순한 소원성취만을 간구한다면 그것은 꼭 기도의 형식일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그런 소원성취를 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주님을 믿고 깨어서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기도할 때 우리의 영혼은 새로워집니다. 믿음은 그럴 때 진실한 것이 됩니다. 그 반대를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는 간절히 열심히 하지만 원하는 것만 들어달라고 해보십시오. 무조건 자기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달라는 기도자를 상상해 보십시오. 그걸 해주지 않으면 너무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 하며 죽으려고 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이 세상에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함이었다는 사람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 사람들이 자고 있는 사람들이며 깨어 있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한 시라도 그런 수준을 참을 수 없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런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한 시도 깨어 있지 못하고 잠들던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은 다시 기도하러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셨습니다. “[막]14: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막]14:39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막]14:40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는 것은 실제로 자지 말고 기도하라는 의미도 있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은 시험에 드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건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기도하는 것이고 또한 기도하지 않는 것이기도 합니다. 대개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영적침체에 빠지고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지 말아야 하는 것을 알아도 몸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약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기도할 때 시험이 들지 않고 깨어있음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약함을 극복하고 마음의 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만약 그때 예수님이 십자가를 감당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때 연약해져서 대속사역을 완성하지 못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모든 것은 헛되게 되고 우리 자신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이루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원하심으로 새 힘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오셨을 때 제자들은 눈이 심히 피곤해져서 잠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담대해진 모습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몰랐지만 예수님은 깨어 기도하실 때 기도할 때마다 더욱 담대해졌고 충만해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6장에서 사도 바울은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총독 앞에서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행]26:28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행]26: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그가 그렇게 겁이 없고 담대해진 이유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원하는 소원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끄러움이나 후회스러움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과 함께 하려고 했을 때 하나님이 그의 편이었습니다. 또한 그가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따르는 기도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할 때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예수님의 충만한 모습을 보십시오. “[막]14:41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막]14: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도의 시간은 끝이 나고 하나님을 따라가는 행동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릴 때 그 일로 인해서 죄사함이 이루어지는 대속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원하는 예수님은 이미 하나님의 뜻으로 충만해졌습니다. 천사들은 그를 도왔고 주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충만해 졌습니다. 그래서 일어나라 함께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 뜻을 이루는 일에 나아가셨고 제자들을 데리고 가셨던 것입니다. 나를 파는 자는 가까이 왔지만 나를 돕는 분은 이미 옆에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그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도우심이 충만했을 때 예수님은 대속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러한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의 뜻임과 도우시는 능력을 이해할 때 놀라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완성하심처럼 우리도 우리가 해야 하는 각자의 책임과 의무의 일을 완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 안에 속하여서 주님의 행하시는 일들을 행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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